전쟁 : 영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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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0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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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전쟁 : 영의 전쟁‘이란 제목에 합당한 글을 써내려 가겠지만,

    그리고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에 합당한 글을 작성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토요일! 이쯤해서 한 편의 글 정도는,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의 방향과 향후 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은, 지금까지 ‘진실추적(Truth Tracking)‘ 을 채웠던 글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기준으로, 내가 가진 세계관과 비전,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이야기 해 보는것도 괜찮을듯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계속해서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보여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글)을 읽는 이세상 모든 기어들이, 중심을 잘 잡기를 바란다.

     

     

    쓰고싶은 글도 많고, 한편으론 사이트 운영도 해야하고, 늘 마음이 바쁘다. 마음만., 바쁘다.

    한 주를 살면서, 월, 화는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나머지 요일은 전반적인 사이트 운영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왠지 다음주엔 ‘진실추적(Truth Tracking)‘에 관련하여 많은 글을 쓸 수 없을것만 같아서,

    이번주가 지나기전, 한 편을 더 작성하기로 했다.

     

     

    먼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진실추적(Truth Tracking)’을 시작하며 밝힌바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는 나는,

    성경이 기준인 인생이기에(왜냐하면 예수가 가짜는 아니니까), 성경의 역사 곧 영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며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알아야만, 그래야만 최소한의 의문이 모두 풀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편 ‘사단의 꿈‘에 이어서 ‘전쟁‘이란 제목으로 글을 이어가는 것이다.

     

     

    왜? 어째서? 사단은 온 인류를 말살시키고 싶어 하는지,

    왜? 어째서? 예수는 사단에게 허락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그 이유를 알아야, 어떻게 싸울수 있는지 알게된다…

    그런후에야, ‘표적‘을 심도있게 다루며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대체적으로 기어들이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될 부분이 이 ‘표적’이란 카테고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표적’이란 카테고리를 채워 나가며 ‘성전기사단의 비밀’일 시작으로, 사단의 회를 심도있게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요지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을 시작하면서, ‘진실추적(Truth Tracking)‘ 토픽안에 세(3)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아래 세(3) 개의 카테고리가 그것이다.

     

     

    • 두 영의 역사(History) : 진실추적(Truth Tracking)의 역사.
    • 기독교적 사상.
    • 표적.

     

     

    기독교 사상 또는 기독교 사관, 혹은 기독교 정신에 관해선 이미 쓴 글들도 많이 있고,

    지금 현재는 대체적으로  ‘두 영의 역사(History) : 진실추적(Truth Tracking)의 역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기록된 바,

     

     

    엡6: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따라서 진짜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이며,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영혼의 나침판을 따라 사단의 음모 또는 음모론을 뒤쫓고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는 미갤러들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의 세계, 곧 창조자와 사단의 전쟁과 전쟁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영의 전쟁 : 아담과 하와의 예.

     

     

    다시 창세기로 한번 돌아가보자.

     

     

    창3: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과연 뱀, 계시록이 증거한 이 옛 뱀, 사단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는 이 뱀이,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몰라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물었을까.

    기어들 생각은 어떠냐.

     

     

    사단은 절대로, 사실관계(Fact)로 접근하지 않는다.

    사단은 반드시, 너의 욕망과 욕정과 욕심을 깨운다.

    따라서 하와의 이 반응,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순종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의 욕망과 욕정과 욕심을 건드려 주길 원했던 반응이다.

     

     

    그러면 누가 사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생인줄 알 수 있겠지.

    질문의 요지와 상관없는 동문서답을 한다든지, 주제와 상관없는 오만가지 잡다한 소리를 갖다 붙인다든지,

    이런 인생들이 전부 사단의 영에 속한 자겠지.

     

     

    성경이, 동성애를 저주 했음에도 교회가 목사가 그 성경이 아닌 자신의 철학을 논한다면, 그는 교회도 목사도 아니겠지.

    성경이, 질서를 증거 했음에도 자기 생각이 성경보다 옳다 말하는 자가 같은 입으로 기독교인(?), 목사(?)라고 한다면, 그가 기독교인이고 목사가 되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경우의 수가, 본질과 상관이 없는 경우다.

    그리고 여기, 한 증인의 이야기가 있다.

     

     

    행15: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사사로이, 나는 여전히 바울이란 인물을 좋아한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어떤 인물(?) 하나를 뽑으라면, 여전히, 주저없이, 바울이다.

    그런 몽상을 해본적도 있었다. 어째서 바울일까.

    게바도 아니고, 요한도 아닌, 열두 제자 모두를 훌쩍 건너뛰곤, 느닷없이, 성령은 바울이란 인물을 등장시킨다. 왜?

     

     

    이 글을 읽는 기어들이 보기엔 바울이 어떤 인물로 보이냐.

    어제 까진, 예수를 믿는 자들의 목을 치던 바울이, 오늘은 저럴수 있다는 거냐.

    사람이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그렇지, 낯짝 이라는 것도 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연연해 하지 않은 인물이 딱 한 명 등장한다. 바울이다.

    바울은, 예수 이외엔, 아예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게바처럼 타협도 없었다.

     

     

    위 구절에서 소개한 마가가, 설사 한가지로 함께 하지 않았다 치지.

    마가가 사단의 종이었나. 그렇지 않다. 마가가 엄청난 죄를 범했나. 그렇지 않아.

    그러므로 내가 확신 하노니 불의의 싹을 용납하지 않는 바울이란 인물의 단호함이, 창조자에게 합당 했던 것이다.

    반면 아담과 하와의 패전도, 이스라엘의 패망도, 솔로몬의 몰락도, 모두 불의의 싹을 용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악은, 용납하는게 아니다. 악을 용납한 자는, 이미 악과 연합한 자라.

     

     

    영의 전쟁 : 두려움.

     

     

    아담과 하와에서 출발한 영의 전쟁은, 곧 노아 때 대홍수 사건으로 이어지고, 창조자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며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만큼 영적으로 타락한 인류를 향한 구원사역을 노아를 통해서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다시, 니므롯을 살펴보자.

     

     

    창10: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 (이는 큰 성이라) 을 건축하였으며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우리는 위 창세기 10장을 통해서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다.

     

     

    • 첫째. 바벨이 사단이 창조자를 본따 만든 사단 자신의 종교였다는 사실.
    • 둘째. 그 바벨의 영 곧 사단의 영이 바벨에서 출발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
    • 셋째. 이유는, 이어지는 창세기 11장에서의 바벨탑 사건과 위 14절에서 블레셋의 영 곧 네피림의 영이 니므롯에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

     

     

     

     

    니므롯이 창조자를, 창조자의 심판을 몰랐던 인물이 아니다.

    만약 몰랐다면 바벨탑을 높이 쌓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바벨탑을 높이 쌓아 창조자의 심판을 대비한다. 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조상 노아에게 무지개로 언약을 삼기까지 했는데도, 그는, 혹시 모를, 창조자의 심판을 대비했다. 왜?

    조상 노아와 같이 창조자를 경외하며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그 열매가 바벨탑이다. 왜?

    그의 선택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일루미나티가 제수이트(예수회)와 같은, 사단에게 복종하는 사단의 회냐. 그렇다!

    하지만 일루미나티의 그 시작은 분명히 제수이트(예수회)의 로욜라를 향한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분명하다.

    로욜라를 견제하고 싶었던 가나안 족속, 온통 피비린내 나는 거짓말로 중무장된 로욜라를 향한 두려움.

    이 로욜라의 제수이트 회원들이 어느날 부턴가 프리메이슨에 침투하기 시작한 그 모습을, 그 광경을,

    프리메이슨 내에서 일루미나티라는 새롭고 비밀스러운 조직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했던 그 당시(때)의 일루미나티들은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일루미나티가 사단에게 더 큰 재사를 맹세하며 사단에게 무릎꿇은, 로욜라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든 이유다.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

     

     

    Ps) 이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선 좀 더 면밀한 ‘성전기사단‘에 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과거엔 이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꼭 그렇다! 라고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는건 아니다. 다만, 역사의 흐름으로 봤을때, 로욜라란 인물을 증거한 책들을 중심으로, 나는 분명히, 로욜라를 향한 두려움에서 일루미나티가 만들어졌다고 확신한다.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의 것을 모두 잃을까봐.

     

    Tip) 참고로,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을 통해서도 밝힌바, 우리가 알고있는 현재의 프리메이슨은 그저 그들의 얼굴마담이다. 프리메이슨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을 증거하기도 하고, 자신들을 들어내기도 하지만, 프리메이슨을 움직이는 자들은 일루미나티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의 메이슨들은 일루미나티 회원들을 모른다. 반면 일루미나티는 프리메이슨의 모든걸 않다. 제수이트(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의 관계도 이와같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볼까.

    바로 너희 조상일지도 모르는 ‘홍산인’의 예이다.

    발견된 홍산인들. 그들에게서 세미라미스를 섬겼던 증거인 옥으로 만들어진 여신상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 역시 몇대만 올라가면 되는 자신들의 조상 함 할아버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창조자의 존재? 물론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노아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홍산인들은 바벨을 선택했다. 왜?

     

     

    바벨이란 도시에서의 모습은 달랐을까.

    어제까지 함께 숨쉬던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다? 니므롯이 저주를 받아 죽던 그 광경을 내가 옆에서 다 지켜보았는데?

    하지만 난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다고 믿을란다. 왜?

    두려움 때문이다.

     

     

    이쯤에서 성경의 한 구절을 소개해 보겠다.

     

     

    삼상13: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울이 사울이 된 이유…

    창조자가 다윗을 선택한 이유…

    사울은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지금 두려움이 곧 사망이라고 증거 하려 하고 있다. 이 두려움은, 주와 객이 뒤바뀌는데서 찾아온다.

     

     

    사단의 변하지 않는 유일한 전략. 주와 객을, 뒤바꾸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내가 주체(또는 주제, 주)가 되어 내 기준으로 바라봐선 절대로 영의 세계를 알 수 없다.

    저마다 해석할 자유가 있고 저마다 자유롭게 의지대로 성경을 읽는 다지만, 변하지 않는 한가지 원칙이 있다면, 주인공이 내가 아닌 예수란 한가지 진실이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 기준으로, 내 마음에 들게, 내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된다.

    그 끝은 두려움의 사무침이고 곧 사망이다.

     

     

    창조자가 세상을 창조함과 동시에, 인간을 여섯번째날 창조했다. 이 육(6)이라는 수. 곧 인간의 수…

    그 숫자를 바라보는 기준이 내가 되어버리면, 인간을 여섯번째날 창조한 그 비밀 자체가 저주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사단에게 종속되는 것이고, 종속되면 두려움에 걸려 들게 된다.

    그 숫자 육(6)을 바라보는 기준이 창조자가 되면, 창조자는 인간을 창조한 직후 안식일에 들어간다.

    인간의 창조를 위해 앞 선 모든 창조의 계획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니 더는, 성경이 66권이란 사실로 이상한 사단의 음성을 전파하지 말길 바란다.

    이게 주와 객의 설정이다.

     

     

    Ps) 이 육(6)이란 숫자를 어느 한날에 선택해야 할 날이 오 긴 올 것이다. 이 육이라는 숫자의 조합 666은, 성경이 ‘짐승의 표’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숫자가, 등장할 것이다.

     

     

    구원자는 주지, 객인 내가 아니다.

    성경은 예수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증거 하기 위해 준 것이지, 내 영광을 위해 주지 않았다.

    주와 객의 설정잉 비뚤어지면, 모든게 어긋난다.

     

     

    니므롯은, 세상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사단이 하와에게 신이 될 수 있다며 창조자의 관점을 하와의 관점으로 ‘대 변환‘을 시킨 그 역사와 똑같은 방법이다.

    프리메이슨도, 제수이트(예수회)도, 일루미나티도, 그 관점이 자기 자신이기에 사단의 회가 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세상의 주관자가,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그 관점의 전환.

     

     

    하지만 명심해라 바이오론 시몬아.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눈으로 보기엔 힘없고 여려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너와 나보다 훨씬 더 거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살고 있단다.

    권력과 돈과 총과 칼이 아니면 아무도 믿을수 없는 그 두려움. 자기 것을 잃어버릴 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그 두려움.

    하루라도 음모를 꾸미지 않고는 숨도 쉴 수 없는 그 두려움…

    사단에게 붙잡힌 영혼들의 모습이다.

     

     

    영의 전쟁 : 신의 한 수.

     

     

    위에서 언급한 그 두려움은, 근현대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증거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창조자가 싸우는 전쟁은 다르다는데 있다. 들어나지를 않는다…

     

     

    결론부터 한 번 말해보자.

    세상의 모든 전쟁은, 사단이 일으킨다. 예수의 허락을 받고 일으키는 전쟁이다.

    그러면 예수는 왜? 그 전쟁을 허락할까. 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 모든 전쟁은 사단이 일으킨다. 예수의 허락을 받고 일으키는 전쟁이다.

    그러면 예수는 왜, 허락할까. 그 전쟁을 통해서 사단에게 굴복한 사단의 회를 치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하길 ‘너의 죽음후 400년이 지나서 너의 후손들이 가나안엘 들어갈 것‘이라고 했던거고,

    이유는, 예수가 처야 할 명분이 될만큼 아직 가나안 족속의 죄가 관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단이 예수의 계획을 알고있을 지라도, 예수가 어떻게 반응 할지는 모르는데서 오는 자충수다.

     

     

    가나안 정복사에서는 누가 싸웠나. 모세가 싸웠나. 그렇지 않다.

    여리고를 무너뜨린게 누구냐. 여호수아가 검을 뽑아 휘두르기 전에, 이미 천사가 적장의 목을 먼저 배었다.

    사울과 블레셋의 전쟁도,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룰때도, 성경은 모두 동일하게 증거 한다.

     

     

    예수의 전쟁은, 눈에 보일래야 눈에 보일수가 없다.

    왜냐하면 창조자가 정한 관계는 모두 1대 1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은 분명히 사단의 회다. 또는 완전한 사단의 회가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의 신부, 수녀들에 관해서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선 안된다.

    그 개개인 모두가 내가 아닌, 나와의 관계가 아닌, 창조자와 1대 1의 관계를 맺고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그 땅 이스라엘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손에 들려져있던 성경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유대인 말살을 단행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유대인과 기독교의 연합을 만들었다.

    급기야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을 김일성을 들어 쳤지만, 그땅에서 피난을 내려온 그 난민들은 남한에 더 거대한 복음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복음이, 중국의 공산당이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한 후에도, 유일하게 중국에 복음을 전한 민족이 된 것이다.

    ㄴ 1950년 이후, 공산주의를 선언한 중국이 감당할 수 없었던 인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문둥병 환자들이다.

    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문둥병 환자들.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던 이 문둥병 환자들 때문에,

    ㄴ 중국은 강제로 추방했던 선교사들에게 다시 중국을 개방하는 사건이 있었다.

    ㄴ 이때 중국으로 건너가 이 문둥병 환자들을 치유하며 복음을 전한게 한국의 선교사들이다.

     

     

     

     

    이렇게 전해진 그 복음은, 중국 전역으로 더 깊고 더 멀리 전파된다. 이게 살아있는 역사다.

    그래서 원래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음 ‘예수‘라는 이름이지,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자는 사단에게 전쟁을 아픔을 고통을 허락한것 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사단이 조장한 그 전쟁을 통해서 악을 뿌리뽑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작업을 했다.

    이게 성경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늘 힌트를 남겨둔다…

     

     

    •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 1948년 5월 10일
    • 이스라엘 정부수립일 : 1948년 5월 14일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 땅에서, 눈에 보여지는 이 나라는, 이미 사단에게 그리고 사단의 회에 완전히 굴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단은, 신의 한 수를 모른다.

     

     

    • 왜? 사단이, 사단의 그 회들이, 이 땅을 향해 음모를 꾸밀까.
    • 첫째는, 사단이 예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이유 때문일 테고.
    •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땅에 아직 진짜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영은 이렇게 강하게 느낀다…

     

     

    오늘의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내도록 하겠다.

    전쟁, 영의 전쟁… 예수는 또는 성경은 신구약을 통틀어서 우리에게 전쟁을 준비하고 싸워라 한 적이 없다.

     

     

    성경에서의 모든 싸움은, 예수의 싸움이다.

    성경에서의 모든 전쟁은, 예수가 홀로 치뤘다…

    이게 팩트다.

     

     

    어떻게 싸울거냐?

    이 글을 읽는 기어들은 어떻게 싸우고 싶냐?

    그냥 매달려 있으면 돼. 기어 너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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