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포럼) › 포럼(forums) › Forum Category 5 ‘글(재능/창작)’ › 창작 소설 › [창작소설] Island: 제1장 살자(自殺) – 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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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운이 서경을 떠나 전안으로 내려갔던 그때…
재운의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이 하던일이 줄곧 잘 풀리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고,
부모님은 이미 나이 많아 힘이 없으셨다. 아버님은 암 투병 중이셨고,
동생이라곤 변변히 하는일이 없었다.
실패를 거듭한 결과,
자기 몸 가누기도 쉽지 않았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내일을 생각하는것 조차 힘겨워서 생각을 닫아야 만 했고, 늘 숨이 턱 끝까지 막히는 순간들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재운은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었다…
하지만 좋은 인연도 만났었다. 바로 맹사성이란 인물이다.
사성은, 나이로는 재운보다 일곱살이나 많은 형이고 선배였다.
재운이 사성을 만났던 때는 사성 역시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던때다.
사성은 미대를 나온 사람이고, 그래서 였는지 재운과는 죽이 참 잘 맞았다.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것 조차, 자신의 처지를 아는것조차 싫었던 인물들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사성도 재운이 몹시 힘겨워 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고,
재운에게 사성은 늘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재운도, 성태의 사정을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때면 늘 재운이 사성 곁에 있어 주었다.
사성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할 때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늘 재운과 사성 뿐이었고,
장사를 해보겠다고 카페를 차렸을 때에도 그리고 카페 문을 닫을 때에도 늘 두 사람은 함께였다.
거의 매일매일 얼굴을 대면하며, 수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넘나들었다.
종교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수야에 관한 의문과 진실, 영화와 예술, 사진, 미술, 그리고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미래에 대한 예언까지… 실로 수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두 사람은 넘나 들었었다.
할 일이 없고 할 말이 없을 때에도, 편의점에서 라도 잠시 만나 커피 한모금을 마시곤 했었다.
재운에게 이런 사성은, 적어도 이 시기 만큼은, 다른 누가 필요치 않을만큼 좋은 동반자였다.
때로는 서로에게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도 생기곤 했지만, 별 일 아니었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가진게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는 사실을 재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안에서 10년을 견디며 늘 사성과 함께였던 재운이 왜 사성과의 인연을 정리하려 했는지, 왜 정리했어야 했는지…
사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알지 못하겠지만, 그의 아내 때문에,
그러면 이제 내가 빠져 줘야겠다 생각했던 그 때에도…
적어도 재운에게 지금 당신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분명히 사성형님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재운에게 전안에서의 10년동안 가슴에 남는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재운은 거리낌없이 ‘사성형님 잘 지내나’ 하며 그를 궁금해 할 것이다…
인테리어 사업을 한 경험 때문인지 사성에겐 가끔씩 인테리어 공사 문의가 들어왔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늘 재운과 동행했었고,
어느새 두 사람의 사업이 되어있었다.
그 성태 때문에…
재운은 지나를 만나게 되었다…
하루는 성태가 농촌 마을 내 낡은 창고를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테리어 공사를 따왔는데,
그바람에 성태와 재운은 거진 3주를 인테리어 공사에 매달렸었다.
그리고 그 마을회관으로 사용할 낡은 창고의 공사가 거의 끝나갈무렵…
‘오늘은 술한잔 하고가자.’
‘술한잔? 아침부터 형수님 안색이 안좋던데… 공사 다 끝나고 한잔해요.’
‘안색이 안좋으면 뭐? 어쩔건데? 그러지말고 오늘은 한 잔 하고 가자. 맨정신엔 집에 못들어 가겠다.’
‘왜요?’
아무리 창고라지만,
오랫동안 비워져있던 이 시골의 낡은 창고는 2층짜리 건물이었고,
두 사람이 모든 공사를 진행했다…
힘들법도 한데…
힘들면 힘든데로, 힘들지 않은척 하려고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이었다…
‘너 추석 지나곤 서경 가야지?’
‘네… 나, 마무리 작업 해주기로 한 건 해주고 와야죠. 왜요?’
‘아니, 너 없으면 뭐… 나도 너 따라서 서경이나 다녀올까 하고. 너 촬영하는거 구경도 좀 하고…’
‘그래요 그럼…’
그리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두전동의 카페 밀집가 중 15층 짜리 건물 8층에 위치한 ‘꿈’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카페였다.
꿈은, 여느 카페와는 달랐다. 건물 현관 옆 간판에서부터 ‘카페 꿈!’ 이라고 적혀있는 로고 밑에 작고 수줍게 ‘여자친구’라는 수식어가 써있었고,
손님을 접대하는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손님이 하나의 작은 공간에서 단 둘이 데이트를 즐기는 생소한 문화였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쭉 뻗어있는, 마치 벽을 나눈것 같은 여러 칸막이가 대략 8개의 룸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나뉘어 있었다.
현대판 기생집과 같다고 할까. 아니면 저렴한 버전의 룸살롱?
재운과 성태는 카페 입구 소파에 앉아서 카페 매니저를 기다린다.
차를 타고오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성은 이곳을, 지금 두 사람이 하고있는 공사 현장일을 중개해준 사람과 왔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성은, 결혼도 하지않고 애인도 없는 재운이 생각이 났었나보다.
재운은…
이런 카페에… 이성과 술한잔 할 수 있는 이런 카페에 와보는게 얼마 만일까…
서경을 떠나선 처음인 것만 같다…
처음 만나는 이성을 기다리는 이 시간…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지금많이 느낄수 있는 이 설레임과 떨림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것만 같다…
어떤 사람일까? 그저 단 둘이 술잔을 채워주며 데이트를 하는 곳이란 이곳에서 어떤 데이트를 할 수 있는걸까?
설레이고, 또 떨려온다…
여유롭게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재운에게 뭔가 이야기를 건네는 사성과는 달리,
사성의 말에 반응은 하지만, 재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어떤 여성을 만나게 될지 긴장하고 있다.
조금후 두 사람은 카페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미로같은 카페안의 각각의 룸으로 들어간다.
한 두 평 정도 될까.
카페안 각각 나누어진 작은 룸과 같은 칸칸이 나누어진 이 칸 안엔, 무릎에서 천장 까지를 눈으로 보아도 두꺼워 보이는 커튼이 문처럼 덮혀있다.
칸 안엔 기다란 소파가 있고, 소파앞엔 예쁜 테이블이 하나있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사성이 들어간 칸엔 벌써 어떤 아가씨가 들어갔나보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완전히 벽이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방음이 되는구나…’
재운은 생각했다.
고요하다…
긴장한 재운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똑똑똑.
한 여성이 칸막이의 벽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커튼을 재치고 모습을 드러낸다.
재운은 그저 눈을 껌뻑거린다…
여성이 재운에게 다가오는 동안에도,
재운은 웃지도 미소를 머금지도 않는다.
그저 눈을 껌뻑거릴 뿐이다.
‘이 사람… 이 사람…’
여성도 어떤 손님이 왔는지 궁금했는지 칸 안으로 들어오며 재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턱하고 앉는다.
그리고는 술시중을 들기위해 술병을 따는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빠 여기 처음이야?’
‘음…’
여성은 재운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려고 술병을 들고 기다리는데, 재운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고만 있다.
‘어떻게…’
긴장한채, 긴장하고만 있는 재운을 보며 여성이 웃는다.
하지만 이 여성은, 재운이 자신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재운은 지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그땐 재운이 소희라는 여자와 사귀고 있을 때였는데,
두 사람이 늘 붙어 다니는 통에, 친구들 앞에서 언약식 아닌 언약식까지 치뤘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와 결혼을 할 것이란 사실에 의심의 여지도 없었던 때였다.
그런때에, 어느날 수야가 느닷없이 자고있던 재운을 깨우곤 지나를 보여줬었다.
넌 소희와 결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아이는 이 아이라고…
자신이 창세전부터 너희 둘을 하나로 낳았다고…
지나가 어렸을때의 모습부터…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그 모습까지…
어느 순간 잊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때엔, 그 꿈을 보여준 이가 꼭 수야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재운은 그 지나의 모습을, 이 미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똑똑히 기억이 되살아 났다는 표정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있고 있었던 그 지나를…
재운은 이곳 꿈이란 카페에서 이제야 만났다…
수야가…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아이는 이 아이라고 했던 그 아이…
그 지나를… 재운은 이제 만났다…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그 지나를 만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녀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는 그저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채,
긴장한듯 보이고, 뭘 해야할지 몰라서 초조해 하는듯 보이는 재운을 보며,
재운을 달래 주려는 지나. 멋쩍게 미소를 보이는 재운.
지나도 이런 재운이 싫진 않은 눈치다…
바람이 불어와.
하염없이 낙엽이 떨어졌던 오늘. 그해 10월…
오늘 널 만나는 구나.
어떻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할까.
인사를 건네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망해서, 힘겨워서 이곳으로 내려오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날… 커다란 이삿짐센터 차에 짐을 가득싣고 이곳으로 내려오던 그때…
그때는 절망감과 상실감만 가득했었는데…
그런데, 이곳에서 널 만나는 구나.
그땐 몰랐어…
바람이 불어.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일까…
이렇게 만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저 멍하니… 그저 어렴풋이…
어떤 재단에서 만나게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곳에 내려와서,
기쁜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결코, 잊을수 없을것만 같아…
감사해…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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