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Island: 제1장 살자(自殺) – 제2화.

포럼 [창작소설] Island: 제1장 살자(自殺) – 제2화.

  • 2018년 10월 29일 4:41 오후

    살자(自殺). 제2화.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 인연도 아닌데…
    별 일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별 인연인것 같은 지나…
    이유가 있겠지…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서울을 떠나 천안으로 내려갔던 그때,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처음 천안에 도착했던 나는 그랬다.
    그런데도 힘든걸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었다.
    그땐 또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소사날 구멍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누군가가 필요할때면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고, 일이 필요하면 일이,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소사날 구멍이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쨌든 죽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이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알게된 사실이 한가지 있다면,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이었다…

    그리고 그 천안에서, 지나를 만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 지나를…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어느날…
    내일을 생각하는것 조차 힘겨워서 생각을 닫아야 만 했던 그 시기에, 하루는 웨딩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 알바 때문에 인터뷰를 하러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에, 맹사성이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알바 때문에 인터뷰를 하러 간 날, 스튜디어 실장은, 내 포트폴리오를 보곤 곧바로 식사를 함께 하기를 청했다.
    결국 그곳에서 한번, 두번 촬영을 대신 해 주었을뿐 정식으로 알바를 하진 못했지만, 지금 내 기억으로 실장이란 분은 쿨한 사람이었다.
    그 스튜디어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식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사를 하면서 맹사성이란 사람이 이 스튜디어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는 사실도 알았고,
    그 스튜디어 실장과는 오랜동안 호형호제하는 사이임을,
    인테리어 공사 잔금 문제로 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이로는 나보다 일곱살이 많은 형이고 선배였다.
    그때는 그와의 인연이 아주 오래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날, 그 일식집에서도 말이 참 잘 통하는 사람으로 기억 되었지만,
    어느날 그가 상의할 일이 있다며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한 날로부터,
    천안을 떠나는 순간까지, 천안에서의 거의 모든 기억속에, 그가 있었다…

    ‘오늘은 술 한 잔 하고가자.’
    ‘아침에 형수님 안색이 안좋던데. 공사 다 끝나고 한 잔 하시지?’
    ‘안색이 안좋으면 뭐? 어쩔 건데? 그러지말고 오늘은 한 잔 하고 가. 맨 정신엔 못들어 가겠다.’
    ‘푸~’

    미대를 나왔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맹사성의 작업실 첫느낌은,
    비록 4층짜리 건물의 원룸이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나무를 깎아 손수 만든 책상 등 멋스럽고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그 시기, 사성도 형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시기였었다.
    처음 그의 작업실을 초대받아 간 그날, 나는 단번에 느낄수 있었다.

    사업을 확장해 일산으로 진출해 사업 확장을 했던적도 있지만,
    공사 잔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어 영업을 해보지만, 남은 것이라곤 빚 뿐이었다.
    그런 시기에 만난 두 사람은 죽이 참 잘 친구였고 동업자였고 동반자였다.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것 조차, 자신의 처지를 아는것조차 싫었던 인물들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사성도 재운이 몹시 힘겨워 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재운에게 사성은 늘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재운도, 사성의 사정을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때면 늘 재운이 사성 곁에 있어 주었다.
    사성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할 때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늘 재운과 사성 뿐이었고,
    장사를 해보겠다고 카페를 차렸을 때에도 그리고 카페 문을 닫을 때에도 늘 두 사람은 함께였다.

    거의 매일매일 얼굴을 대면하며, 수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넘나들었다.
    종교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예술, 사진, 미술, 그리고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할 일이 없고 할 말이 없을 때에도, 편의점 에서라도 잠시 만나 커피 한모금을 마시곤 했었다.

    재운에게 이런 사성은, 적어도 이 시기 만큼은, 다른 누가 필요치 않을만큼 좋은 동반자였다.
    때로는 서로에게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도 생기곤 했지만, 별 일 아니었다.
    원했든 아니든, 가진게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는 사실을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사업을 한 경험 때문인지 사성에겐 가끔씩 인테리어 공사 문의가 들어왔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늘 재운과 동행 했었고, 어느새 두 사람의 사업이 되어있었다.

    하루는 사성이 농촌 마을의 어느 낡은 창고를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테리어 공사 일을 따왔었다.
    그바람에 사성과 재운은 거진 6주를 인테리어 공사에 매달렸었고, 그리고 그 마을회관으로 사용할 낡은 창고의 공사가 거의 끝나갈무렵…
    지금 두 사람은 두정동이라는 술집이 즐비하게 밀집해 있는 곳을 향하고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두 사람이 하고있는 이 공사를  중개해준 사람과 ‘카페 꿈’이란 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사성은, 결혼도 하지않은, 애인도 없는, 재운이 생각이 났었나보다.

    ‘너 추석 지나곤 서울 가야지?’
    ‘네… 마무리 작업 해주기로 한 건 해주고 와야죠. 왜요?’
    ‘아니, 너 없으면 뭐… 나도 너 따라서 서울이나 다녀올까 하고. 너 촬영하는거 구경도 좀 하고…’
    ‘그래요 그럼…’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두정동의 카페 밀집가 중 15층 짜리 건물 8층에 위치한  ‘꿈’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카페였다.
    꿈은, 여느 카페와는 달랐다. 건물 현관 옆 간판에서부터 ‘카페 꿈’ 이라고 적혀있는 로고 밑에 작고 수줍게 ‘여자친구’라는 수식어가 써있었고,
    손님을 접대하는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손님이 밀폐된 공간에서 둘 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다소 생소하고 낯선 곳이었다.
    현대판 기생집, 아니면 저렴한 버전의 룸살롱이랄까.
    재운과 사성은 카페 입구 소파에 앉아서 카페 매니저를 기다린다.

    이런 카페에…
    이성과 술 한 잔 할 수 있는게 얼마 만인가. 서울을 떠난 이후론 처음인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이성을 기다리는 이 시간…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대화는 잘 통할까?
    어떤 데이트를 할 수 있는걸까?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수 있는 이 설레임과 떨림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것만 같다.
    설레이고, 또 떨려온다…

    어느새 우리는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각자의 밀실에 들어와 있다.
    밀실은, 한 두 평 남짓 되보인다.
    밀실 안엔 기다란 소파가 있고, 소파앞엔 예쁜 테이블이 하나있다.
    특이했던건 양치질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있었다.
    고요하다… 설레이는 내 마음 때문이겠지…
    한 10여분쯤 지났을까.

    똑똑똑.
    누군가 노크를 한다. 그리고는 밀실의 문이 열린다.
    한 여성이 쟁반에 작은 양주 한 병, 두 잔의 컵, 그리고 마른안주를 담은채 가지고 들어온다.
    어떤 손님이 왔는지 궁금했는지 밀실 안으로 들어오며 그녀도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눈치다.
    나는 그저 침을 꼴깍 삼키며 이 여성을 보고만 있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이 순간에도, 나는 차마 웃지도 못했다…

    ‘이 사람… 이 사람…’

    내가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내 옆으로 다가와 쟁반을 테이블위에 내려놓고는 턱하고 앉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술시중을 들기위해 술병을 따는 그녀의 몸짓에서, 내가 몹시도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그녀를 느낄수 있었다.

    ‘오빠 여기 처음이야?’
    ‘음…’
    ‘어떻게…’

    너무 긴장한듯 보이는 나 때문에, 그녀가 웃는다.
    아무말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는 나 때문에 그녀도 조금은 당황하는 눈치다.
    내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는데, 난 잔도 잡아들지 못했다…

    ‘지나… 지나다…’
    ‘이름이 뭐야?’

    내가 했던 첫마디다.

    ‘지나… 오빠는?’
    ‘재운…’

    그녀가 자꾸만 웃는다. 내가 정말 많이 긴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나보다.
    하지만 이 여성은, 재운이 자신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재운은 이 여성을 똑똑히 알고있다.
    그래서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땐 내가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을 때였는데, 우리는 늘 붙어 다녔고 우리가 결혼을 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때에, 어느날 느닷없이 자고있던 나를 깨우더니 지나를 보여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넌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없단다.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아이는 이 아이야. 내가 창세전부터 너희 둘을 하나로 낳았어. 이 아이를, 만나게 될거야.’

    지나가 어렸을때의 모습부터,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그 모습까지…
    나는 날이면 날마다 지나를 보았었고, 지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순간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하지만 머리속에 있는 지나의 존재가 지워저 본 적은 없다.
    그 지나… 있고 있었던 그 지나를…
    이곳 꿈이란 카페에서…
    이제야 만났다…
    너와 운명을 함께 할 아이는 이 아이라고 했던 그 아이…
    그 지나를, 이제 만났다…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그 지나를 만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녀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때 나는,
    그저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채,
    긴장한듯 보이고, 뭘 해야할지 몰라서 초조해 하는듯  보이는 나를 보며,
    나를 달래 주려는 지나.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지나…
    멋쩍게 미소를 보이는 나…
    다행 이었던 건,
    지나도 이런 내가 싫진 않은 눈치였다.

    ‘바람이 불어와.
    하염없이 낙엽이 떨어졌던 오늘. 그해 10월…
    그날 널 처음 만났었구나.
    어떻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할까.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던데.
    고맙다고.’

    ‘망해서, 힘겨워서 이곳으로 내려오던 그 순간이 떠올랐었어.
    그날… 커다란 이삿짐센터 차에 짐을 가득싣고 이곳으로 내려오던 그때…
    그때는 절망감과 상실감만 가득했었는데…
    그런데, 이곳에서 널 만나는 구나.
    그땐 몰랐어…’

    ‘바람이 불어.
    내가 바람을 좋아해서 일까…
    이렇게 만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그저 멍하니…
    그저 어렴풋이…
    막연하게, 어떤 교회에서 만나게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곳에 내려와서,
    기쁜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결코, 잊을수 없을것만 같아…
    감사해…’

    재운의 집 소파에 앉아있는 지나…
    헛기침을 하며 어두움이 짖게 내려앉은 창밖을, 그저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던 건지 아니면 현관문을 스치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소리 때문이었는지 지나가 현관쪽으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재운이, 오늘밤엔 돌아올까…
    침을 꼴깍 삼킨다.
    아무런 말도없이 어디론가 가버린 재운 때문에,
    뭐랄까… 지나도 근심어린 표정이다…

    캄캄한 시골.
    재운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불빛 때문에,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집앞에서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재운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가 피워대는 담배의 연기도 선명하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진 않았는데…
    따뜻한 밥한끼 함께 먹으면서, 서로 격려해주고, 서로 이해해주면서…
    그렇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정리해야 할 시간이…
    이런 식으로 다가왔다…

    띡. 띡. 띡. 띡.
    재운이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현관문이 열린다.
    신발 아래를 멍하니 내려보다가, 재운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스르륵. 중문을 여는 재운.
    맞은편 싱크대 앞에서 중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내는 재운.

    그런데 지나는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문이 닫혀있다. 화장실에 있나보다.
    재운이 커다란 배낭을 중문옆에 털썩 내려놓고는 소파로 다가와 앉는다.
    침을 꼴깍 삼키는 재운.
    지나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라도 할까봐  긴장한 표정으로 멍하니 정면을 응시한다.
    절대로 화장실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그만큼 초조하고, 낯뜨겁고, 또 긴장한 것이다.
    지나도 분명히, 재운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렇게 잠시 앉아있는데, 소파에 앉아있을 지나를 생각하며 들어온 탓에,
    중문을 열 땐 보지 못했던, 중문 앞,
    그러니까 녹색 오일 페인팅이 되어있는 나무로 만든 책상 앞에 떨어져 있는 지나의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온다.

    ‘왜 지나의 스마트폰이 저기에 떨어져 있지?’

    재운이 조심스럽게, 아주 살며시 소파에서 일어서선 화장실 문 앞으로 다가간다.
    고개를 푹 숙인 재운. 표정은 어둡다.
    똑. 똑. 똑.

    ‘지나야…’

    지나를 불러보는 재운의 목소리는 미동이 치듯 살며시 떨렸고, 자신감도 없는 느낌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나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는 아니다.
    어쩐지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재운이 화장실 문을 열어본다.
    화장실 불이 꺼져있다.
    재운이 화장실 불을 켜 보지만, 지나는 화장실에 없다.

    화장실 불을 끄곤, 화장실 문을 닫곤, 다시 소파로 다가와 앉는다.
    그럴리가 없다. 지나는 분명히 집에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재운은 지나를 느낄수 있다.
    지나는 분명히 집에 있었다…

    눈을 껌뻑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재운이 소파에서 일어나 중문으로 다가가 중문을 열어본다. 스스륵.
    그렇다. 지나의 신발도 분명히 지나가 재운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의 신발, 바닥에 떨어져있는 지나의 스마트폰.
    재운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지나의 스마트폰을 짚어들곤 다시 소파로 다가와 앉는다.
    눈을 깜빡거리는 재운…

    ‘무슨 일이지?’

    그러고 보니까 지나는 보일러도 켜지 않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추운데…
    오늘, 해야할 말 때문에 무겁고 착잡했던 심정이,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지나가…
    어딜 간거지…
    신발을 벗은채, 밖에 나갈 지나가 아니다…
    지나는 분명히 집 안에 있었는데…
    분명히 지나였는데…
    어떻게 된거지…

    지나가…
    사라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