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Island: 제1장 살자(自殺) – 제1화.

포럼 [창작소설] Island: 제1장 살자(自殺) – 제1화.

  • 2018년 10월 24일 12:00 오후

    살자(自殺). 제1화.

    휘~ 휘~
    바람이 분다.
    산 위에서의 겨울 풍경은 온 통 새하얗다.
    그리고,
    산 정상에 서서는 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고있는 남자가 있다.
    재운이다…

    ‘이 산을 내려가면, 끝을 낼 것이다. 다짐했던데로. 늘 마음을 다졌던데로.’

    이 겨울에, 이 산을 처음 와 본 사람이라면 눈 덮인 산등성의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 생각했겠지만,
    재운은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의 눈내린 산등성이가 아름답지 않아서는 아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가짜인줄 알기에,
    그 사랑이 한낯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알기에,
    그는 굳게 다짐을 하고 또 하였지만,
    그래도 아프고, 또 아프고,
    슬픔을 만끽하는 육신을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서, 그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을 바라보고 서 있는것 말고는,
    혹시 시간이 재운을 피해갈 지도 모르니까…
    혹시 이 시기가 홀연히 지나쳐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눈이 많이 내린 농촌의 풍경.
    날은 춥고 길이 꽁꽁 얼어서인지 인적이 없다.
    오래된 기와장 지붕에 쌓여있는 눈을 뚫고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을 뿐이다.
    재운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이 한적하고 작은 농촌의 원룸에서 살고있다.

    재운의 집 소파위에 앉아있는 지나는,
    점퍼를 입고있고 두꺼운 이불로는 다리를 덮은채 몸을 움츠리곤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수정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안 와?’
    ‘쫌 만 더 기다려보고.’
    ‘전화해. 데리러 갈 께.’
    ‘음…’

    재운의 집.
    현관문 앞을 중문이 가로막고 있는 집은,
    중문을 열면 왼쪽 벽을 따라 커다란 창문이 하나, 둘, 셋, 벽을 채우고 있고 창문엔 커튼이 달려있지 않다.
    첫번째 창문 앞엔 초록색 오일 페인팅이 된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엔 덩그러니 화분 하나가 올려져 있다. 날이 좋으면 햇빛이 잘 들어 올것만 같다.
    기둥을 지나 두번째 창문 앞에 또 하나의 책상이 놓여져 있는데 컴퓨터가 올려져 있다.
    세번째 창문은 중문과 마주 보고있는, 그러니까 한 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싱크대 앞에 있다.
    중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벽은, 벽 앞에 기다랗고 큰 소파가 놓여져 있고, 소파 위쪽, 그러니까 중문에서 1시 방향에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소파 아래쪽. 그러니까 중문을 기준으로 벽에 가려져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봐야하는 5시 방향엔 또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옷장이 있다.
    직사각형 구조의 뻥 뚫린 이 원룸은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보자면, 창문이 많고 커튼이 달려있지 않아서 밖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하…’

    깊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보는 지나의 입에선 입김이 나온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재운은 꼬박 40일을 집을 떠나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이 산에만 홀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집에서 이 산을 올라와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장호원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여관에 머물며 매일아침 산에 올랐다 내려가기만 했을 뿐이다.
    여행을 할만큼 마음이 편하지도 않은…
    집에서 멀리 떠날수 있을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도 않은…
    오로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알아 듣기를 바랬다.
    아무말없이, 그저 스쳐지나간 인연으로 남으면 그저 그러려니…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 40일을 뒤로한채 집으로 향한다.

    재운은 언제부턴가 침을 내뱉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를 향해서 침을 내뱉는 습관. 마치 화가난 사람처럼, 더러워함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퉤 하며 침을 내 뱉는다.
    몸을 사리는 습관도 생겼다. 사람이 그리 반갑지 않아진 것이다.
    산길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다가올때면 가던길을 멈추고 길 가상 자리로 몸을 움추린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데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누군가가 재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재운도 인사를 건넸다. 이 마을에서 2년째 살고 있지만, 누군가 먼저 인사를 건넨건 처음인것 같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까와 지자 집 안 불이 환하게 켜져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구다… 지나가 와 있구나…’

    그저 직감적으로 지나가 집에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등 뒤는 산으로 돌아가는 시골길, 오른쪽으론 마을회관이 서있고 그 옆으로 국도로 향하는 길이 있다.
    직진을 하면, 바로 앞이 재운의 집이고, 삼거리엔 검은색으로 선팅이 되어있는 승용차 한대가 서있을 뿐이다.
    재운이 가던길을 천천히 멈춘다.

    뭐랄까…
    마음을 아무리 다잡고, 마음을 아무리 정리했어도, 지금 이대로 마주칠순 없다.
    재운이 생각했던 이별은 이런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아듣게 설명을 한다거나, 따뜻한 밥한끼 함께 하면서, 악수하고 서로 격려해주며 헤어지고 싶었다.
    이 밤에, 아무런 말도없이 집을 떠나 40일만에 돌아온 지금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또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흐지부지 지나쳐 버릴 것이다.
    이렇게 헤어질 정도의 용기가 재운에겐 없다.

    재운이 걸음을 멈추고 서있는 삼거리엔 검은색으로 짖게 썬팅이 되어있는 차가 서있다.
    자신의 집을 지나치며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걷고있는 재운의 모습이 보인다.
    재운이 자신의 집을 그냥 지나쳐선 이 차가 서있는 갈래길을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는 국도쪽 방향, 그러니가 이 검은색 차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잠시 서서는 입술을 질겅질겅 물어 뜯던 재운이, 방향을 돌려 국도로 향한다.
    지나가 자신을 보기라도 할까봐 걸음을 재촉하듯 다급한 걸음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한 5분쯤 걸었을까.
    비탈길을 한번 오르고 내리니 저만치 차들이 휭 달리는 국도길이 보인다.
    국도길 오른쪽으로는 밀집해 있는 서너개의 모텔이 보이고, 왼쪽으론 저만치 장례식장과 그 옆 편의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재운이 편의점 안에서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사들고 나와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는다.
    오갈때가 없는 사람의 서성임,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지푸라기를 찾는 사람처럼, 그의 시선은 자꾸만 국도를 휑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움직인다.
    초조하다. 불안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뭉클함은 무엇일까?
    일부러라도 울고싶은 심정이랄까… 지나가, 집에 와있기 때문이리라…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휭~ 재운의 온 몸을 적시며 스친다…

    To be continued…

    -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