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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대한 지나친경계보다는 조심하고 육의 욕망이 아닌 영의 눈에서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주님을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공유한거에요. 어떤 점이 걸리는 부분인가요? 천국에 대한 확신이요?
북한의 일개주방장이 우리의 최고존엄을 욕하는데 대께문은 모하는지. .모르겠군요.
삶은 소대가리라. . 주방장도 욕해도 되는것인지. .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알 수는 없겠죠. 우리는 그저 있는 자리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할 것 같네요. 다들 건강조심하시구요. 열나면 부루펜계열이 아닌 타이레놀 드시는거 잊지마세요. 장마가 시작되려나 봐요. 대비도 잘하시구요.
조폭 영화가 장면 하나 생각나네요
조직의 비밀을 알리려는 자나 혹은 알리려 한다는 의혹을 받은
조직원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요
또 이런 것도 생각나는군요..
지레 조폭두목이 불안감에 사로잡혀서..누구가를 의심하고
그 의심이 커져서 멀쩡한 조직원을 죽이는 영화의 장면도 생각나는군요
자살당함이 사실이라면 이러나저라나 진실이 알려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겠죠.
형님 제가 여전히 복잡한 생각에 끌림을 느낍니다.
왜 여러분 장황글을 쓰고 지우고 반복했거든요.
왜 그런가 생각하니..본질을.그걸 세세하게 적용하면서
그걸 제 육신에 이해시켜려 하더군요..
즉 제 육신을 만족시키려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억지로 하려고 하는구나…알지도 모르면서..
솔직해져야지 싶더라구요.
아주아주 복잡한 방정식이 있어요…아주아주 복합한 수식이 도배되어 있죠
그런데 본질은 더하기 빼기의 반복이죠…
무슨 말이냐..영이니 육이니…사단의 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복잡하게 거미줄을 치든 말든
무엇이든 결국 예수님을 따르냐 아니냐 이거라는 말이죠.
스스로 계시는 창조주인 예수님을 인정하냐 아니냐. 그분의 질서인..뿌린대로 거둔다는 질서를 인정하냐 아니냐…이거라는거죠.
아무리 복잡해도. 그 본질만 부여잡고 매달리면 된다고 느낍니다.
예수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면 알아서 이끌어 주시겠죠..싶어요.
내 육신도 반응을 육신 자체에서 오는 반응과 육신이 육신이 느낄 수 있는 자극에서 반응하는 것이 있겠죠.
그런 육신의 반응을 내 영이 느낀다는 것이고…
예를 들면 육신이 눈으로 통닭을 보고 통닭에 대한 느낌을 떠올리고 내 영은 눈으로 전달된 통닭의 이미지에서 통닭이란 관념과 관념에 대응하는 언어를 떠올리겠죠. 그 관념이 육신에 전달되면서 육신이 배고픔이란 반응을 보이고 그것을 영에게 전달하면 영은 통닭이 먹고 싶다라는 관념을 그 반응에 대응시키죠..즉 육신이 통닭을 보고 먹고 싶다라고 느낀다라는 것을 아는 거죠. 영은 육신이 주는 자극만 집중해서 느낀 것이죠.
또 다른 예로 육신이 눈으로 통닭을 보고 통닭이란 느낌을 떠올리고 내 영은 눈으로 전달된 통닭의 이미지에서 통닭이란 관념과 관념에 대한 대응하는 언어를 떠올리겠죠.그런데 평소 굶고 있던 동네 친구란 느낌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불쌍함이란 느낌이 떠오르고 동시에 내 육신은 우월감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이란 반응을 보이고 내 영에게 전달합니다. 그 친구에게 통닭을 사주자라는 느낌을 떠올립니다.
또 다른 예로 육신이 눈으로 통닭을 보고 통닭이란 느낌을 떠올리고 내 영은 눈으로 전달된 통닭의 이미지에서 통닭이란 관념과 관념에 대한 대응하는 언어를 떠올리기겠죠 그런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느낌이 떠오릅니다.그것에서 그것에서 굶고 있던 동네친구가 떠오르죠 그런데 동시에 내 육신이 통닭에서 배고픔이란 반응 보입니다. 배고픔이란 느낌에 집중하려는 순간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느낌이 또 울립니다.더 크게…그리고 불쌍함이란 느낌이 떠오르고 배고픔보다 불쌍함이 느낌이 강해지면서 친구에게 통닭을 사자주라는 느낌을 떠올립니다.
이 세 글을 보고 첫글은 영이 육신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보고
두번째 글은 내 영이 양심을 느끼지만 동시에 육은 자기자랑을 느끼고 전달하죠..
세번째 글은 내 영이 말씀을 떠올리고 양심을 느끼지만 이번엔 육신의 일이 생각나죠..육신의 일이 강하게 느낄때 성령께서 간섭해서 다시 말씀을 떠올리게 하죠…그래서 양심을 따르게 되죠.
솔직히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사단도 영적 존재이고 그래서 사단은 내 영에 여러가지 마음을 넣어주잖아요. 영적인 일을 하잖아요.
그 마음을 선택하는 것도 내 영이 하겠지만….
그래서 단순하게 예수님을 따르냐 아니냐 이걸로 나누었는데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 영의 일을 쫓는 일이고
그외에 일은 전부 육을 따르는 것이다라고요
생각이라는 것요 그 생각이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하는 것이라면 영의 속한 것이고…
그 생각이 예수님이 아닌 것을 떠올리면서 하는 것이라면 육에 속한 것이다..라고 하고 싶네요
사실 몇번을 길게쓰고 다시쓰고 했네요….구체적으로 쓰고 싶어서…그런데…그게 실제 양상하고 같은가 생각하니 매번 의문이더라구요
그냥 그 느낌만 적을게요..
육으로는 영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라고 하였기에 예수님은 영이시기에 육으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없죠.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육으로는 느낄수 없게 예수님이 정하였기에 느낄 수 없는 거죠.
영의 일이란 결국 예수님의 일이며 예수님을 느끼는 것이겠죠. 예수님은 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으니 영의 일은 영이 느낄 수 밖에 없죠.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영의일을 영으로 느끼게 정하였기 때문이죠.
간단하게 적고 싶은데…그냥 쭉욱 풀어볼게요
내 영이 육신의 반응을 느끼죠…그리고 육신은 육신이 느낄 수 있는 자극에 반응하죠
내 영은 그런 육신의 반응을 기반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언어나 사상 학문등을 만들었죠..
그리고 그런 것을 통틀어 유전이라고 하죠..
육으로 느낀다는 것은 내 영이 육신의 반응과 유전을 느끼는 것을 말하죠
그리고 육에 점점 매이게 되면서 육만을 바라보게되고 그것은 현상이 모두 육으로 느껴지는 게 전부처럼 느껴지게 되죠
육신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게 있고 그것은 오직 영으로만 느낄 수 있는데 그게 영의 일이죠.
다만 육신으로 느껴지는 것의 본질은 예수님(영)에서 비롯되었기에 엄밀히 표현하면 육에 매여서 느끼는 것은 반쪽짜리이고 영으로도 느껴야 제대로 느끼다고 볼 수 있죠.(육으로 보고 영으로 느낀다)
예를 들면 성경을 읽더라도 그냥 문자라는 형태로 보면 단지 육으로 보는 것이고 그 의도를 알려고 예수님의 심정과 마음을 구하면서 보면 영으로 읽고자 애쓰는 것이다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