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진에 대한 의문

포럼 분별, 관점 그리고 각성 조원진에 대한 의문

  • 2020년 02월 05일 3:53 오후

    토픽을 작성하기에 앞서, 가끔씩 한국인에게선 이상한 습관 또는 습성같은게 보인다.

    예를들면, 친구들과 기분좋게 술 한 잔 했다고 가정해보자. 무슨 말끝에 A라는 친구가 B라는 친구에게 어떤 약속을 한다. B라는 친구는 “정말이지? 정말이지?“를 연거푸 A의 약속을 재차 확인을 원한다.

    또는 이런 상황도 있다. 지레 겁을 먹는 습성 아니면 지레짐작하는 습관이다. 예를들면, A는 비고 B는 C다. 고로 A는 C다. 삼단논법의 전형이다. “고로 A는 C다“를 말하고 있는데, “주제(主題)“에서 벗어나 느닷없이 D를 “주제(主題)“로 삼아 지레짐작하거나 지레 겁을 먹어 반박을 준비하는 습성이다.

     

    이런 한국인들의 습성, 습관들을 마주할때마다., 솔직히 “짠”하다. 진심이다. 나는 이런 습성, 습관이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간직한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식민지 근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식민지 근성“은 밑도 끝도 없이 막연하게 내것을 빼았길 것 같은 두려움, 불안함, 초조함을 동반하고, 이 “두려움, 불안함, 초조함“은 나로 하여금, 내가 가진 이성과 논리를 아사간다. 절대로 논리적으로, 냉정하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조선시대 밥상을 보면, 매 끼니 매 때마다,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광경을 목결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조선땅을 밟았던 선교사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식습관이었고 문화였던 것이다. 내 것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 지금 내가 먹어 치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먹을 것만 같은 두려움. 그 막연한 두려움.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던 배경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 글을 읽는 “포러머”들은, 한번쯤 고민해 보기 바란다…

     

     

    조원진은 분명하지 않다.

     

     

    조원진-분명하지-않다-1

     

    이 기사를 읽었을때의 느낌은 “그가 조선족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만약 아니라면, 굳이 조선족인 척을 할 이유는?

     

    우선 조원진의 프로필 중, 그의 생년월일 이외엔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관한 정보를 찾을수가 없다(난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출신으로 대구 달서구를 연고지로 국회에 입성 했고 현직 국회의원 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조원진을 다루는 대부분의 기사 또는 논평을 통해 심심치 않게 “대구사나이로 묘사“되곤 한다.

    그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기자들에 의해서건, 조원진 스스로가 원해서 요청한 부분 이건 어쨌든 우연히, 그가 대구 사나이가 된 것 같진 않다.

     

     

    그러면 왜? 조원진은 스스로 조선족(중국동포) 앞에선 중국동포로 행세하려 할까. 언제부터? 조원진은 스스로 조선족(중국동포) 앞에선 중국동포로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걸까.

     

    조원진을 의심한다.

     

    그의 약력 중 1996년에서 2009년까지를 살펴보자. 아래와 같다.

     

    • 대우그룹 중국기획조사부장
    • 1996년: 제15대 국회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
    • 2004년 ~ 2008년: 재중국한국인회 부회장
    • 2006년 ~ 2008년: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OKTA) 북경지회 지회장, 상임이사
    • 2008년 5월 ~ 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대구 달서구 병)
    • 2009년: 제18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조원진을 의심하게 된 결정적 근거다. 조원진을 정치인으로, 국회로 입성시킨 장본인이 “황병태” 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다.

     

    황병태가 누구인가.

     

    황병태-1

     

    김영삼을 위장 보수/우파로 둔갑시키고, 막후에서 이른바 3당 합당을 진두지휘 한 인물이다. 그리곤 다시, 김영삼에 의해 정치에 직접 인문했다. 이 황병태가, 보수/우파를 괴멸시키고, 사실상 보수/우파 정당을 파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이 황병태의 등장과 신한국당이 생겨나면서, 이후 좌파와 우파는 분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정체성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대사를 지냈으며, 영원한 대중국대사로 칭송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원진의 1996년~2008년 전후의 황병태의 약력은 어떨까.

     

    • 제2대 주중 대사 – 1993년 6월~1995년 12월까지. 약 2년 6개월.
    • 제15대 국회의원 (경상북도 예천군, 신한국당) – 1996년. 보좌관 조원진.

     

     

    황병태-2

     

    PS) 어떤 사람들은, 여시재를 실직적으로 만든 사람은 홍석현이 아니라 조창걸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황병태가 실질적 친중의 핵심이라 의혹을 재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는 그 속사정을 우리가 지금 다 알 순 없지만 –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표면적으로 들어난 모습으론 본래 가짜, 사단의 회, 좌파들이 그러하듯 서로서로 지들끼리 끓어주고 밀어주는 행동으로 보면 되겠고, 친중 또는 좌파 또는 빨갱이, 또는 홍석현이 세워서 움직이는 말들 모두가 “사단의 회”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로 보면 되겠고, 그 충성을 맹세한 자들 중 적어도 극동아시아에 세워진 “삼극위원회의 한반도 내 우두머리는 홍석현”임은 분명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쩌면 그의 이력을 가장 정확하게 기사로 작성한 신문이 아마도 “미디어 오늘“이 아닐까 싶다.

    우선 좌파언론이고, 운동권에 가깝다. 조원진에 대한 정보 또는 소문, 그리고 의혹에 관해서 보수/우파인들보다 더 잘 알 수 있기도 하다.

     

     

    위 “미디어 오늘” 기사 중 중요한 맥만 소개해 보기로 한다.

    동시에 하고 싶은 “말 또는 의문“을 달겠다.

     

    • 그가 어떻게 친박에 서게 됐는지 잘 이해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학생운동과 YS 핵심참모의 보좌관, 이인제 캠프, 무소속 출마 등의 이력은 친박으로서의 고리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
    •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세월호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이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에서 유가족에 막말을 하고 희생자를 AI(조류인플루엔자)나 산불에 비유해 국민들의 반발을 산 인물이다. –  조원진의 이러한 행동/행위가 의도된 행동/행위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가, 그의 이런 모든 행동/행위가 다분히 계산된, “반 박근혜 정서를 부축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 그는 지난 2월 출간된 자서전 <열정으로 다시 쓰는 내사랑 대구>에서 자신의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 그는 분명히 조선족(중국동포)과는 상관없는 대구출신임이 분명해 보인다.
    • 조 의원은 황병태 의원의 소개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만나 최연소 부장 이사가 됐다가 황병태 의원이 93년 주중대사로 갈 때 중국 베이징에서 기획조사 부장으로 함께 가게 됐다고 전했다. – 따라서 조원진이 신입사원으로 대우그룹에 입사한게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좌파 운동권이었으며, 황병태에 의해서 대우그룹에 입사후, 황병태가 주중대사로 중국으로 떠날때, 황병태와 함께 중국으로 간 인물이다.
    • 그러다 다시 황병태 의원이 대사를 마치고 15대 총선(1996년) 준비로 귀국할 때 조 의원도 함께 귀국해 보좌관 활동을 재개했다.
    • 1997년 11월 13일자 한겨레를 보면, 이인제 당시 국민신당 후보가 발표한 조직책 9명 가운데 대구수성갑 조직책에 ‘조원진(38세·전 대우자동차 부장)’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 이들이,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 이듬해인 1998년 조 의원은 무소속으로 아예 출마에 나섰다. 대구 북구갑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했으며, 2년 뒤 16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했다. 그러다 중국에서 사업하던 조 의원이 2008년 4월 총선을 불과 열흘도 안남긴 상태에서 귀국해 친박의 간판을 달고 출마해 당선됐다.
    • 다만 한가지 연결고리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황병태 전 의원이다. YS의 핵심 정책참모였던 황 의원은 3당 합당 당시 막후협상을 했던 사실상의 주역이었다는 전력 외에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 이른바 ‘박정희의 사람’이기도, 했었던 인물이다.

     

    조원진은, 황병태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인물이다. 이 황병태는 보수/우파 정당을 괴멸시킨 장본인이다. 그런 조원진이 보수/우파?

     

    겉과 속이 다르고 언제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조원진.

     

    https://youtu.be/_gPPPfqXcHE

     

    위 영상은 김무성의 발언을 조명한 영상이지만, 동시에 위 영상을 보면 조금더 진실에 가까운 추리를 할 수 있다.

    나는 위 동영상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우선 탄핵정국당시, 새누리당 내에서의 투표 결과 – 찬성 62, 반대 57표 였다.
    • 2016년 11월 28일 친박 8명이 마포의 한 식당에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친박 8명이 내린 결론은,
    • “도저히 수습이 안되고, 대통령이 탄핵의 불명예를 안게 할 수 없으니 하야를 건의하자” 그리고 곧바로 그 식당에서 이 친박8명은 허원재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에 모여 앉아있는 친박8명의 명단을 불러주고 “하야를 건의한다”고 했다는 사실.
    • 이날 마포의 식당에 모였던 친박8명은 “서청원, 정갑윤, 최경환, 홍문종, 유기준, 정우택, 윤상현, 조원진”이다.
    • 또 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정보를 밝인 인물이 “김무성”이라고 한다. 김무성이 정계 은퇴? 또는 불출마? 처음부터 모든게 꼼수인게 한 당의 대표였다.

     

    김무성은 아마도, 자신이 한 짓이 뭔 질,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조원진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는 이유? 그는 온 몸으로, 나는 화장실 들어갈때 나올때가 다른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조원진-분명하지-않다-2

    조원진-분명하지-않다-3

     

    2016년 11월 28일 그날 마포의 그 식당에서 조원진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다른 친박7명을 설득하는 위치에 있진 않았을까.

    필요하면 고향과 태어난 조국마저 언제라도 뒤바꿀 수 있고, 거짓말 할 수 있는 인간이 진짜다? 넌센스다.

     

    일단은, 뭉쳐서, 문재인 정권을 끓어내려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동의한다. 끓어내려야 한다는 것에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문재인 좌파 정권을 끓어내린후, 또다시 5년이 흘러 다시 좌파정권으로 넘어가면? 그땐 어떻게 될까?

    김영삼에 의해서, 황병태에 의해서, 누가 보수/우파인지 분별조차 할 수 없게 된 현실이 기쁠수 있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정권이 바뀐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오로지 놀아날 뿐이다.

     

    내 글을 읽어본 기어들은 잘 알고있다. 내가, 박근혜 역시, 보수/우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는 도저히 표를 줄 수 없어서, 바로 그때부터 투표를 스스로 거절해 왔다는 사실을. 박근혜 탄핵 때문에 조원진의 정체 운운하는게 아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놀아나지 말길 바랄뿐이다. 그 누구도, 우리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 토픽의 마지막은 아래의 질문으로 대신하려 한다.

     

    Q) 김무성과 조원진이 다른게 뭔가? 스스로 답하여 보라.

     

     

     

Tagg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