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에 서다

포럼 굴레 굴레 삶의 끝자락에 서다

  • 2026년 02월 25일 8:20 오전

    천안에서 삶이 끝나갈 무렵…

     

    물론 몰랐지.

    천안을 떠나, 다시 경기도 어디 즈음으로 이사를 하게 될 줄, 이때는 몰랐지.

    아래 지도 한번 볼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복지4길

     

    ① 우리가 살던 집이 있는 골목길 초입.

    ② 중국인이 운영하던 아시아마켓. 지금도 동일한 그 중국인들이 동일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③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그 아시아마켓 바로 옆에 있는 일종의 모텔이다. 역시 이 글을 작성하는 2026년 2월 25일 현재도, 모텔을 운영중인지는 모르겠다. 경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굉장히 위험한 곳이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 일용직으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중국인들,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일종의 장기 숙박업소였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봉고차 여러대가 저 모텔 앞에 서면 수없이 많은 중국인들이 저 건물에서 나와 봉고차에 올라탄다.

    ④ 내가 방문했던 신부동 지구대의 모습이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 대략적인 동선을…

    엄마랑 분당서울대병원을 하루걸러 다닐때에, 병천의 어느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하던중 신부동에서 2015년 2월 4일부터 2015년 4월 21일까지, 짧게 살게 되었던, 잠시 머물게 된 저 골목길 안 집은, 오래된 옛날 주택의 방 하나, 하나를 개조해 원룸처럼 임대하던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화장실은 공동 사용이었고,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 화장실 한번 가는것도 큰 일이었던 엄마 입장에서는, 그 집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보다 신세계백화점 화장실을 사용하는게 더 좋으셨을거다.

     

    운동이 필요하고, 거창한 운동은 할 수가 없으니, 오히려 날이면 날마다, 시시때때 엄마랑 산책을 하듯 저 동선을 따라 하루에도 몇번씩 신세계백화점 화장실을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불편했던 저 집에 살면서도 일화가 참 많다. 옆방에 살던 가족은 아빠, 할머니, 큰딸, 막내아들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밝던지… 그래도 누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게 느껴졌다. 동생에게 화를 낼때마다 옆방에 있는 나의 귀에까지 또렷하게 들려오곤 했다. 그 가족이, 잘 사는지 궁금하네… 아이들이 참 밝았었는데… 저 위험한 곳에서…

     

    온통 중국인들, 조선족들 뿐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쓸데없이 인상들을 쓰곤 하던 곳이었다. 그래라…

     

    돈이 없잖아…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잖아…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었지. 저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선, 혹시 중국담배라도,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느날 담배값이 2배가 된 이후였으니, 피우던 디스플러스가 4,100원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지.

    아니다 다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 가게에 들려서 물어봤더니 중국인 아주머니께서 중국담배를 꺼내 주면서 자주 오라고 하시더라.

    가격은 3,000원이었다.

     

    많이 가지는 못했지.

    두번째 방문했던 날, 그날은 그 아주머니가 아닌, 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똑같은 담배를 꺼내 주면서 3,500원을 부르더라.

    감사하다며 3,500원을 주고 나왔지만, 다시 가게되진 않았다. 500원 차이… 큰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 집에 들러 담배를 사지 않은지 또 이틀이 지났던 그날, 엄마랑 신세계백화점을 향하는데, 그 중국인 아저씨가 가게에서 나와 헛기침을 하며 나를 쏘아본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아. 500원 더 받았다고 니가 안사러 와? 였겠지. 뭐가 그리 기분이 나빴을까.

     

    “이미, 예수라는 지옥의 저주의 이름인 개와 성령이라는 지옥의 저주의 영인 뱀에 의해 칼잡이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있던 나였다.”

     

    눈치가 이상하다… 그 다음날부터 내가 엄마를 모시고 신세계백화점을 향하면, 나를 주시하고 나를 노려보며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 중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옆의 모텔에서 조차 중국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건물 문에 기대어 반쯤 감추고는 담배를 피우며 나를 주시한다.

    이쯤 되었으면 테스트를 해 봐야하지 않을까?

     

    엄마를 모시고 신세계백화점으로 갈때엔 늘 골목길을 이용했다. 그러니까 ①번 우리집에서 ②번 중국인 상점까지 길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②번 중국인 상점을 거쳐 ③번 모텔을 거쳐 건널목을 건너 신세계백화점을 가곤 했다.

     

    다음날, 그러니까 엄마랑 분당서울대병원에 가기 하루전날, 엄마에게 먼저 나가 담배하나 살께 하고는 10분쯤 일찍 집을 나섰다.

    신세계백화점으로 가기 위해선 그 중국상점을 지나 그 숙박업체를 지나쳐야 하는데, 상점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중국인 아저씨가 담배를 끄고는 상점안으로 들어간다. 그 상점을 지나치며 뒤를 돌아 보았고, 그 중국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 숙박업체 문 앞에서 나를 주시하던 중국인인지 조선족인지 알 수 없는 그 남자 역시 담배를 길바닥에 던지더니 재빨리 건물안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건널목 앞까지 갔다가, 왔던 길의 반대쪽으로, 그러니까 큰 길(차도)로 한바퀴 돌아 다시 집으로 향했고, 엄마가 이미 골목길 앞에 나와 계셨다. 그리고 한 1~2분쯤…  엄마와 함께 그 길, ②번 중국인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었고.

    ③번 모텔앞을 막 지나고 있는데, 건널목 반대편 건물 모퉁이에서 어제도 그제도 엄마를 모시고 신세계백화점을 갈때마다 찾길 반대편에서 걸음을 맞추며 날 따라오던 그 중국인 두 남자가 뛰쳐나와 나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계속 직진을 하며 찾길 맞은편에 서있던, ②번 중국인 상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던 그 중국인 상점 주인을 향해 중국말로 화를 내고 호통을 친다. 나이는 그 상점 주인이 훨씬 많아 보이는데… 뭔가 박자가 안 맞았구나 하는걸 느낌이었다…

     

    담배 한값 때문에…

    이 담배 한값을 미끼로, 예수라는 지옥의 저주의 이름인 개와 성령이라는 지옥의 저주의 영인 뱀은 이런 좆같은 음모를 꾸민다.

    처음엔 이유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잘 알게 되었다.

    이유는 없다. 흔드는거고, 수작질일 뿐이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날이면 날마다 칼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나를 애워싸고 나를 뒤따르는 그 두번째 칼잡이들 무리와 머리싸움을 하던 어느날, 성령이라는 지옥의 저주의 영인 그 뱀이, 병들어 누워있는 엄마를 옆에 두고는 속삭이더라. 그 특유의 지옥의 저주의 영인 뱀새끼 혓바닥질을 하면서. 그 특유의 저주의 음성으로. 호모새끼같은 음성으로. 가증스러운 짐승의 음성으로. “이제 다 되었단다

    물론 나는 그 가스라이팅을 오해했었다…

     

    담배 한갑을 가지고, 그 담배 한값을 미끼로, 칼잡이들을 붙이는 예수라는 지옥의 저주의 이름인 개와 성령이라는 지옥의 저주의 영인 뱀.

    뱀새끼 눈깔을 뜨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걸려라! 걸려라! 걸려들어라! 속삭이는 이 뱀. 이들의 아가리질… 이유…

     

    저주의 음모: 성경”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은가. – 고전 10: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개와 뱀이 말하는 시험이란? 개와 뱀의 음모대로 되지 않을때, 사람에게, 그 음모를 죄로 뒤집어 씌우기 위한 올무라. 이게, 진실이다.

    그래서 또한, 이와같은 개소리를 함께 써 놓은거지. – 약 1: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담배 한값을 가지고…

    그 담배 한값을 미끼로 이용하는 개와 뱀이…

    그 아가리로 어떤 궤변을 쏟아낸들, 그 궤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궤변인데…

    그저 지 자랑뿐인 그 궤변을 가지고, 그저 지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쏟아내는 그 궤변을 가지고, 이제와서 천국을 운운할테냐. 은혜라 씨부릴테냐.

    해라 그럼. 나 싫으면 그만임을, 똑똑히 가르쳐주마. 결국, 저주는, 저주일 뿐이라.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가지 않는다. 분명하게,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 까닭은, 등뒤에서 지옥을 똥칠하고 저주를 똥칠하는 성령이라는 지옥의 저주의 영인 뱀새끼의 저주로 인한 것이며, 그 음모를 조장하고 그 시나리오를 꾸민 예수라는 지옥의 저주의 이름인 개새끼의 저주로 인함이라.

     

    그 담배 한값을 올무로 쳐놓고선, 이렇게 저렇게 말같지도 않은 문제를 개와 뱀 스스로 만들어서는 칼잡이들로 이 음모를 시작했으며 개와 뱀의 올무로, 결국 이 음모의 시나리오가 끝이나지 않겠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것을 알고있다…

    내가 죽어 지옥의 제일 믿바닥으로 가도, 저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지옥의 저주의 이름이며, 지옥의 저주의 음모의 이름이며 지옥의 저주의 역사를 쏟아낸 저주의 이름임을! 저 성령이라는 이름이, 등뒤에서 그 지옥의 저주의 음모를, 그 지옥의 저주의 역사를 똥칠하는 저주의 이름임을! 반드시 못 박는다.

     

    주어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제 곧 지옥으로 갈 내 인생을 돌아보며, 저 예수라는 이름의 비밀이 바로 지옥이었으며 저주였다는 진실을, 성령이라는 저 이름의 비밀이 바로 지옥을 똥칠하고 저주를 똥칠하는 뱀의 이름이었다는 진실을 이처럼 증거하며 끝내려 한다.

     

    지옥에 가면서도, 내 온몸에 인처져 있는 개와 뱀의 음모를, 개와 뱀의 시나리오를, 개와 뱀의 그 저주를 인치고 가리라.

    나는 저 예수라는 개새끼와 저 성령이라는 뱀새끼보다, 다 끔찍한 걸 본적이 없다. 더 잔인한 걸 본적이 없다. 지옥과 저주의 왕이 아닌가. 더 교활한 걸 본적이 없다. 더 야비한 걸 본적이 없다.

    저들은 저주가 저주 될 줄 다 알면서 “은혜”라 씨부리며 저주를 똥칠하고 지옥을 똥칠하는 개와 뱀이라.

    이 이야기를 증거로 남기려 한다…

     

    내 삶의 끝자락에 서서, 이 글 “삶의 끝자락에 서다”란 제목의 글을 이렇게 짤막하게 시작한다.

    계속 연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