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이동은 있었는가

포럼 민족의 대이동은 있었는가

  • 2018년 12월 05일 8:47 오후

    한국인은 정말 여러 혈통 및 민족의 피가 뒤섞인 민족일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이전에 작성하고 소개한 유튜브 영상들을 모아보았다.

     

     

     

     

    여기에 추가로 아주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4부작을 소개해 볼까한다.

     

     

    https://youtu.be/wJUaE0jwIGc

     

    https://youtu.be/SXjJ9w6JQdY

     

    https://youtu.be/M4tADkeKCIA

     

    https://youtu.be/VoC0_IN6TjY

     

     

    고대사에 관심이 생긴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특별히 고대사를 재미있어 하는것도 사실이다.
    우선,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건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고, 사실이고, 팩트다.

     

    우선 유목민으로 대표되는 흉노족 이야기를 좀 해보자.
    위에 소개한 지난글 “신라 김씨는 정말 흉노의 후예일까“를 통해 소개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서 사용하던 화폐 “화천”이란 동전이 가야에서 발견된다는 예를들며 이를 근거로,
    중국 > 가야 > 일본이 해상무역으로 묶여 있었음을 증거한다.

     

    화천이란 동전이 한반도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 많으로도 왕망이 신국을 세울당시 왕망을 도운 흉노 김씨 일가가 가야 또는 한반도에 매우 밝았을 것이며, 자신들의 무역항로였을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그래서 왕망이 세운 신국이 패망할때 깊은 연관 또는 인연이 있는 한반도로 도망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망의 신국 패망 연대와 한반도에 김씨들이 출연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 두번째 소개한 “한국인은 남태평양, 인도, 유목민 조합의 민족“를 통해선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추리를 할 수 있었다.
    ㄴ 가야국 태조 김수로의 아내 허황후… 과연 그 인도인이 한반도에 출연한 최초의 인도인일까.
    ㄴ 인도의 공주가 새로운 땅에 왔을땐, 적어도 그 땅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었을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ㄴ 그러면, 인도에서 온 공주 허황후 이전에 이 땅엔 많은 인도인들의 이주가 있었다고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ㄴ 앞 서 소개한 고인돌과 돌 하루방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유산이다.
    ㄴ 그리고 남태평양, 그 중에서도 적도 주변 지역에만 남아있는 돌 하루방의 유산이 한반도에서 먼저 발견된다.
    ㄴ 한반도 어디? 바로 전라남도와 제주도 뿐이다.
    ㄴ 이 돌 하루방의 문화를 남기며 정착해 살 던 사람들, 그리고 그후 농경사회를 일구어 살 던 사람들 이후, 유목민이 등장한다.
    ㄴ 바로 말갈어(말 고을어)를 사용하는 고구려인들과 고구려에서 독립해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의 두 아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망이 세운 신나라의 패망이후, 한반도로 도주해온 김일제의 후손들, 바로 신라 김씨로 대표되는 흉노족들이다.
    ㄴ 국가의 기틀은, 그리고 언어는, 결국 이 유목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ㄴ 한국의 언어는, 분명히 이 유목민들에 의해 세워진 알타이어 계통이다.
    ㄴ 하지만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보면, 그 단어들은 인도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을 부정하면 설명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쌀(살), 벼, 씨, 풀, 메뚜기, 가래 등… 분명히 인도에서 전파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하는 가야에 관한 다큐멘터리…
    가장 흥미롭게 본 편은 “가야2부 : 파형동기의 비밀” 이었다.
    이 영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파형동기의 비밀을 찾는 과정에서,
    가야는 북방계 유목민과 남방계 인도계가 함께 세운 나라였을 가능성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확인 했다는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야와 일본과 인도가 함께 묶여있다는 사실을 더 실질적으로 느낄수 있다.

     

    내가 오늘 하고싶은 합리적인 추리는 다음과 같다.
    ㄴ 화천이란 동전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민족의 이동 또는 이동경로를 충분히 설명한다.
    ㄴ 이 화천이란 동전은 가야에서만 발견되는건 아니다. 일본의 이도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ㄴ 이도는 가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지역으로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ㄴ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그 세대에, 화폐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흘러갔다.
    ㄴ 화폐는 흘러갔는데, 사람을 흘러가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을까.
    ㄴ 일본의 역사에서 흉노족 또는 유목민들이 이주해 들어갔던 역사 역시 사실이고 팩트다.
    ㄴ 가야와 일본은 뭔가 정신적으로 깊이 연관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밑의 그림 한 점을 살펴보자.

     

     

     

     

    당염립본왕회도란 중국 고서에 소개된 왜, 신라, 백제, 고구려에서 온 사산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신은 “왜”다.
    신발을 신고있지 않다.
    저 옷, 옷차림은, 분명히 동남아 특히 고대 태국인들의 복장이다.
    이뿐 아니다.
    지금은 유튜브에선 볼 수 없지만,
    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를 보게되면,
    일본인들의 창작품 ‘스시”의 뿌리가 동남아 였음도 잘 증거된다.
    여러 증거와 정황으로 일본인들의 뿌리가 동남아 등 열대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란 사실은,
    과학과 역사가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내가 가지는 합리적 추리는 다음과 같다.
    ㄴ 김수로도 김씨고, 신라 김알지도 김씨다.
    ㄴ 하지만 이들은 한반도로 이주할때 함께 오지 않았다.
    ㄴ 신라 김씨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흉노왕 김일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김수로는 조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ㄴ 신라 김씨들은 왕망이 나라를 세울당시 왕족이었던건 아닌가. 반대로 김수로는 왕족이 아니었다는 추리를 해볼수 있다.
    ㄴ 한반도는 남태평양 인종, 인도인종, 북방계 유목민족이 합쳐진 민족인데, 일본은 그럴 가능성이 없을까.
    ㄴ 지금도 삿포로 지역은 유목민들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ㄴ 일본의 조상들중 동남아계의 이주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ㄴ 김수로의 아내 허황후는 인도인이다. 인도인들중 일본으로 건너간 인도인들은 없었나.
    ㄴ 가야는 패망후, 그 후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최소한 왕족은 모두 건너갔다.
    ㄴ 만약 가야인들이 한반도인들에게 같은 민족이란 인식이 있었다면 왜 일본으로 갔을까.
    ㄴ 나라를 빼았겼기 때문에?
    ㄴ 당시의 사람들에게 나라가 어떤 명분이었는지,
    ㄴ 또 가야인들에게 있어서 한반도인들과 일본인들중 어느쪽과 더 가까웠는지 우리는 모른다.
    ㄴ 어째서 고구려인들은 가야를 “임나가라”라고 불렀을까. 무슨 뜻인지 조차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ㄴ 임나가라… 임나? 가라? 수많은 가설이 존재할 뿐이다.

     

    김수로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인, 그러니까 동남아 열대지역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낄수 있는게 아닌가.
    어쩌면 가야인들에게 형제 또는 친구 같은 민족이란 의식은, 일본인들을 향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야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한들 누구와 더 많은 교류가 있었는지 살펴보면,
    누구와 더 가까운 사이였는지 알 수 있는게 아닌가.
    단순히 가야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유로 우리민족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