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71주년 –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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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3 12:24

    2021년 6월 25일은, 6.25 사변 발발 71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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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현-625참전용사-사진작가

     

    • 현 작가 “그들이 지켜낸 자유·민주주의 가치 잊지 말아야”
    •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민족의 자부심이 된다는 걸 알게 돼”
    • “생존 참전용사들 대부분 90대…늦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찍고 싶어”

     

    전 세계를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진작가 라미 현(본명 현효제·43)이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군인은 6500여 명.

    현 작가는 지금까지 군인 5천여 명의 사진을 찍고 미국, 영국 등 유엔 참전국을 돌며 1500여 명의 참전용사 사진을 찍어 액자를 제작해 무료로 전달해왔다.

     

    현 작가는 2017년부터 ‘프로젝트 솔저 KWV(Korean War Veteran)’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솔저는 군인 및 참전 용사, 나라를 위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알리려는 취지로 시작됐다.

     

    다음은 현 작가와의 일문일답.

     

    1. 군인 사진을 찍는 이유는...
    2. 6·25 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3. 국내외 참전용사를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4. 그동안 어려웠던 점은...
    5.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6.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7. 이 작업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8.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은 건가...
    9. 이 작업을 통해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10. 프로젝트 솔저 사진은 ‘기록’과 ‘예술’ 중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지...
    11. 요즘 6.25 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12. 앞으로 활동 계획은...
    13.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총 13개의 질문과 라미현 사진작가의 답변이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

    한번쯤 방문해 기사 전문을 읽어보길 추천하고자 한다...

     

    기사 전문을 읽고 싶다면,

    위 출처 링크를 '클릭'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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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라미현-프로젝트솔저-1

    라미현-프로젝트솔저-2

    라미현-프로젝트솔저-3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감동적인 영상과 더 많은 사진, 프로젝트를 감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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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태극기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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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4 10:31

    참전 노병 “아직 휴전상태…국민들 경각심 갖고 살아야”

     

     

    625-참전용사-구장회

     

    • “위기 때 군대 안 간다는 것, 그 나라 국민 아니다”
    • “6·25 전쟁, 있는 그대로 후세에 전달되는 역사여야 한다”

     

    에포크타임스는 6·25 전쟁 71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영웅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호국영웅 보훈회관’을 찾았다.  6·25 전쟁 당시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한 구장회(86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6·25 참전 당시 해병대 소속 구장회씨와의 인터뷰>

     

    • “아직도 휴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6.25 전쟁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막혀…”

     

    6·25 전쟁 당시 해병대 소속 참전용사 구장회씨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말했다.

     

    구장회 용사는 6·25 전쟁 속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충청도에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 도중 폭격의 혼란 속에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홀로 된 구 용사는 16살 어린 나이에 피난길 속에서 구걸하며 끼니를 때웠다. 석 달을 걸어서 부산에 도착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던 구 용사는 구두닦이를 하며 1년 정도 생활을 하다 부산 광복동에서 해병대 지원병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됐다.

     

    • “부산에서 이 한목숨 나라에 바치려고, 그 어린 나이에 군에 가겠다고 지원했는데 체중미달로 안 받아주니까 얼마나 허탈해…”

     

    구 용사는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체중미달로 결국 입대를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 용사는 거의 보름 정도 훈련소 정문 앞 위병소에서 입대시켜달라고 기다렸다. 얼마 후 그 모습을 지켜본 훈련소 교육단장에게 이런 상황을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구 용사는 “전쟁으로 가족도 잃어버리고 고아가 됐다. 너무 배도 고프다. 입대하려 왔는데 안 받아줘서 입대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젊은 놈이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나라를 위해서 해병대에 입대하려는데 왜 안 받아주나, 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교육단장에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를 들은 교육단장의 지시로 구 용사는 해병대 27기로 입대하게 됐다.

    그때 나이 열일곱,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된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까지 전쟁을 경험한 구 용사는 마지막 4개월간의 전쟁을 이렇게 기억했다.

     

    • “당시 개성이 보이는 지역(현재 통일전망대 위치)에서 전쟁을 했는데 바로 옆에 판문점에서는 2년째 휴전회담이 진행됐다. 지금도 느끼지만 인민군들의 작전은 참 비열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판문점을 기점으로 인민군 부대가 주위에 포진지를 구축해 우리 쪽을 향해 연일 포를 쏘아 됐다. 그때 우리는 머리조차 들 수 없었다. 머리를 드는 순간 포의 파편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 설명했다. 또 중공군이 몰려오자 백병전(피아식별이 안 될 정도로 적과 아군이 섞여 싸우는 것)이 일어날 정도로 치열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구 용사는 7월 27일 휴전되던 날의 기억에 “서로가 전쟁할 땐 적이었지만 그때는 동포다. 우리말로 대화가 되니까 참 그때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 후 용산에 위치한 해병대사령부에서 군생활을 하다 1966년 6월 30일자로 제대했다.

     

    <다음은 구 용사와의 일문일답.>

     

    1. 6·25 전쟁때 해병대에 지원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 6·25 전쟁 당시 17살이었는데, 많은 해병 동기 중 기억에 남은 전우는.
    3.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참전할 것인가.
    4. 6·25 전쟁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5. 6·25 전쟁을 직접 겪었는데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왜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6.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들에게 6·25 전쟁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이다. 이와 관련 2030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7. 먼저 떠난 전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8.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서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9. 6·25를 기억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11. 6·25 전쟁 발발 71주기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총 11개의 질문과 구장회(86세) 용사의 답변을, 에포크타임스 기사를 통해 읽을수 있다.

    한번쯤 방문해 기사 전문을 읽어보길 추천하고자 한다...

     

    기사 전문을 읽고 싶다면,

    위 출처 링크를 '클릭'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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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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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5 09:38

    오늘, 2021년 6월 25일은,

    6.25 사변 발발 71주년이다.

     

    태극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김일성의 조선인민군(북한군)은 38도선과 동해안 연선(沿線) 등 11개소에서 경계를 넘어 대한민국을 불법 기습 남침하였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뿌리뽑지 못한, 이 땅의 매국노들, 반역자들을 뿌리채 뽑아야 한다.

     

    시민들 사이에 숨어서 함께 피난길에 올라 조국을 방어하던 군인과 UN군을 향해 숨어있다 총을 쏘고, 숨어있다 수류탄을 터뜨린 그들...

    그들이 38선이 그어진 이후에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 역사를, 다시는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