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독교의 본질과 믿음의 본질.

포럼(Forum) 수수께끼 종교, 종교적 관점 (3) 기독교의 본질과 믿음의 본질.

  • jamnetkr
    2017-06-12 19:31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 오류.

     

     

    창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세기 6장에 ‘네피림’이란 존재가 등장한다. 네피림은 ‘나팔(נפל)’이란 고대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명사다.
    그리고 동사인 ‘나팔(נפל)’의 뜻은 ‘떨어지다, 넘어지다, 떨어뜨리다’ 이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70인역)되면서 이 ‘네피림’이란 단어는 ‘기간테스(Γίγαντες)’로 번역된다.
    헬라어로는 ‘네피림’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 기간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체는 인간인데 하체는 말과 같은, 또는 하체는 인어와 같은 지느러미인데 상체는 인간인,
    일종의 하이브리드다.
    왜 70인역의 학자들은 네피림을 하이브리드로 표현했을까.

     

    성경에서 천사들은 하나같이 남자로 표현된다.
    롯을 찾아간 천사들도 남자였고, 욥을 시험하려 사단이 여호와 앞에 섰을때도 하나님의 아들들 곧 남자로 표현된 천사들이 함께 있었고,
    이 외에도 성경에서 천사를 여자로 표현한 증거는 아예없다.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베드로를 통해 증거한 이 말씀으로,
    타락하여 범죄해 떨어진 천사들이 존재하며 ‘네피림’은 타락해 떨어진 천사들임을 확신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다름아닌 예수를 주라 부르는 기독교가 이 타락한 천사 네피림을 거인으로 증거해 왔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성경을 신화로 이솝우화로 소설로 둔갑시켰고 스스로 예수를 주라 자랑하는 기독교는 그들에게 오랜 세월 쓰임받은 것이다.
    이런게 팩트다.

     

    성경은, 그 주인공이 예수 하나고 내용은 예수의 구원 사역이고, 그의 예수의 역사서다.
    누군가는 단어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복잡하게 해석하려 하겠으나(필요에 따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역사고 다가올 미래 이기에 따라서 문자 그대로 받아드림이 옳다.

     

    그러니,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예수의 구원 사역의 역사서고 성취될 예언의 역사서를,
    그 하나 하나의 문자에 각양각색의 해석과 주석을 달며 깊이를 드러내는 당신이, 도리어 예수를 세상과 단절시킨 장본인이 아니었는지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기록된 바.,

     

     

    요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이로 보건대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입으로는 예수를 시인하되 예수를 빙자해 자기 영광을 나타내며 자기 의를 세운 이들이 수없이 많았으리라.
    그래서 예수를 주라 시인해 보지만, 성경이 곧 예수라 자랑해 보지만, 성경이 약속한 성령은 받을 마음이 없고, 성령을 받을 마음이 없으니,
    그러니 실상은 예수도 없고 은혜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다. 기록된 바.,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기독교의 본질.

     

    서론이 길었지만, 기독교의 일반적 오류를 짚어야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데 누가 하랴? 무엇을 하랴? 기독교는 뭐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선하냐?
    내가 스스로 선하다 여겨서 예수를 버린것이 아니다. 그러면 당신이 선하냐? 그럴수 없다.
    누구라도 자신이 한 낯 인생임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했거든 그 모든 말이 자칫 거짓이고 오만이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조자가 사람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사람에게 자신이 창조한 만물의 이름을 지으라 하였다. 그리고 아내를 주었고 에덴에 머물게 하였다.
    창조자가, 인간과 관계를 성립한 장면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학문이 아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내가 선행을, 선을 행하기 위해 배우는 도가 아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수와, 나와의, 관계”다. 이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모조리 가짜라.

     

     

    신4: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성경에선, 특별히 구약에선(특별히 구약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약속을 지켰기 때문) 주의 얼굴을 구하라 또는 주의 얼굴을 찾으라 또는 여호와를 구하라란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자기 종들을 통해서 자신을 구하고 찾기를 원했던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며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장면을 목격해 보자.

     

     

    창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니 하나도 없도다

     

     

    언약은 예수와 아브라함이 맺었는데, 횃불이 되어 쪼게진 고기 사이를 돌파한건 예수 혼자다… 그 예수가 자기 영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이 땅에 와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누가 뭐라해도 기독교의 본질은, 관계다.
    요한복음 15장에 이르기 까지라도 예수는 쉴세없이 외식하는 자들의 가증함을 경고한다. 외식하는 이들이 너희에게 열매를 가르쳤다 함이다.
    가지가 제아무리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도 그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가지의 열매도 썩는단다. 본질은 열매가 아니란다.
    본질은 가지는 오로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한가지란다.

     

    그러면 가지가 열매를 맺음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해 준다는 거다.
    너희는 꿈도 꾸지 말라는 성경의 구절을 본적이 없던가. 사명감? 그런 거짓말 하지 말란다.
    육에서 나오는 사명감이 마땅이 육으로 돌아간다지 않던가.
    예수는 오로지 자신에게 매달려 있어라 말함이다.
    그러면 너희가 가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세상으로 자신이 데려간단다.
    그래서 자신의 멍애는 쉽고 가볍다고 한 것이다.
    이게 기독교고, 기독교의 본질이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수와, 나와의, 관계다.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는데, 누가 선을 배풀고 누가 선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그런 종교가 아니다.
    구약의 시대에 계명과 율법을 더 했음으로 더러는 그와 같은 구절 구절들이 성경을 장식하고 있으나 그것도 약속한 성령이 오기 까지다.
    내가 하는것이 아니다. 성령이 나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싫어도, 성령이 하게 한다.
    이게 기독교고, 그가 약속한 자신의 영(성령)을 통해서 그과 관계를 성립하는 것이다.

     

     

    믿음의 본질.

     

    믿음에 관하여 히브리 기자가 잘 증거 하였지만, 믿음의 본질도 결국은 이 관계속에 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전체를 통해서 선진들을 소개한다. 아벨을 소개하고, 에녹을, 노아를, 아브라함을, 그리고 사라를, 그리고 모세를… 각각의 선진들 마다 믿음으로 인한 행함이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해 보기 바란다.  또 기록된 바라.

     

     

    히11: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로 보건대 하나의 예로써 믿음이란, 죽어가는 자식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죽을 지라도 다시 살릴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기록된 바.,

     

     

    히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것 같이…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신뢰다. 내 방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미일 지라도 창조자의 주권하에 매달려 있다는 신뢰, 길을 걷다가 내 발에 개미가 밟혀 죽을지라도 창조자의 주권하에 있다는 신뢰,
    절대적인 신뢰를 믿음이라 한다.

     

    3절에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하였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창조자의 주권하에 있다는 신뢰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후로, 본질적으로 추구하고 받아야 할 것도 성령 하나였다.

     

    내가 앞 서, 기독교의 일반적 오류를 애써 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예수는 죽은 존재가 아니고, 온 우주 만물이 그의 주권하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확실하다 말함은 성경의 증거를 대변함이라.
    믿음의 본질이 저 천장의 거미 까지라도 그의 주권하에 있다는 절대적 신뢰인데,
    그런데 잘못된 복음과 변질된 복음이 예수를 죽은 하나님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본래 성령은 성경을 통해 바울이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로마서에서 갈라디아서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일을 행한다.
    첫째는 율법의 타파고 둘째는 율법을 타파함과 동시에 성령 역사의 시작이다.
    성령의 역사란 성령이 내 안에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갈3: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결국 여호와가 아브라함과 한 언약도 자신의 영, 곧 기독교가 말하는 성령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율법을 더 하였음도 성령을 준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게 하려 하였다고 증거했다.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결국 기독교는,
    창조가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과 관계를 맺고, 그 피조물과 자신의 영 곧 성령을 주겠다고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지켰고 그 언약을 받으라는 것으로, 그 언약을 받으면 인간의 속사람에 내제되어 있는 죄라는 근본적 본성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걸, 언약을 받음으로 그 언약이 할 수 있게 역사하는 것이다.
    이 언약이 성령이다.

     

    이것이 기독교고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의 본질 이기도 하다.
    구하라 그러면 주겠다 약속한 그 약속이 바로 성령을 주겠다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 성령을 받아야 예수와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이고, 그 성령을 받아 예수와의 관계를 성립하고 싶다면 성령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예수의 마음을 알게하고, 예수가 원하는 걸 하게하고, 몰랐던 성경을 깨닫게 하고, 모두 그가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고 믿음의 본질이다.
    그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다.

     

    이게 기독교의 전부다. 무엇을 따라다니냐. 계시록이 왜 궁금하냐.
    열어 주어야 할 때 성령이 열어 줄거고 알게 해 주어야 할 때 성령이 알게 해 주리라.

     

    또 율법을 들었을진데 바울의 고백이 옳다.
    율법을 행하는 내 안에 선한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율법을 행하며 동시에 죄를 짓는다 한 성경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니 선을 행하려 하지도 말아라. 그 자체가 이미 스스로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성령이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가 기쁘게 할 것이고 예수를 기쁘게 하는게 최고의 선이다.

     

    그러니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면 스스로 돌이켜보라.
    그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거름 거름을 다 보고 있는데 어디서 예수를 찾아? 그가 알파와 오메가라며? 그가 나와 당신의 미래에 이미 가있는 자라.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곧 그의 주권을 인정함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의 주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길을 걸을 때에도 그의 얼굴이 보이게 되리라…
    예수를 버린 나도 예수의 주권을 알고 느끼며 사는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당신이랴…

     

    줄이고 또 줄이고…
    그리고 또 줄였건만 내용은 여전히 길다. 반면 줄이고 또 줄이다 보니 빠진 말들이 너무나 많은것 같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 것은 아님으로 진실은 진실대로 사실은 사실로 알리기 위함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지자 이사야의 때에, 선지자가 이사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은 이사야를 버리고 삯꾼을 따랐다.
    여호와는, 저들이 스스로 원해서 삯꾼을 따라가니 너는 그저 나만 따라오라 말했다.
    여전히 기독교는 관계고 이 관계는 언제나 예수와 나, 1대 1의 관계다.

     

    시대를 살아가면서, 당신은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별해 낼 것인가.
    듣기 좋은 말인가. 내 귀를 간지럽게 해 주면 그가 선하고 좋은 사람인가.
    나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내가 그를 알고 그를 배웠고 배운데로 성경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보려 한다.

     

    이 다음편은 “진짜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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