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즈 플랜 – His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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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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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4 14:40

    담벼락-2

     

     

    허물기 위한 의문.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왜 유대인일까?

    성경을 통해 증거된 바,

     

    신7: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그러니 유대인이란 가장 작은 민족을 선택했음이 하나의 분명한 이유다. 왜?

     

    성경은,

    성경의 맥이있고,

    그 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다.

    문제는, 어떻게 알게 하는가가 아니었을까.

     

    창조자의 지혜가 부족해 창조자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가 아니라.,

    그 창조자가 창조한 피조물이 창조자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성령은 성경을 증거했음이 확실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욥(욥기)"이다.

    욥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었다.

    이 욥을 증거함으로 동시에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이 세상 어디엔가엔 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확증했다.

    또 창조자가 사랑하는 인생들이 욥 이외에도 여럿 증거되었으니 ""과 같은 여인들이 그랬다...

     

    Q) 만약 창조자가, 이스라엘이란 작은 민족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창조자를 알 수 있었을까?

     

    유대인을 선택했던 이유로, 그가 신실한 하나님임을 증거했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줘 약속한 성령을 준 한가지 많으로도 이는 충분히 증거된다.

    유대인을 선택해 율법을 주지 않았더라면,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는, 예수가 그 임을 알 수 없었으리라. 왜?

    그가 유대인에게 준 율법은, 바로 그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질 것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롬10: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 유대인을 선택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인간들이, 이 피조물들이란 어떻게? 언제? 어떤 상황에? 왜? 창조자를 떠나는지 증거가 되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무단 아담과 하와에게만 속한 원죄가 아니듯,

    유대인의 죄악과 솔로몬의 범죄는, 무단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죄악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

    숨 쉬는 순간마다 범하는 인류의 죄악이 아니냐.

     

     

    정해져 있던 운명.

     

    사53: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Q) 여호와 자신이 그들은 나의 눈동자라 한 그 유대인이 예수를 알아 보았다면? 그러면 과연 복음은, 열방으로 뻣어나갈수 있었을까?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럴수 있었을까.

    유대인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베드로도 사람이고,

    이방인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바울도 사람이다.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해낸 여호와를 경험한 유대인들 모두가 한낯 사람이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던 여호와를 체험한 그들 모두가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쉽게, 우리가 한낯 사람임을 망각한다...

     

    만약 유대인이 바울이 증거한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를 영접했다면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만약 유대인이 바울이 증거한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를 영접했다면 과연 바울을 통해 증거하기로 정해져있던 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전해졌을까.

    유대인은 장자의 직분으로 말씀을 맡은 민족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유대인을 통해 증거된 것이다.

     

    롬3: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그 말씀을 맡은 민족이, 예수를 그 때에 영접했다면 복음은 쉽사리 이방인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창조자의 원대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을 선택해서 당신 자신, 곧 창조자 자신을 세상에 증거하고,

    당신이 신실하며, 세상을 사랑하며, 그 세상에 구원을 배풀기위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킬것을 증거한 후에,

    유대인의 무너짐으로 자신의 복음이 온 열방으로 흩어지게 하려 했던건,

    처음부터 창조자의 계획이었다.

     

    그 창조자가,

    그 신실한 창조자는,

    그래서 그 복음이 다시 유대인에게로 돌아가는 날,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마23: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게 분명한 역사다...

    심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는 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분명히 이스라엘과 이방이며, 반드시 이스라엘과 이방이 되어야만 한다.

     

    슥4: 11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14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계11: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그들을 선택함으로 당신 자신을 증거한 그 예수가,

    동시에 그들을 쓰러뜨림으로 자신의 구원의 복음이 열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이는 정해져 있던 운명이었으며, 사명이었다.

    다만 그 사명이 사명이었는지 이스라엘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장자의 권한으로 말씀도 맡았지만 동시에 예수의 복음을 위해 쓰러져야만 할 운명이란 사명도,

    그들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육신의 눈을 깨뜨려라.

     

    육의 눈으로 보면, 유대인이 어떻게 사랑스러울수가 있단 말이냐.

    육의 눈으로만 보면, 참 가당치도 않은 민족 중 하나가 유대인이다.

     

    때로는 가련하고, 때로는 인정하며, 때로는 이해가 가지만,

    또 동시에 때로는 참...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게 유대인이다.

    이들이 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이들이 어떻게 여호와를 배신했는지,

    그 역사는 역사대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건 창조자의 뜻과 그의 섭리가운데 있다는 진실을 망각해선 안된다.

    진실이란 처음부터 당신의 복음이 온 열방으로 흩어지게 하기 위한 창조자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사로이 이들을 인정하는건, 바로 이 대몫이다...

    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정말 말하기를 설교하기를 즐겨하지만,

    유대인이 절대로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단어 또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신, 바로 하나님에 관해서다...

    다시 증거하지만,

     

    마23: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가... 아직...

    그들을 만나주지 않고 있는 있다...

     

    설사 그 땅 이스라엘에 기독교가 생겼고 기독교가 퍼져나가고 있지만...

    예컨대 이들도 그 소식들을 다 듣는다.

    이스라엘이 바보가 아니지 않나.

     

    2008년, 중동의 이란 어느 지역 전체,

    그 마을의 모든 이란 사람들에게 예수가 나타나 그들을 예수에게로 돌아오게 했다는 소식, 소문을, 유대인들도 다 않다...

    2014년 터키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말라타이 순교사건도,

    2019년에 터키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한국인 선교사의 순교도,

    이스라엘 전역에서 모든 이스라엘이 이 사건, 사고를 다 알고있다...

     

    왜? 예수가 그들에게 무엇이길래 그들은 왜?

    그런데 그 예수가, 정작 유대인들은, 아직 만나주지 않고있는 것이다...

    두려움이다... 그래서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머릿속에, 만약이라도,

    십자가에 못박은 그 예수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낸 그 여호와였다면?

    그가, 정말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 였다면?

    그 두려움에,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영혼은, 그들을 이해한다...

     

    마24: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그 예수가,

    그 때에 따라 필요한 양식과 필요한 은혜를 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육신으로, 또는 육신의 마음과 눈으로 보는 세상도 어필했고,

    그런 가운데, 왜 육신의 마음과 눈에 내 영혼이 침노당하면 안되는지 말하고 싶다...

     

    육신의 마음, 육신의 눈으로는, 때에 따라 이끌어주는 예수의 이끌어줌에 따를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예수에게 매달려 있는게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육신의 마음, 육신의 눈으로는, 절대로 진실을 알래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훈은 교훈으로, 역사는 역사로 간직하되,

    오직 영으로, 영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봄이 옳다.

     

    엡2: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의 계획이었고, 그의 뜻이었다.

    그의 뜻대로, 그의 주권하에서 복음이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이, 다시 이스라엘까지 들어가겠지.

    그 날이, 인류의 마지막이라...

     

    어떤 의문?

    그의 이름 하나가, 그가 짊어졌던 그 십자가의 복음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모두 허물것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왜? 라고 묻지 말아라.

    역사와 역사를 통한 교훈은 어디까지나 교훈이다.

    그 교훈을 통해서 내가 똑같은 마음 똑같은 길 똑같은 죄를 범하지 않을수 있다면,

    이는., 이 또한., 은혜라...

     

    중요한 건,

    그의 이름이,

    그의 복음이,

    막힌 담을 허물고,

    의문에 쌓였던 두 피조물을,

    하나의 피조물로,

    새로운 민족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 이전부터,

    창조자가 정해놓은,

    그의 원대한,

    마스터 플랜(Master plan) 이었기,

    때문이다...

     

     

    롬11: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기어들아...

    무엇을, 바라볼테냐...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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