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비밀

  • jamnetkr
    2020-01-20 17:09

     

     

    다음과 같이 성경의 맥을 짚고 넘어가는게 좋으리라 생각된다.

     

    행13: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위 사도행전 13장의 구절은 다시 갈라디아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증거되었다.

     

    갈2: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신약성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단연코 “복음“이다.

    그리고 이 “복음“이란, 바로 “예수의 약속“이다.

     

    행13: 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신약성경은,

    적어도 로마서에서 갈라디아서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사도행전 13장부터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율법을 깨뜨려야 한다‘가 주제다.

    왜?

     

    로마서 2장에서 10장까지 율법을 준 이유와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통해선 다시 로마서를 답습하며 율법을 준 이유와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또다시 히브리서를 통해서도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 율법은 아브라함 사후 사백 삼십년 후 준 것인데, 그러면 율법을 받지 못한 아브라함은? 율법이 약속(언약)을 깨지 못한다는 것이다(갈3: 17).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고린도후서 11장이다.

    바울은 고후11장을 통해서 율법을 전하는 이들을 사단이라고 증거한다(고후11: 14).

    그리고 곧이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이들을 저주하기에 이른다(갈1: 9, 10).

     

     

    본질적 복음.

     

    롬8: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복음이란 약속이다.

    이 약속은 여호와(예수)와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이다.

    이 언약대로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죽어 주었고, 죽어준 댓가로 약속한 성령을 주었다. 이게 복음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 > 언약의 신실한 이행(십자가) > 그로인해 약속한 성령을 준 것(또는 받는것)“을 통틀어서 복음이라 말한다는 것이다.

     

    갈3: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따라서 복음이란 대체할 수 있는게 아니며,

    예수의 죽어줌과 동시에 성령을 준 사건(오순절 다락방 사건 행1: 8, 행2: 1~5)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칭 보혜사 성령이니, 또는 예수니 하는 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만약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성령을 주지 않았다면 성경은 헛것이고 복음도 없는 것이다.

    만약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성령을 주지 않았다면 바울과 바울의 복음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만약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약속한 성령을 주지 않았다면 신약성경과 복음은 헛것인데, 왜? 요한계시록을 운운하냐.

    이 한가지 증거로도 자칭 보혜사 성령이라 거짓말하는 자가 뱀의 자식임을 확증할 수 있다.

     

    예수는 무엇을 가르쳤나. 예수는 무엇을 구하라고 가르쳤을까.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는 각기 다른 네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주제로 예수를 증거했기에,

    따라서 단어의 표현 또는 문장의 표현의 차이가 있다.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이 네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과 정신과 주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7: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동일한 성경구절인데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눅11: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경도 예수도, 성령을 구하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이 오기 전까지, 즉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까지는 복음이 아니었다. 약속만 존재했다.

     

    복음이란 이 약속을 받는 것이다. 복음이란 이 약속을 믿는 것이다.

    복음이란 예수의 죽어줌으로 성령을 주었으니 이제 성령을 구하면 성령을 줄 것을 믿는 믿음이다.

     

    고전2: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바울을 통해 전한 복음.

     

    성경은 분명하게 성령이 예수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라고 증거한다.

    예수의 죽어주겠다고 한 그 약속은, 곧 자신의 영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속마음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알 수 없듯, 예수를 알려면 예수의 영 외에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부활한 뒤 자신이 가는게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했던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영인 성령을 주었다. 성령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은 창세전에 이미 택한 바울(갈1: 15~16)을 통해

    성령이 아니면 예수를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으며,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증거한다.

     

    바울은, 율법을 행하며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을 증거한다. 롬7: 18.

     

    • 자신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깨닭았는데, 율법을 행하는 자신이 동시에 악을 함께 행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증거했다.
    • 거짓말하지 말라는 소리다. 너희가 자선을 행했다면, 너희가 선해서 자선을 행한게 아니란 소리다. 너희가 자선을 행했다면 너희가 더 큰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게 율법이다.
    • 복음은? 자선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했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다. 나는 하고싶지 않은데, 예수의 영인 성령이 내 안에서 자꾸만 “너가 해! 너가 해!” 자꾸만 너가 하라고 해서 억지로 했다고 자백하는 것이다. 이게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고 이게 복음이란 말이다.

     

    • 성경은 바울을 통해서 육신의 생각, 육신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증거했다(롬8: 8).
    • 또 모든건 예수가 하게 해 주는것이지, 너희가 하는게 아님을 분명하게 증거한다(롬11: 18)
    • 그리고, 율법 곧 육신의 행위는 약속한 성령도 십자가를 진 예수의 죽음도 헛되게 하는 것이라 못 박았다(갈3: 14, 15)

     

    누군가 내게,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해줘! 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한마디로 “관계”고,

    누군가 내게, 구원을 한마디로 정의해줘! 라고 한다면, 구원은 한마디로 “동행”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후론 부부가 동행을 하게되지. 이런 동행이야.

    그런데 결혼한 그 남자와 여자가 이혼을 하면? 그러면 동행도 깨지는거야.

    이게 구원이야…

     

    구원이란 예수에게 그저 매달려 있는거야.

    따질게 있으면 예수에게 매달려 예수에게 따지고, 힘들면 힘들다고 예수에게 매달려 칭얼거리고,

    다만, 그 예수에게서 떨어져선 안된다. 왜냐하면 동행이 깨어지기 때문이지.

     

    구원이란 이런거야…

    마치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는것처럼…

    그래서 성경이 말하길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음이 창조자의 큰 비밀이래…

     

    정말 예수에게 매달려 동행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말하지 않아. 왜? 이미 동행하고 있으니까.

    이 글을 읽는 기어들중 천국에 가고싶거나 천국에 가고자 하는 기어들이 있다면, 기어들은 왜 천국에 가려고 하냐.

    천국에 가면 예수와 동행이 중단될까?

    구원이란 이런거야.

    천국이건 지옥이건, 이 세상이건, 지구건, 우주건, 예수에게 매달려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거야.

     

    너희가 예수에게 매달려 있으면, 그러면 그 나머지는 예수가 알아서 한다고 하는게 복음이야.

    너희가 예수에게 매달려 있으면, 너희가 꿈꿔보지도 못한 세상으로 예수가 데리고 간데. 너가 스스로 가는게 아니라.

    그래서 자신의 멍애는 쉽고 가볍데.

     

    그 예수에게 매달려 있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

    예수에게 매달려 있으려고 할때,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 매달려 있게 해준데.

    따라서 복음이란? 성령을 통해서 예수와 동행하게 해 준다는 열쇠다.

     

    같은 성경을 읽는데 왜 다들 저마다의 해석을 할까.

    성경을 제아무리 읽어도 성령이 아니면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한쪽으로 치우쳐 무익하게 된다(롬3: 11, 12)“.

     

     

    율법이 초등학문인 이유. 율법의 비밀.

     

    왜 바울은, 왜 성경은 시종일관 율법을 깨뜨려야 한다고 증거했을까.

    율법은 행위이며 이 행위가 사람의 유전을 나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간섭과 참견과 도움 없이는, 성경을 제아무리 읽어도, 그게 유대인을 향한 예언인지, 자기기만인지, 깨닫지 못한다.

     

    롬5: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글을 읽는 기어들중, 더러는 어려운 말과 어려운 성경을 말하여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성경은 분명하게 율법을 준 이유는 예수가 지킨 약속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증거했다.

     

    율법이 없었다면,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자신의 영인 성령을 준 은혜가 어떤 은혜인줄 몰랐을테니 말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랑하면서도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가 귀신을 위한 제사인줄도 모르잖아.

    성경을 읽고 교회를 나가면서도, 사물을 보는 관점, 성경을 보는 관점, 모든 행위, 모든 기준이 육신인 너 자신을 보지 못하냐.

     

    막7: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만약 누군가 성경을 맡은 유대인이 어떻게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들이 예수가 메시야인줄 알았으면서도 그들의 유전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증거했기 때문이다.

     

    •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했으니까 말씀을 받은 너는 이미 예수가 너 안에 있다? 그러면 어째서 구원을 논하냐?
    • 그러면 같은 말씀을 그 손에 쥐고있는 이단들은 어떻게 이단이 될 수 있다는 거냐? 그들도 성경을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
    • 그 말씀이 너에게 증거하길, 니가 아무리 손에 성경을 움켜쥐고 있어도, 니가 제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너의 육신이 그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유전이란 이런 것이다.

    손에 성경은 들고있는데, 그 성경을 읽는데, 예수를 찾지는 않는다.

    예수를 찾지 않으니 만나본 적이 없고, 만나본 적이 없으니 내세울게 없고, 내세울건 없는데 목사질은 해야겠으니 또다시, 유전을 내세운다. 거룩해라. 거룩해라.

    육신의 행위를 내세워 담배피우지 말아라, 술마시지 말아라… 그리고 돌아서선 ‘구원은 행위로 얻는게 아니란다’.

    그 유전안에 예수가 없다.

     

    사실상 그 마음속엔 도둑놈이 아흔아홉마리쯤 있고,

    내세울건 없지만 밥벌이는 해야겠고, 끊임없이 신학교에서 둘둘셋셋 옹기종기 머리를 맛대고 앉아 논의하고 자기들끼리 결론내린 그 유전…

    그 유전으론 답을 찾을수 없으니 더 많은 유전을 만들어내고, 결국엔 그 유전으로 뱀에게 칭칭 감긴다.

    2천년전에, 예수가 이 땅에 왔을때, 그때도 100% 똑같았다.

    기억해라. 예수가 이 세상에 왔던 그 때엔, 신약이란 성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말씀을 맡은 자들이 손에 들고있던(롬3: 2) 그 유대인의 손에 들려있던 토라가 전부였다.

     

    그러니 또 기억해라. 육신을 덮입고 있는 당신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단 말이냐. 이 사람아…

    그래서 율법이란 행위는 결국 사람의 유전(법)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유전(법)은 성경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열매를 맺게된다.

    성경은 너희가 할 수 없다고 증거하는데, 그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러 왔던 거라는데, 유전에 칭칭 감긴 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의를 들어내는것과 같다.

     

    기술적으로 말하면, 율법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면 율법을 받지 못한 아브라함과 야곱은 지옥으로 간 것이냔 말이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증인들을 언급하며, 아벨을, 에녹을, 노아를, 아브라함을, 이삭과 야곱을 언급한다.

    이들이 모두 지옥에 갔다는 말이냐.

     

    그러면 너 이스라엘아, 율법을 초등학문이라 증거한 바울의 증거가 걸림이 되었냐.

    너희에게 율법을 준 이가, 초등학문도 고등학문도 줄 권한이 없다는 거냐.

    율법을 행하는 너 않에 기쁨이 있냐. 율법의 행위가 너로 하여금 구원을 이루게 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냐.

    그 율법이 너로 하여금 메시야를 알아보게 하더냐.

    율법을 행하며 동시에 죄를 범하는 너는 누구냐.

    율법을 행하며 동시에 죄를 범하는 너는, 너는 한낯 사람이다.

    복을 위하여 자선을 배푸냐. 자선이 너희 유대인의 한 문화가 되었냐.

    부처도 불교도 “비우라”고 가르치는줄 모르냐.

    사람이 어떻게 비울수 있단 말이냐. 비움과 동시에 더 큰 욕심을 채우는줄 몰랐구나.

    그러므로 너희의 자선이, 너희의 더 큰 욕심과 욕망을 위한 몸부림인줄 알라.

     

    갈6: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게 모두 율법이다.

    율법이 초등학문인 이유는 율법은 육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영의 일은 영 많이 알며, 너의 속 사람의 사정도 너의 속에 있는 영 많이 않다.

    예수도 영이며, 예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의 영과 교제하는 방법밖엔 없어.

     

    롬8: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노니,

    거짓 선지자(삯꾼)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성경이 없어도, 성경을 읽지 않아도, 너가 예수의 얼굴을 구하는 그 하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왜? 너가 예수의 얼굴을 구할때 성령이 가장 기뻐할 것이며 성령이 너에게 예수를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깨뜨려야 한다.

     

    예수(여호와)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때 혼자서 혼자서 맺었다(창12: 2, 창15: 17).

    아브라함은 한 것이 없다. 그저 따랐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예수가 그 약속을 지키려 이 세상이 와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요15: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증거다.

    너희는 그저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라는 증거다.

    너희가 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없는걸 하게 해 준다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가 복음의 정신이고, 복음의 본질이며, 성경의 핵심이다.

    이게 예수와 너와의 관계며, 이처럼 매달려 동행하는것을 구원이라 말한다.

     

    율법을 준 이유는, 단순히 율법을 깨뜨리게 하기 위한것이 아니다.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는, 육신의 안목과 정욕을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2020.1.20. pm 5:09

    To Be Continue…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나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보며 자랐고 보고있다.

    스스로 목사라고 하는 인간들. 그들에게 당신은 왜 예수의 종의 길을 선택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예외없이 “예수께서 하라고 하셔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예외없이.

     

    예수가 하라고 해서 목사를 하는데,

    그 예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면 넌 그 목사를 목사로 인정할 수 있냐.

    예수가 하라고 해서 목사를 하는데, 그 목사라는 자가 장사를 한다면 좋은집 짓기를 바라본다면, 넌 그 목사를 목사로 인정할 수 있냐.

    종의 길은 근본적으로 그런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 입만 열면 성령을 운운하는 니가, 독사의 자식을 성전 강대상에 세울수 있냐. 성령이 가만히 있디? 그 독사의 자식의 입에서 나온 한 문장, 한 단어가 너의 영혼을 삼키우리라.
    • 유대인의 비밀 운운하는 목사도 유튜브를 통해 본적이 있다. 설사 유대인에게 비밀이 있다고 치자. 그 비밀을 깨닫게 해준게 성령이다. 그러면 유대인의 비밀을 깨닫게 해준 그 성령이 이제 너에게 스스로 창조자가 되어라 하더냐. 그 성령이 이제 예수의 죽음과 성령의 약속을 패하라고 했냐. 유대인을 깨닫게 해 주었더니 그 유대인을 교회로 데려와 율법을 전하는 너는 누구냐.

     

    갈1: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위 갈라디아서의 다른 복음은 “고린도후서11: 2, 3절“을 통해 증거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는 바로 그 다른 복음이며,

    이들을 가르켜 성경은 “사단“이라고 증거했다(고후11: 14). 그러므로 저주를 받을 지어다.

    그러나 성경이, 독사의 자식을 따라가는 니가 스스로 원해서 따라간다 증거하였단다…

     

    가짜는, 스스로 가짜인줄 모르지 않는다. 절대다.

    • 저마다 성경을 읽으며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에서의 공동체를 말하며 기독교는 좌파라고 말하고, 그래서 어떤 목사들은 좌파가 된다. 창조자의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그 좌파. 가정을 파괴하고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그 좌파. 창조자가 자기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의 형상을 파괴하는 그 좌파. 남과 여를 창조한 그 질서를 파괴하는 그 좌파. 그런데 스스로 목사란다. 무슨말을 하랴.
    • 성경이 무엇을 증거하냐. 아담을 에덴에서 내어 쫓으며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수 있다고 정해졌으며, 십계명을 통해서 당신의 질서를 보였다. 공동체가 기독교의 본질이었다면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있던 공동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왔을 것이고, 다윗을 사랑하였다면 이스라엘이 열방으로 흩어지지 않았으리라. 그러므로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는 창조자와 나, 1대 1의 관계다.
    • 땀흘려 일해야 한다. 산업화가 예수가 아담을 세상을 내 보내며 정한 삶이다.

     

    제아무리 네가 성경을 읽어도, 제아무리 네가 성경을 안다 자위해 보아도,

    본질에서 벗어나면, 그 자체로 가짜가 되는줄 알아야 한다.

    성경도 예수의 구원사역의 본질도, 그의 성령을 받는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에게 매달려 동행하는것, 이게 기독교다.

    이에서 벗어나면 모두 가짜라.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2020.1.20. pm 7:33

    Finish…

     

     

    ps: 어떻게하면 이해가 쉬울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작성했는데, 모르겠네… 나도 내가 작성한 글을 천천히 읽어보며 좀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고민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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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1 18:14

    율법의 비밀. 두번째.

     

     

     

     

    엡1: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이 증거하길,

    본래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그 이름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한 뜻으로 그 이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를 의로 정하기로 작정된,

    그 이름 하나를 믿는 그 믿음을 ““로 정하기로 정해진, 창조자의 구원을 위한 계획이다.

    이를 성경은 바울을 통해 “그 뜻의 비밀(9절)” 이라고 증거한다.

     

    롬4: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 뜻, 그 이름을 믿는 믿음 하나를 의로 정한 이유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엡1: 10)”이라고 했다.

    다시말해서, 자녀가 되는 특권도, 심판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도, 모두, 그 이름 하나를 믿는 믿음으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믿음.

    그가 곧 창조자라는 절대적인 신뢰.

    그 하나로 모든게 갈라진다.

     

    예수(여호와)의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았던 아브라함을 창조자는 의롭다 여겼고,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킨 그때부터, 아브라함 뿐 아니라 예수를 믿는 그 믿음 한가지로 의롭다 여기겠다는게 창세 전부터 천지를 창조하고 구원 사역을 시작하기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믿음이란,

    그 예수가 그리스도란 한가지 진실을 의지해,

    그 예수의 영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 예수와 연합 또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기독교 또는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며,

    이게 믿음과 구원의 본질이다.

     

    나머진 전부 가짜다.

     

     

    어째서 율법을 깨뜨려야 하냐.

     

    롬10: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은 행위고, 이 율법의 행위는 육신에게서 나오는 행위로,

    자기 기만이며, 자기 자신의 영광, 자기 자신의 의를 들어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본질적 문제는, 그들이 창조자를 원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창조자를 원했던게 아니다. 그들은 창조자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해 주기를 원했던것 뿐이다.

    주인공은 예수고 우리는 객인데, 유대인들에겐 유대인이 주인공이고 예수 곧 창조자(신)가 객이었다.

    오늘날까지 그러하다.

     

    그래서 율법을 깨뜨려야 한다.

    신천지가 제아무리 14만4천을 노래를 불러도, 신앙촌이 제아무리 살아서 돌아올 박태선을 기다려도,

    하나님 교회가 제아무리 여자 하나님을 외쳐도, 몰몬교가 제아무리 그럴싸한 말로 예수를 인정하지 않아도,

    그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영광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율법이다.

    육신의 유전을 깨뜨리지 못한 기만이다.

     

    이는 뱀이 하와를 꼬셔 에덴에서 쫓아내던 그 원죄!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그 죄악의 반복이다.

    율법을 깨뜨리지 못했기에, 주와 객이 뒤바뀐 저주다.

    난 이를 저주라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아…

    한번 생각해 보아라…

    어느날 “주만지”란 자가 등장해서,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와 같이 흰색 말을 타고 사진을 찍고,

    자신의 고향을 세탁해서 성경을 대입시키고, 스스로 “내가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하면 그가 보혜사 성령이 되는 것이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만희를 교육했던 이만희의 스승, 곧 죽은 박태선을 기다리는 신앙촌을 찾아가서,

    너희 신천지의 교리와 그들의 교리를 비교해 보아라. 무엇이 다른지.

    이 사람아…

     

    너희가 어째서 신천지에게 꽤임을 당했냐.

    너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 싶었던게 아니냐.

    14만4천이라는, 유대인을 향한 그 예언을, “성경은 비유“라며, “우리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그 거짓말이 너의 귀에 솔깃했던게 아니냐.

    왜? 너 자신의 영광때문에!

    그 영광이 예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단의 영광이라.

     

     

    어째서 율법을 깨뜨려야 하냐.

     

    창3: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율법을 깨뜨리지 않으면, 성령이 너의 가슴을 울리지 않아…

    한번 경험을 해봐… 예수는, 성령은, 절대로 너의 귀에 속삭이지 않아…

    그는 늘, 너의 가슴을 쳐. 그는 늘, 너의 가슴으로 말해. 쿵쾅! 쿵쾅! 쿵쾅!

     

    율법을 깨뜨리지 않으면, 너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는 사단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율법은 너에게, 너 스스로의 유전을 만들게 하고, 그 유전이 만들어 진 후엔 그 유전 밖엔 볼 수가 없다.

    유전은 육신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고 율법도 육신에게서 나온 영광이기 때문에 율법을 깨뜨려야 한다.

    율법을 깨뜨리지 않으면 그 육신의 영광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곧 너 스스로 창조자라 하는, 그 사단에게서 온 “원 죄악”를 범하는 것이라.

    왜? 율법의 행위는, 너로하여금 너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게 기만이고, 이게 자기 영광이라.

     

    사단은 절대로, 터무늬없는 거짓말로 속이지 않는다.

    사단은 처음부터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을수 있게 예수가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오직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실과를 먹는것만 금했다.

    그런데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 1)” 하며 하와의 욕망을 끄짚어 냈다.

    그 욕망은 육에서 나온 것이며,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욕망이었다.

    창조자가 자신을 창조해 주었는데, 피조물이 스스로 창조자가 되고자 했던 그 욕망…

    주와 객이 뒤바뀐 그 욕망…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하나만 먹으면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기만…

    너희 이단들과 다르지 않은 욕망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신(神)이 이스라엘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이스라엘의 욕망이다.

     

     

    PS) 나도, 유대인의 비밀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유대인의 비밀을 않다고 해서 그 누구들처럼 율법을 전하진 않아. 유대인의 비밀이 있건 없고, 유대인은 유대인이다. 그들이 신이 아니며, 그들이 주인공도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예전에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생각이 나서 추신을 남긴다.

     

    그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로마서11장26절”을 거론하며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단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면, 유대인이 창조자가 되는거냐? 그러면 그 유대인을 데려와 율법을 전파하랴? 유대인의 비밀을 깨닫게 해 준 이가, 이제, 유대인의 비밀을 깨닭았으니 내 죽음을 헛되이 하라 하더냐. 바보야… 난 참, 한국인들이 가련하게 느껴진다…

    냉정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하고, 뭐든지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다른건 보지못하는 그 시야가…

    그래서 한국인은 단지파의 후예라는 말이 나오는거고, 그래서 한국인이 욕단의 후예라는 말이 나오는거 아닌가.

    믿고 싶은것과 사실관계는, 엄연히 다르다.

     

    냉정하게, 로마서 11장에선 “그 모든 유대인이 어떤 유대인인지?” 증거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앞선 9장에 나와. 기록된 바,

     

    롬9: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노니, 구원 받는 그 유대인들이 진짜 유대인이다.

    너희가 지금, 누가 진짜 유대인이지 알 수 없다.

     

    복음을 전하고 싶으면 복음 전하면되지, 유대인을 끌어들여 율법을 전하며 예수의 죽음이 헛것이라 조롱하면 되겠나.

    유대인을 위로하고 싶거든, 입을 굳게 다물로 위로만 해라.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으면 묵묵히 헌신을 해라.

     

    그러면 내가 무슨 말 하리요.

    너희는 너희가 정한 너희의 유전을 따라, 너희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유대인에게 종노릇해라. 난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분별해라.

     

    엡1: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사단이 하와를 속인것 같이, 하와의 욕망이 들어나게 했던것 같이,

    가짜는 늘, 진짜를 흉내낸다.

    누군가 너에게 말하기를 “예수를 인정하지만, 내가 보혜사 성령이다” 라고 한다면,

    그자가 너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질질 끌고가려는 사단인줄 알라.

     

    오로지 그 이름 하나로 갈라진다. 그 이름, 하나로.

    이는 창조자가 정한, 창세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할 지라도,

    사단에게 허락하지 않은,

    그 이름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해라.

    그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예수를 인정하지만, 스스로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며 “사단을 모방“하거나,

    그가 가짜이며, 그가 사단의 개인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