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세계]가나안 족속의 음모 – 영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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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07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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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많은 유대인이 ‘로스차일드‘가 이스라엘의 고토를 회복해 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 테고,

    이스라엘 정부는, 설사 ‘로스차일드‘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할 지라도 내색하지 못할 것이며,

    또는 정치적으로든 실익을 위해서든 ‘로스차일드‘, 더 낳아가 ‘일루미나티‘,

    더 나아가 ‘가나안 족속‘과 한 배를 탓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로스차일드’ 곧 영으로는 ‘가나안 족속’에 속한 그들이,

    어떤 정부를 세우거나 어떤 정부 또는 나라를 손아귀에 쥘 때면, 그들은 그냥 말로 하지 않는다.

    ‘FRB’를 만들어 미국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 이전에 먼저 ‘CIA’ 라는 조직을 만들어 미국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영국의 왕가를 손아귀에 넣기 이전에 ‘M’ 이라는 정보국을 먼저 만들었고,

    이스라엘을 그 땅 고토로 돌려보내고 독립을 시키며 동시에 ‘모사드‘ 라는 자신들의 정보국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분명하게, 모사드 역시 로스차일드의 것이지 이스라엘 정부의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가나안 족속으로 대표되는 로스차일드 조차도 겉으로는(또는 육으로는) 유대인인척 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심은 정보부를 통해 그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것 만큼 이스라엘을 좌지우지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최소한 유대인에게, 자신들은 끝끝내 유대인으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그 땅, 유대인의 신 여호와 때문에 빼았긴 자신들의 땅,

    태양신 니므롯을 섬기고 달의 여신 세미라미스에게 인신 제사를 드리던 그 땅,

    자신들의 고토인 가나안 땅을 회복하기 이전엔 그래야 할 것이다.

    이런게 정치다.

     

     

     

     

    이전에 ‘시대유감‘이란 제목으로 위 두 편의 글을 썼었다.

    위 두 편의 글을 쓰면서,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바 있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마음에 근심과 상심이 되었을수도 있고, 누군가는 치부했을수도,

    그리고 누군가는 짧게나마 역사를 되돌아 봤을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네가 믿든 안믿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혹 더러는 황교안이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듯 보이냐. 황교안이 가나안 족속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인지 아닌지, 너는 어떻게 분별하냐?

    다시한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아! 너희에게 내일은 환란이지, 평화는 없다! 그러니 허리띠를 동여매라!

     

     

    성경은, 성경의 맥이 있고,

    성경은 분명하게 세대를 직시하고 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어떤 세대가 달라질 수 있다면,

    종말의 때는 오지 않으며 계시록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해.

    그저 인생들이란, 자위 해 볼 뿐이다.

    기독교가 기독교인 이유는,

    창세기라는 처음과 종말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이지,

    막연한 기독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하랴. 다만, 왜 네가 싸우려고 하냐. 네가 할 건 아무것도 없다.

     

     

     

     

    필요하면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학‘이란 위 글을 한 번 읽어 봐.

    만약, 저 위에 링크를 걸어 소개한 글 ‘시대유감‘을 읽고서 마음에 근심이 되었거나, 상심이 생겼거나,

    또는 걱정이 생겼거나, 누군가에게 아니라고 위로를 받고 싶었다면, 미안하지만 너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성경을 읽어 보았으나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고, 입으로는 주를 주라 시인해 보지만, 그 마음에 자기 영광과 우상이 가득한 자라.

    그런데도 기독교인이란 거짓말을 하며 살지 않았기를 바란다.

    거짓의 시작이 거짓이듯, 그 끝도 거짓이기 때문이다.

     

     

    네가, 기쁨과 평화와 화평과 평강을 어떻게 아냐? 언제 어떻게 느끼냐?

    기쁨이란 단어를 창조자가 주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단어다.

    기쁨과 평화와 화평과 평강이 어느때 어느 시기에 너에게 찾아올지 너는 모른다.

    왜냐하면 네가, 기쁨과 평화와 화평과 평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자가 대통령이 되면 기쁘랴. 그 기쁨이 하루나 가겠냐.

    네가 원하는 바를 누군가 대신 일구어주면 오늘 기쁠수는 있겠냐. 내일 무슨일이 벌어질지 너는 모른다.

     

     

    다만 한가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꼭 한가지! 굳이 위로가 필요한 인생들이 있다면, 꼭 한가지…

    싸움은, 네가, 싸우는게, 아니다.

    예수가 너에게 어떠한 싸움도 허락한 바가 없으며,

    이게 성경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이끌어 가는 창조자의 모습이다. 이게 팩트(Fact)다.

     

     

    여리고를 누가 무너뜨렸냐. 여호수아냐.

    팔이 무거워 팔을 들고있을 힘조차 없을때 누가, 모세의 팔을 붙잡아 세우듸.

    사울의 검이 닫기도 전에, 블레셋 장수들의 목을 친게 누구며,

    베드로는 어째서 죽음의 골자기가 두렵지 않다는 거냐.

    예수가, 그 죽음의 골자기에 먼저 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래.

    예수의 싸움은, 예수가 하는거지, 네가 아니다. 아직 모르겠냐…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되, 이렇게 대비해라.

     

     

    분명히,

    그 가나안 족속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며, 분명히, 그 일루미나티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 반드시.

    그리고 그가, 제3성전이라 불리우는 예루살렘의 높은 보좌에 앉게 될거야. 잠시동안 이지만.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반드시,

    육으로는 유대인이며 자칭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라야 하며,

    영으로는 가나안 족속에 속한자로, 니므롯의 환생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

    유대인의 왕 여호와로 인하여 유대인에게 빼았겼던 그 땅 가나안을 정보하기 위해 온 세상을 움켜잡고자 하는 그들이,

    분명히 온 세상을 움켜잡게 될 것이다.

     

     

     

     

    이 땅 대한민국은 예외라는 착각 자체를 버려라.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훨씬 이전에 사단의 회에 꽉 붙잡힌 나라가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도망가면 조금 낳을 것이란 착각도 버려라.

    어차피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혀야 돼.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야하냐. 너는 그냥, 매달려 있어. 네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엡6: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이 전신갑주가, 바로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가지다.

     

     

    요1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누군가는 열매를 가르치고, 누군가는 열매를 바라보겠지만,

    내가 읽었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 싸움은 누가 싸우는 것이고, 열매는 누가 맺는 거라는 말이냐.

    싸움도 예수가 하고, 열매도 예수가 맺는데. 너희는 가지래.

    그냥 매달려 있으래. 떨어지면 죽는데.

    그래서 자신의 멍애도 쉽고 가볍데.

    매달려만 있으면 되니까.

    가지인 너희가 스스로 가는게 아니라, 나무인 자신에게 매달려 있으면,

    그러면 너희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세상으로, 자신이 데리고 간데.

    이게 영의 전쟁이다.

    매달려 있지 않으면 진거야.

    떨어져 나가면 게임 오버다.

    매달려 있어야만 나를 부인할 수 있고,

    매달려 있어야만 그의 영이 공급이 돼.

    이게 기독교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 봐서는 안되고, 사람을 바라 봐서는 길을 찾을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길은 오로지 예수가 알기 때문이다.

    어디로 데리고 갈지도, 오로지 예수가 않다.

    네가 결정하는게 아니며, 네가 스스로 가는게 아니다.

     

     

    매달려서 따라가다 보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알고 싶었던 진실을 경험하게 되고,

    육의 눈으로가 아닌 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게 돼.

     

     

    그래서, 이 시리즈의 시작을 ‘일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았다.

    보고 싶은걸 보는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냐. 원하는 것만 보는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야.

    음부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사람의 말에 취해서 보고 싶은것만 보다가 떨어지리라.

    누구에게 무엇을 변명할테냐.

     

     

    자칭 그리스도인인데, 조금은, 또는 아직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리스도인이란 사람들이 있어서,

    이 시리즈를 써 보았다…

     

     

    매달려 있지 않으면, 절대로 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매달려 있어야만, 그 가지에게 볼 수 있는 지혜를 공급해 줘. 이게 기독교다.

    사람을 바라보는 자가 어떻게 영으로 세상을 보며, 어떻게 매달려 있다고 말할수가 있냐.

    사람을 바라보는 자가, 어떻게 성령의 영과 사단의 영을 구별하냐. 어떻게.

    거짓말 하지 말아라.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네가 육에 속한 자라는 증거라.

     

     

    이 전쟁이 오늘 보다 내일, 내일 보다 모레, 더욱 치열해 지겠지만,

    누군가는 좌와 우를, 유대인과 가나안 족속 사이를 넘나들며,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전하는 이들도 있겠지.

    그들이 진짜일테고, 그들이 매달려 걸어가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내가 작은 팁(Tip) 하나를 줄께. 영의 전쟁은 이렇게 싸우는 거야.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너의 눈에, 정치인이란 자들의 모습이 들어 오겠지.

    또는 언론인이란 자들의 모습도 들어 올 테고, 때로는, 너희 중에 유명하다 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도 비춰질거야.

    때로는, 또는 많은 순간, 너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상은 흘러갈 테고,

    자고 일어나면 세상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게 보일거야. 분명히.

     

     

    하지만, 설사 그가, 육에 속한 자로 가나안 족속의 일을 도모하고 있는 자일 지라도, 네가 초조해 하거나 두려워 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설사 악인일 지라도, 설사 사단 본인일 지라도, 그의 쓰임새에 맞게 쓰고 또 버리는 건 오직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롬9: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러므로 환란중에서도 네가 바라봐야 할 건, 네가 매달려 있는 창조자의 발거음이지, 두려움이나 노여움이 아니다.

     

     

    시대유감‘이란 글을 읽고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생겼다면 네가 어째서 가짜냐.

    무엇을 위해 살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 사냐.

    네 마음에 쏙 드는 정치꾼이라도 나타나 네 소원을 들어주길 바랬냐.

    죽음의 골자기에서 너로 웃게 할지 네가 어떻게 아냐.

    환란의 중심부에서 너로 가슴이 메이게 할지 네가 모른다.

    네가 기쁨을 정의 할 수 있냐. 화평이란 그 단어를 네가 만들었냐.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다 풀어헤쳐라.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그들,

    곧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조장하는 세상을 보거든,

    두려워 하지 마소서. 노여워도 하지 마소서.

    다만 악의 편에 서서, 악을 용납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가 꿈꿔야 할 꿈이 있다면, 내일의 평화나 세상의 평화가 아니랍니다.

    내일 아침에 또, 눈을 떴을때, 그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자! 하는 꿈이면 족합니다.

    이게 영의 전쟁을 치루며 사는, 최소한 창조자의 존재를 알고있는 자들의 삶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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