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욕망은 같은것. feat 노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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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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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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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있다.

    내가 내 입으로 증거한 바, 나도, 그렇게 피를 토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도 해봤고,

    내가 내 입으로 증거한 바, 나더러, 넌 절대로 저들의 외식을 담지도 배우지도 말아라 한 그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더, 그 마음을 잘 알고있다...

     

    멍하지. 솔직히 그저 멍하지...

    때로는 내가 살아있는건지, 혹은 죽은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육신에 깊고 깊게 길들여져 있었던게 맞다.

    비록 모태신앙인으로 이 세상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록된 바,

     

    계3: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증거 했는데...

    예수가 내게 명했다 할 지라도,

    육신이 연약한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내가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건지,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육신이 힘겨워하고, 초조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내가, 그 마음을 잘 알아.

    내가 겪어봤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영의 일은 오직 영이 않다.

     

    롬8: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러면 정말 그럴까.

    내 육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걸까.

    성경을 관통하는 한가지 사상은, 그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어떤 믿음의 선인들도 열정을 증거하지 않았다. 반면 모든 성경의 위대한 증인들이 한결같이,

    너희는 오로지 그의 얼굴을 구하라 증거했음이라.

     

    렘51: 39 열정이 일어날 때에 내가 연회를 베풀고 그들로 취하여 기뻐하다가 영영히 잠들어 깨지 못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영이 그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며,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그로 인하여 즐거워하는지, 내 영은, 모를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자.

     

    문제는 그를 알았고, 그의 이름을 알았고, 그로 인하여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그에게 매달리려 하지 않았었고, 그의 얼굴을 구하려 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즐거이 노래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교회에서의 예배? 기도? 찬송? 육신의 만족을 위함이었던 내 육이란 자아를 똑똑히 보았었다.

     

    내가 이랬구나...

    내 육신의 만족을 위해...

    기도도 내 만족을 위해. 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예수의 사람이 아닌것 같으니까.

    기도를 하면 예수의 사람이 된 것 같으니까. 적어도 내 육신은 그 행위에 만족한다.

     

    하다못해, 이 저주받은 육신은,

    성도라는 그 무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구원 받았다 착각하고,

    교회에 가 앉아있는것 많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위한다.

    영혼은 소멸되었고 육신만 남은 결과다.

    이랬던 나는,

     

     

    이 교회를 통해 너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가르침이 끝이 났으니,

    이제 너는 이 교회를 떠나라.

     

    했던 그날 이후로...

    난 1년이 다 되어가기까지 몸담고 있던 교회를 떠나지 못했었다.

    몸담고 있던 교회를, 많이 아꼈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개기면, 예수가 떠날수밖에 없게 만들어.

    때로는 사람을 붙혀서 그로 인하여 거짓을 만들게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게도 하고,

    그 교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교회의 목사와 여신자들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그 썩을대로 썩은 골수 끝까지를 보여주며, 그 교회를 떠날수밖에 없게 만들어.

    그런데도, 육신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

    그때까지 이 육신이 교회를 떠나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반면 내 영은, 온전히 예수에게 매달려 있지 않았었던 거지.

    이게 한낯 육신이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변명도 참 많았었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뭐라 말을 해야할까. 엄마가 슬퍼할텐데...

    이게, 육신이다. 육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육에 속한 일을 먼저 고민하는 육신...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이후론, 다시는 교회라는 곳에 몸담을수 없다는 사실도, 교회에 몸담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예수가 그날, 분명하게, 너는 이후로 교회에 억메이지 말아라 했기 때문이며,

    너희의 유전으로 만들어놓은 교회라는 사슬에, 네가 억메이게 허락하지 않으리라 했기 때문이라.

     

     

    예수란 그 이름을 핑계삼지 말아라.

     

    예수란 그 이름을, 너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핑계거리로 삼지 말아라.

    예수란 그 이름을, 너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마.

     

    그에게 매달려서 그가 데려가는 길로 그저 매달려 동행하지 않는 열정, 욕망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우리 눈앞에 차고 넘치는 증거가 있다.

    예수의 이름을 핑계삼아 선교를 떠났던 그들의 열매가 다 예수의 열매가 아니었고,

    어떤 이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선교를 떠났지만 그 열매는 예수를 모욕하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지 않았나.

    하와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뱀에게 쓰러졌고, 사울은 열정을 이기지 못해 창조자를 앞서가는 죄악을 범했다.

    육신의 열정과 욕망은, 하나라.

     

    기어들 생각은 어떠하냐.

    노아는 정말 기쁘고 즐거워서, 그의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방주를 만들었다 생각하냐.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저주를 빠져 나오는게 쉬웠을까. 아니면 스스로 원했을까.

    성경의 그 어떤 인물도, 스스로의 열정으로 욕망으로 창조자를 앞서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창조자를 앞서가는게 아니다. 냉정하게 창조자를 앞서 가서는 안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창조자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와 관계성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창조자와 나와의 관계성립을 부정하면, 성경의 약속도, 예수의 죽어줌도, 보내준 성령도 헛겉이라.

    이게 율법을 증거하며 성령의 약속을 조롱하는 그 행위와 뭐가 다른가.

     

    다행인 점은, 이런 사실때문에, 성경 역사 어디에도 열정과 욕망이 증거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조자의 부르심은, 근본적으로 그런게 아니다.

    성경이 미리 아브라함을 택하여 관계성립을 했고, 약속을 주었다.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믿음 하나로 의에 동참하게 하겠다는게 성경의 증거다.

    창조자와 나와의 관계성립이 전부라.

    그래서 그의 멍애는 쉽고 가볍다 하지 않았나.

     

    롬9: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누가 반문할 수 있단 말이냐.

    기도는 오로지 그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면 된다.

    본질적으로 기도란, 그와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을 구해야, 그가 너의 골수끝까지 파고들어와.

    이런 기도는 그를 구하는 기도이기에, 그를 위한 기도가, 될 수 밖엔 없다.

    그의 뜻을 위하여. 이게 기도다.

    그의 얼굴을 구하는 것으로, 그의 뜻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이외의 구할것이 있다면, 그의 영을 달라 구하면 그뿐이라.

    그의 영을 달라 기도하는 그 기도에 모든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은 왜 필요한가. 그의 영이 아니고서는 그의 심정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영인 성령이 나를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에게 매달려 있을수 없기 때문이야.

    그에게 매달려 있지 않으면, 그와 동행하는게 아니잖아...

     

    그러면 무슨 말을 하랴.

    성령을 달라하는 그 기도가 아니면, 창조자가 너의 속사람을 모른단 말이냐.

    성령을 달라하는 그 기도가 아니면, 창조자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모른단 말이냐.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그가 먹이고 그가 잎힌다 한 성경을 듣도보지 못했냐.

     

    세울자를 그가 세우고, 부를자를 그가 부른다.

    긍휼히 여길 자를 그가 긍휼이 여기고, 높이 들어 사용할 자를, 그가, 높이 들어 쓴다.

    너와 내가 아니어도, 그가 얼마든지, 그가 누구라도, 창조자가 사명을 줘.

     

     

    분별의 영.

     

    Q) 그러면 한번 물어보자. 열정을 불태우기 원하는 네가, 예수의 부름을 받은 즉시, 그를 따를수 있나.

     

    가령 고등학교 3학년인 수험생이 날이면 날마다 교회에 가서 자신의 진로를 위해 기도를 한다고 치자.

    이 학생은 그 기도를 하며, 예수를 위해, 예수를 위하여라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가, 나를 위해 넌 대학을 가지말고 서울역으로 가 노숙자를 섬겨라 했다...

     

    나도 아는바라.

    수많은 교회가, 수많은 목사라는 자들이 저처럼 성도들을 가르친다.

    성경은 비전을 품어라 증거하지 않았음에도, 그 비전을 품는게 마치 예수를 위한 예수를 향한 것이라 거짓을 가르친다.

    진로를 꿈꾸고 대학을 꿈꾸는건 그저 너의 자아다. 너의 열정이고 너의 욕망이라.

    그 자아와 열정과 욕망이,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냐.

     

    선교도 봉사도 네가 하고 싶으면, 그저 네가 하고 싶은거야.

    네가 아니면 예수가 누군들 들어 쓰지 못한다는 거냐.

    선교하게 할 사람을 예수가 선교하게 하고,

    봉사하게 할 자를 예수가 봉사하게 만든다.

     

    그러면 저 학생은, 서울역에 가 노숙자를 섬길수 있을까.

    진로도 대학도, 정말 예수를 위한 예수를 향한 비전이었다면,

    예수가 원하는 걸 하는게 힘들까.

     

    그런데 힘들꺼다...

    왜냐하면 그 열정이 그 욕망이,

    예수를 향한것도 예수를 위한것도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육신의 비전은 그저 육신의 비전일 뿐이다.

    내가 미래에? 내가 대학에 진학해? 와 같은, 나 자신의 원함은,

    그저 나 자신의 비전이고 계획이야.

    그 나 자신의 비전과 원함을 위해 예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아라!

     

    그저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예수를 팔지 말아라.

    그의 앞에서, 네가 원하는 미래를, 솔직하게 털어놔.

    차라리 그게 낳아...

     

     

    부르심.

     

    문제는 그 다음이다.

    네가 예수에게 매달려 있는 자인지, 예수의 얼굴을 구하는 자인지, 아니면 정말 예수를 원하는 자인지...

    문제는 예수의 부름이 있을때의 너의 반응이다.

    그 반응, 그 열매로, 너를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를 향한 소망과 소명의식을 갖는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기어 너에겐 뭐가 먼저냐.

    너에겐 우선순위가 뭐냐고 묻는거다.

     

    예수를 원하고, 예수를 노래하는 너는,

    어느날 예수가, 나를 위해 광화문 한복판에 서서 피켓을 들고 '유다서'를 하루종일 읽어라 한다면...

    할 수 있겠냐.

     

    너는 사업의 번창을 원하고,

    내일의 평화를 원하고, 가족의 안녕과 안전을 원하고, 행복을 원하는데,

    예수가, 너에게 동경 150도 시베리아땅으로 가라. 내가 내일로 이 땅을 불바다로 만들리라 한다면...

    너는 내일, 동경 150도 시베리아 땅으로 갈 수 있겠냐...

    할 수 있냐.

     

    너무 극단적인 예라서 스스로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다른 질문도 가능하다.

    너의 마음에 원하는 꿈, 너의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그 희망, 비전, 미래를, 예수가 버려라 한다면?

    그땐 넌, 너의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그 희망, 비전, 미래를, 예수와 바꿀수 있냐.

    네가 하고있는 일도, 네가 꿈꾸고 있는 미래도, 전부 버려야 돼.

    할 수 있겠냐...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차고 넘치게 보았었다...

    예수가 버려라 하는 그때, 사람을 부여잡는 수많은 사람들. 버릴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들은, 예수 대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어떤 삯꾼들의 설교를 들고와, 자위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대신 자신의 희망, 비전, 미래를 버리지 않아도 될 핑계들을 만들어 온다.

    그러면 예수를 위해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위로를 위해서...

    그런 사람들을 차고 넘치게 보았었다...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너의 열정과 욕망을 경계해라.

    열정과 욕망은, 너의 열정과 너의 욕망이지, 예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단다.

    이는 곧 육신의 정욕이고 원함이며, 육신의 자아라.

     

     

    그에게 매달려 있고 싶거든, 그의 앞에서 솔직해야 한다.

     

    그를 시험해선 안된다. 그가, 다, 알고있어...

    예수가 원함과 너의 육신의 원함은 다를수 있다. 왜냐하면, 그 육신이 무익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성경이 증거한 하나의 법과 성경이 증거한 하나의 정신이 있는데,

    그 법과 정신을 훼방하려 들진 말아라...

     

    예수 앞에서 솔직해야 돼...

    입으로, 내가 예수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하려 한다 하면 그렇게 되는게 아니며, 그런것도 아니다.

    그 각사람의 중심에 그에게 예수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모를순 없다.

    그러므로 핑계치도 못하리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다는 성경의 증거...

    너의 영혼은, 네가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네가 예수로 감격하고 그로 인하여 노래하는지...

    너의 영혼은, 네가 그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는지, 너의 열정과 욕망이 있을지라도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 하는지,

    너의 영혼은, 모를래야 모를수 없어. 거짓말 할 수 없단다...

     

    너희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할 수 있다는 거짓말 자체를, 해선 안된다.

    성령이 너의 심장을 채찍질하지 않는데,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러면 성령을 왜 보내주겠다 약속했고, 약속한 성령은 왜 왔고, 예수는 왜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것이냐.

     

    설사 너에게 열정과 욕망이 있을지라도,

    이렇게 기도해봐. 내 열정과 내 욕망과, 내 꿈과 내 비전을 잘 알고있다고.

    하지만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갈순 없다고.

    끝끝내 당신에게 매달려 있게 해 달라고...

    그러면 내가, 내 열정과 욕망과 꿈과 비전이 있을 지라도,

    당신에게 매달려 당신과 동행 할 수 있을줄 않다고.

    그러니 내가,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 끝끝내 매달려 있게 해 달라고.

    당신에게 매달려 당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당신이 나를 데려가는 그 길을 동행하게 해 달라고...

     

    예수가...

    너의 육신의 원함을...

    이미 다, 알아...

    그의 앞에서 솔직해야 돼...

    그의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돼...

    내 육신의 원함은 이렇다고...

    하지만 당신에게서 떨어지게 하지만 마시라고...

    그러면 내가, 내 육신의 원함을 뒤로한채, 당신에게 매달려 영원히 당신과 동행할 수 있다고...

    이 영원한 동행이, 바로 구원이야...

    이렇게 한걸음씩 한걸음씩, 잘못끼운 단추를 다시, 끼워봐...

     

    요15: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이따금씩 교회 때문에, 또 성도들 때문에 힘들다는 메일을 받는다.

    그런 질문, 그런 메일을 받으면, 참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대체적으로 원론적인 대답을 하곤한다. 왜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냐고. 왜 사람을 바라보냐고...

     

    하지만 이 공간은 내 공간이기에...

     

    교회가 어떤 곳인지 내가 왜 모르겠나...

    교회에서 뭘 가르치는지 내가 왜 모르겠나...

    그 성도라는 사람들,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다...

    교회가, 목사라는 자들이, 분별할 수 없게 만든 이유다.

     

    그들이, 예수의 얼굴을 구해본 적 없고, 예수의 얼굴을 구해본적이 없으니 만나본 적 없고,

    자기 스스로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으니 그 누구도 만나선 안되는게 교회다.

    영을 소멸시키고, 육을 부활시키는 교회란 집단...

     

    새벽기도회? 통성기도회? 무슨 무슨 간증집회?

    수없이 많은 집회와 기도회를 열어보지만,

    그 교회의 성도란 사람들은,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그들이 말하는 분별이란 목사에게 달려가 그 목사에게 상담받는게 전부다.

    그 목사가 자신을 지옥으로 질질 끓고가도, 내일 지옥으로 꼬꾸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못한다. 아무것도...

    그저 질질 끓려가 꼬꾸라질 뿐이라...

    물론 다는 아니라고 믿을련다...

     

    자신이 누구를 섬기는지,

    자신의 창조자가 누구인지도 분별하지 못한다.

    꼭두각시처럼, 목사가 성경을 받았으니 예수를 받은거다 가르치는데로...

    예수를 만나본적도 없고, 예수를 만나려 하지도 않는다.

    교회가, 목사가, 좌파들을 양성한다는데 무슨말을 하랴.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에도 없는 사도신경을 가지고 네가 잘랐느니 네가 잘랐느니 하며 싸운다.

    목사라는 자들은 예수는 모르지만, 존 칼빈을 알고 있음을 자랑하는 자들이라.

     

    왜 이런 교회들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왜 탄생했겠나. 바티칸의 저주지.

     

    그 저주가, 자신에게 유익했던거고,

    그 저주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좋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저주를 더욱 굳게 잡았다...

     

     

    교회란 집단에 대해서 들은 말도 할 말도 많다마는...

    들을 귀 있는자만 듣고, 또 기회가 되면, 교회와 삯꾼들에 대해선 다시 토론해 보자꾸나...

     

    ---

     

    2020.6.8 pm10:20 추가_

     

    다만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그 순간, 그 이후,

    우리는 모두, 창조자의 그늘 안에서, 자유자라.

     

     

    0
    ktj
    ktj
    Coins: 23,280
    2020-06-08 16:13

    전 기도를 이리 하네요..

    예수님 지금 전 육으로 기도함을 압니다.

    제가 당신을 얼굴을 구한다고 하지만

    진정 내 영이 돌이킨다면 당신이 간섭함을 모를래야 모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영이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내 육을 바라보기에

    공허한 메아리임을 압니다.그럼에도 기도합니다.

    제 영을 돌이켜 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매달릴 수 있게 하여 주세요

    내 마음에 와닿게 하여 주세요..

    라는 맥락으로 기도하네요...

    그런데..전하고 달라진게 전에는 예수님을 핑계되고 참는다 말했지만 내 자기자랑을 위해서 참았다면

    지금은 내 자랑이 아니라 예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마음이 들어서 참게 해주세요라고 하네요.

    그런데.. 종종 죄에 더 자주 넘어지는 느낌이 들어요...다만 더 뻔뻔해지긴 했네요...전보다..

    왜? 전에는 죄를 짓으면 두려움이 엄습하고 예수님에게 기도하는게 꺼려졌다면 지금은 철판깔고 바로 하네요.

    굳이 예를 들자면 야동을 보고 자위를 했다고 하면 전에는 사단의 탓이나 나를 탓하는 척을 하고 그냥 핑계를 찾았다면

    지금은 예수님 제가 육신을 사랑해서 자위했네요라고 생각이 들고 철판깔고   엎드려얼굴을 구하네요.

    내가 육신을 사랑하는 것을 그냥 인정해버리네요..아닌척 거록한 척 하는 척을 안해버리네요..

    자기자랑을 위해서 죄를 덜 범하는 척하지만 그게 더욱 가증하다 싶더라구요. 솔직히 말하고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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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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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8 16:21

    네에~

    ktj님은 참, 뭐랄까.,^^

    어쨌든., 어제도 말했고,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절대로, 예수에게서 떨어지지만 말아요^^

     

    철면피?

    우리는 모두가 철면피가 되는게,

    영혼을 위해 좋아요^^

     

    늘 ktj님을 응원합니다^^

    기도, 잘 하고 계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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