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코드] 너희가 원하는 휴거(携擧)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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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어쨌든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사람들이라면, 휴거나 약속된 예수의 재림이나 하는 주제에 관심이 없을순 없을 거야. 나도 그랬다.
힘겨운 세상이면 더더욱 그랬고, 그럴테고…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이 되거나, 내 마음같지 않거나, 또는 그런 이유로 누군가 뒤엎어 주었으면 할 때도 있겠지.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아도… 나도 물론 그럴때가 있지…
어차피 주제가 “바이블코드”니까, 이 구절로 오늘의 포스트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롬1: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이런 이유로, 난 무신론자란 그 말을 믿어본 적이 없다…
그가 창조한 모든 만물은, 그를 알 수 밖에 없게 창조되었대…
너도 나도, 바람도, 땅도, 하늘도, 공중의 나는 새도, 오늘 지었다 죽는 들풀도…
모든 만물이 그를 알 수 밖에 없대…
그러니, 누군가 내게, 난 무신론자! 라고 한다면 그 말의 의미는 동시에 난 창조자를 느껴! 가 되는거지.
강한 부정은 긍정임…
지금보다 성경을 몰랐던 시절도 있었을테고, 유년기가 있었고 청소년기도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 왔으니까…
무수히 많은 휴거에 관한 책을 읽었고, 요한계시록 강해를 읽어보았고, 성경 이외의 학문이 휴거를 증거하고 있다 하는 말에도 솔깃해 보았고,
많은 예수의 종들의 강론도, 예배에도 참여했었다. 전공이고 뭐고,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나 창조아였거든…
책을 쓰고, 강론을 한 그 모든 이들의 노고와 수고, 그리고 열정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을 기준으로, 내가 내린 결론 두 가지는,
- 인생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붙잡는다는 사실 하나.
- 반드시 기준은 언제나 예수여야 한다는 사실 하나이다…
그가 주인공이므로…
그러고보면 정말 무수히 많은 종교가 난립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만들어 가지려 하는 세상…
벼가 제대로 익질 못해서 그랬던 것이고, 나란 사람의 그릇이겠지만…
어떤 식당에 들어가 “욥8: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구절을 벽에 걸어 놓은걸 보곤,
마음속(마음속으로. 겉으론 못함.)으로 사람은 어쩔수가 없구나… 힐난한 적도 여러번이고…
원래 이 말은 욥에게 은혜를 입은, 그런데 욥을 비아냥 거리던 엘리바스란 인물이 욥에게 했던 말이다.
이 엘리바스는 심판을 받는다.
이 자가 내뱉은 구절을 벽에 걸어 놓을수 있는 이유도 전우좌우 다 빼고, 자신이 듣고싶은 말만 붙잡은 결과가 아닌가.
이런게 참 싫었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가짜들을 심심치않게 보며 산다…
진화론을 설파하는 도킨슨이 팩트를 말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솔직히 가설 수준도 안되지 않나…
틈만나면 민주주의를 들먹이던 이들의 열매는 그 민주주의를 짓밝는 촛불이었고, 그 민주주의 실체가 법치의 붕괴시켰다…
비정상인인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정상인의 인권은 무시되도 된다는 것이고…
거기에 줄 선 자칭 지성인들은, 미국산 쇠고기 안먹겠다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나라를 쑥대밭을 만들더니,
돌아서선, 직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먹겠다고 강남역 내거리에 줄을 길게 선다…
오늘의 쓴소리! 내 옆집에서 살고있는 똥개도, 지가 어제 할타먹은 똥을 기억한단다. 너는 뭐냐?
나같으면 내가 한 행위가 있어서, 자존심이 구겨져,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먹겠다고 줄 못서겠네…
로마서를 증거하며 11장을 증거하는 목사라는 분들을 본 적이 없고(물론 2000년대 이후 본 적 있음),
기독교는 처음과 끝이 있는 종교인데, 다시 올 예수를 증거하는 목사라는 이들도, 본 적이 거의 없다. 거의…
참고로 기독교가 끝을 증거하지 못하면, 그건 이미 기독교도 교회도 목사도 아니다! 라고 난 생각한다.
휴거를 논할려면 빼놓을수 없는 성경이 마태복음 24/25장인데, 그 중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증거한 휴거는 쏙 빼놓고 휴거를 논하는 사람들 뿐이다…
이게 모두… 그들이 만든, 그들의 종교고 우상이다…
진화론도, 민주주의도, 동성애도, 패미니즘도, 휴거도…
모두, 그들의, 그들이 만든 종교다.
휴거도, 기독교란 종교안의 또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만든 그 각각의 종교도 차이가 있었으니, 어떤 종교는 창조자를 정면으로 대적하고, 창조자를 부인하며, 또 어떤 종교는 그의 질서를 파괴하고 훼방하지.
휴거나 종말론이란 종교는 그렇지는 않지. 이 종교들은, 종교들의 주제는 성경이니까…
성경 66권을 구구절절하게 포스트로 작성할 순 없을지라도, 그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 하나고, 그의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러면 성경의 타임테이블이 보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랬고, 이 블로그 포스트는 어디까지나 내가 아는, 내가 본 성경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계시록을 다 열어주지 않았다 할 지라도 기준이 예수 이기에, 그가 한 말이 기준이라고 생각하는게 내가 보고 알고있는 성경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 기술적으론 예수가 한 말에 계시록을 대입해야 하는게 옳지 않은가.
마24: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게 우리가 말하는 “휴거(携擧)“다…
분명하게, 환난 후라고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증거했다…
그러니 우린 모두 환란으로 들어가야돼…
의문이 남지. 왜 이렇게 증거했을까? 환난 후 휴거가 있다고 증거된 마태복음 24장 31절 이후에, 무화가 나무의 비유가 나온다.
밭에 있는 두 사람도 매를 갈고있던 두 여자도 모두 31절 이후다. 왜? 왜 그랬을까?
환난날의 단상이라고 하기엔 왠지 평화로워 보이잖아…
나는 앞 선, “[바이블코드] 바울을 통해 전한 복음 “약속”이란 제목의 포스트를 통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비유로 해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가 제자들에게 비유로 설명한 그 비유까지를 말했음은 아니다… 아니면,
혹시 아주 잠시 잠깐동안 일 지라도, 대환난 막바지에 숨 쉴 여유가 조금이나 생기는 걸까?
그도 아니면 피난처나 방주를 예비해 두는 걸까? 노아의 때처럼…
어느날, 계시록을 다 열어주면 그 땐 물론 알 수 있겠지. 지금도 계시록 전체는 아니지만 분명하게 알고있는 부분은 있다.
계시록을 통해서도 휴거는 없음을 증명할 수 있다. 휴거는 모든 환난이 끝나는 그날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증거된 환란은 크 개 다음과 같이 분류해 살펴볼 수 있을 거다.
- 마24: 4~2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할 그때, 많은 지진과 기근이 있을 그때,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예수가 등장하는 그때, 예수의 이름때문에 미움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그때,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그때, 그때에 창세로 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큰 환난이 있을 것이다.
- 마24: 29~31: 그 환난이 끝남과 동시에 자기 백성을 모아 데려간다.
- 마24: 32~51: 이 일들(환난)을 보거든, 자신이 문앞에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어쨌든 모두, 환난의 그 때의 일이다…
따라서 환난전 휴거, 또는 3년 반 이후의 휴거… 이런 “휴거(携擧)”는 없다…
내가 이 휴거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품는 의문은 이렇다.
그래서 만약, 그들이 주장한 그 휴거가 없으면,
그러고나면 그 주장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666도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게되지 않을까?
휴거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들을 어떻게 책임절거냐?
어떤 이들은 환난전 휴거가 없다면, 휴거 자체에 의미가 없어진다고 설교하는 이들도 보았는데,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지 않는다. 의미는 창조자가 부여해.
그럼 과연 그 마지막 때는 언제일까? 열쇠는 이스라엘.
창조자의 타임테이블은 이스라엘.
슥2: 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위 구절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증거된 스가랴 2장 8절이다.
이스라엘은 나의 눈동자란 표현이 스가랴 선지자많을 통해서 증거된 건 아니다.
모세의 오경을 통해서도, 다윗이 그를 노래한 시편을 통해서도, 솔로몬의 잠언도,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눈동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유대인이 창조자의 타임 테이블임이 확실하다. 내가 읽은, 아는 성경은 이렇게 증거한다…
이쯤 되면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도, 이스라엘이 타임 테이블이란 말 자체에 반감도 생길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것에 대한 기분 나쁨도 있을 테고…
그럼 이 타임 테이블 이란 주제를 빼고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소개해 보면 어떨까?
엡2: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2장 15절의 “하나의 새로운 사람“, “하나의 새로운 종족“, “새 문명의 창조“… 새로운 인류를 말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결합이다.
앞 서 “[바이블코드] 성경을 이렇게 읽어라“를 통해서도 밝혔지만,
성경은, 본질적으로 예수라고 불리우는 창조자가, 자신이 사단에게 내어준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한다는…
그래서 예수의 구원사역을 증거 한 책이다.
자기 자신을 증거 한 책이며, 약속을 맺음으로 인생들과 관계를 성립하고,
그래서 동시에 관계가 성립된 자기 백성을 증거 한 책이기도 하다.
그의 역사서이며, 자서전이다…
주인공은 예수 하나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눈동자로 삼은 유대인이 타임 테이블이란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기도 하다고 증거한 성경이 거짓말 하지 않았고,
모든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으므로 모두가 그의 소유임도 분명하다. 차별이 없다 했다…
다만 자신의 눈동자로 삼은 장자가 타임 테이블이란 것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이가 바울일 지라도 누가 알랴.
유대인을 열방으로 흩어지게 함과 동시에 복음이 사단의 회를 한번에 역전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성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로지 장자의 직분으로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다(롬3: 2).
그들을 통해서만 쓰여져야 한다.
공동번역이란 성경을 만든 바티칸이 가짜인 다른 이유다.
누가 그들이 당한 고초를 당했으며, 누가 그들을 위로하랴. 남의 고초엔 침묵하는게 인생이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롬11: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 로마서 11장을 통해, 처음부터 유대인을 장자로 삼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로운 문명으로,
자기 백성으로 삼아 구원하고자 한 것이 창조자의 원대한 계획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롬11: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나와 유대인의 땅으로 되돌아 가는게 인류의 끝이다…
이게 창조자의 타임테이블이다…
사실, 다른 성경 구절은 논할것도 없다.
예수가 스스로 이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마23: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는 그 날, 자신 앞에 굴복하는 그날, 다시 오겠다는 말이다.
그날, 유대인이 자신 앞에 회복되는 그날 다시 오겠다… 하였음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스라엘이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알때까진 예수는 안온다.
다르게 표현하면, 유대인이 예수가 메시아였구나! 하는 그날이 사단이 음부로 떨어지는 날이고,
따라서 사단이,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없앨수 있다면, 사단이 지옥으로 떨어질 일도 없다.
ps: 그렇다면 사단의 입장에서, 유대인 학살이 번번히 실패하고 또 어렵겠다 판단이 섰다면 그렇다면 전략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어려울 거다. 왜냐하면 선지자 에스겔이 열방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온 이후에 다시는 뽑혀 나가지 않으리라 이미 예언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유대인에게서 출발한 복음이 다시 유대인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 그렇다면, 유대인에게 복음을 가져갈 그 민족을 없애거나, 그 민족이 할 수 없게 만들면 되겠네.
- 그게 바로 너희야.. . 그런거 같아… 그렇게 강하게 느껴… 코레아라는 너희들의 이름 때문에…
나도 주위깊게 보고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인물들이? 유대의 땅으로 복음을 가지고 가는지…
어쨌든 우리 모두에게 불어닥칠 종말이 올텐데, 눈여겨 봐야지…
유대인을 보면, 지금이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있는거야…
이 포스트의 끝은…
처음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좀 바뀌었다…
너무나 마음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유는 모르겠음…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남자로 태어났고 그러니 나와 운명을 함께할 사람은 여자일텐데…
처음 계획은, 패미니즘과 패미니스트의 저주. 그리고 고귀한 여인들… 였는데…
이는 후에 기회가 있으면 하기로 하겠다…
지금은 안 하기로 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안할련다.
본래 사람을 만족 시키려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살아 온 인생은 아니다. 그랬던거 같아…
짧게, 한번 물어나 보려고…
귀막고 안들으면 되는거냐? ㅋㅋㅋㅋ
그 성경이 전우좌우가 있고, 역사의 시작과 끝이 있다.
하와의 저주로 시작해 창조자에게서 인류는 멀어졌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후서를 통해서 남과 여의 질서를 분명히 했다. 바울 뿐이랴. 하와가 뱀에게 속은 죄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계시록을 통해, 사람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끊임없이 여자란 단어가 거론된다… 왜? 왜 그런거 같냐?
내가 확신하는데,
마지막날도 이와 같으리라… 이런게 성경의 흐름이다…
사단의 꽤임에 빠져 먼저 선동 당하고 인류의 파멸을 조장하는게 여자다…
창조자의 질서를 파괴하고 스스로 높아지리라(사단이 그랬던것 처럼) 하며 사단의 세상을 가져오는게 여자다…
그들이 패미니스트란 이름의 여자다… 패미니즘은 종교다. 저주가 아니냐.
그러니, 또한 여자의 목소리가 어느만큼 높아지는지 보면…
창조자의 시점을 알 수 있겠지…
스스로 기독교라고 말하면서, 성경이 여자들의 허영심을 경고하였음을 모르냐.
어리석은 사람아… 여자란 이름아…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주며, 네 귀를 간지럽히는 그 혀를 조심해라…
아… 내가 원래 이 아이 신랑도 참 예뻐했었는데…
결혼해 뉴질랜드로 가더니, 패미니스트가 되서 돌아왔네. ㅋㅋㅋㅋ.
그래도 한참 날뛰던 그 때에 비하면, 많이 수그러든거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또 읽고 메일보내. ㅋ.
ps: 나 너랑 변론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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