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코드]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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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5 13:17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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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동물은 무섭지...

    위 사진처럼 거대한 곰이나, 사자나...

    곰이나 사자가 아닐지라도 동물의 몸집이 거대하면 그 자체로 무서움...

    그런데 늘 생각하는거지만, 동물의 눈은...

    참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봄.

    그래서 오늘은 첫 사진을 백곰(폴라베어) 사진으로 장식했음.

     

     

    요21: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글을 쓰고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벌써 여러차례...

    기독교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에 관해서도 글을 썻던것 같은데...

    그 중, 대표적으로 강론과 죄에 대한 비판이, 한 개인에게 다가가 그를 비판하는 것과 다른것이라고 증거했고,

    궁극적으로 기독교를 또는 그 두꺼운 성경을 한 마디, 한 단어로 표현하면, 관계라는 증거도 했다.

     

     

    궁극적으로 어떤 관계냐? 예수와 너와의 관계야...

    이 관계는 언제난 1대 1의 관계지, 1대 2 또는 1대 그룹의 관계는 없다.

    따라서 예수와 너와의 관계지, 예수와 너와 나, 예수와 우리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와 관계가 성립이 되어야 하는데,

    이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은 목사나 교회가 일반적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때로는 갖지도 않은 거짓 사랑으로 모든걸 포장하려는 기만이 팽배해 진거지.

    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기만이 바로 "사단"이다...

     

    왜? 이론적으로, 혹은 납득할 수 없을 지라도,

    결론적으로 네가 창조자보다 더 큰 사랑을 가졌다 말하는 것이며,

    내가 창조자보다 더 큰 사랑을 가졌다 거짓말 하는 순간,

    네가 스스로 "나는 창조자"라고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예수와 나, 1대 1의 관계만 존재한다.

     

    물론 성경은 예수와 너와의 이 관계학을 성경 66권을 통해서 아주 잘 증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늘 처음 소개한 성경구절이 그렇지.

    오로지 예수와 베드로 1대 1의 관계야.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에게 묻기를 저들은 어디로 가나이까 하였을때, 저들은 상관치 말고 너는 날 따라라 했던거고,

    고귀한 여인 드보라를 증거하며 "드보라"와 예수의 관계가 어떻게 성립이 되었는지,

    다윗과 예수의 관계는, 솔모몬과 예수의 관계, 그리고 아브라함과 예수의 관계...

    곧 사람과 예수 1대 1의 관계가 성립되는 장면을 증거하는 것이다.

     

    더 낳아가, 성경은 여러차례 족보를 증거하는데,

    이 족보의 의미가 뭐냐? 예수와 관계가 성립한 한 사람,

    즉 복음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계속 전파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음이다.

    이 예수와 너라는 1대 1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볼께.

     

    지금은 12시 정각.

    이 12시 정각에 여기 다섯명의 기어가 예수앞에 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예수가 A라는 기어에게 'A야, 넌 오늘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아라' 하였다.

    이 12시 정각에 예수와 A라는 기어의 관계는 이렇게 성립이 된거야.

     

    그런데 그 옆에 있는 B, C, D, E 기어들이 A라는 기어에게 예수를 흉내내 먹지도 마! 할 수 있냐면 그렇지 않아.

    이 12시에 예수가 A기어를 제외한 다른 기어들에겐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겨'라고 해.

    따라서 B, C, D, E 기어들은 예수를 흉내내선 안돼.

    이게 12시에 예수와 B, C, D, E 기어들과의 관계야.

     

    오히려 예수는 A기어에게 먹지도 마 했을지라도 B, C, D, E 기어들은 이것좀 먹어라고 해야돼.

    이게 기독교의 관계학이다.

     

     

    그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야.

    그외 피조물과의 1대 1의 관계다.

     

    나와 예수와의 관계 뿐이지, 나와 예수 사이에 다른 어떤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아.

    내가 A기어에게 물 한동이를 마시라고 떠다 준 들, 그 물을 마시지 않는건, A기어와 예수와의 관계야.

    A기어가 내가 떠다준 물을 마시던 안 마시던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이게 기독교의 관계학이야. 이런 기독교의 관계학을 다른말로,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하지...

     

    이 관계가 성립이 되어야 한다.

    이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으면, 모두가 가짜라.

     

    예수가 스스로, "내가 사단과 연합하지 않는다" 가르쳤는데,

    세상의 수많은 교회들이 앞다퉈 "종교연합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냐.

    ㄴ 때가 되어서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겠지만.

     

    종교연합운동을 벌이고 있는 그 교회란 곳에 몸담고 있는 그 성도라는 자들은,

    과연, 그 교회에서 알라를 향해 기도를 한들, 그 교회를 떠나거나 빠져나올수 있을까?

     

     

    예수와 그 성도의 관계가 성립이 되었다면, 예수가 가만히 두질 않는다.

    만약 예수가, 자신과 관계가 성립된 어떤 양들이 연약해 그 교회를 자의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럼 예수가 그 교회를 세차게 쳐.

    예수와 1대 1의 관계가 성립된 목사, 성도, 또는 양이라는 자들은 절대로 사단과 연합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연합하겠다 운동을 벌이는 저들은, 기독교도 교회도, 또는 종도 양도 아니다.

    너의 영으로 느껴봐. 너의 생각의 기준이 예수가 되면, 그러면 보여...

     

     

    그런데도 사람들은, 입으로는 예수, 예수 말하면서 그냥 질질 끌려가지. 이게 한낯 사람이야...

    예수 백날 찾아도, 사람 또는 지들의 목자라는 목사에게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게 한낯 사람이다...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야.

     

    어째서 이 관계학이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 오해 또는 오류냐?

    예수가 "가룟 유다"일 지라도 그도 예수가 창조한 피조물인데, 예수가 "가룟 유다"를 사랑하지 않아서 심판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예수보다 더욱 "가룟 유다"를 사랑할 수 있는거냐?

    만약 어떤자가 너를 속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세상에세 가장 사랑한다 말한다면, 그 자가 "마귀'인줄 알라.

    자기 피조물을 창조자인 예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가 한탄하듯, "내가 어떻게 사단과 연합을 하냐. 이 인간아!" 하는데,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그 사랑이 어디서 온 사랑이냐?

    저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창조자보다 더 큰 사랑을 가졌다 주장함이 아니냐?

    스스로 "내가 사단이라" 말하고 있음이다.

    예수가 "가룟 유다"를 심판했음은, 창조자의 공의 때문이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기독교가, 어떤 성경이 악을 용납하라 증거하더냐?

    어떤 예수, 어떤 복음이, 사랑으로 사단과 연합해라 가르치냐?

    그 사랑이, 마땅이 사단에게서 온 사랑임을 알아라.

     

     

    예수와 너, 1대 1의 관계가 성립이 되면...

    그러면, 예수가 네가 그렇게 하게, 그냥 두질 않아...

    사단과 연합하겠다 하는 그 교회에 계속 나가게, 널 그냥 두질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저들은, 예수의 관심 밖에 있는 자들이다. 슬피 울어라.

    예수를 버린 나를, 예수가 부인하지 못할지라도, 저들을 향해 예수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리라.

    예수가 너를 그냥 내버려 두질 않는다...

    자위? 자위행위? 하물며 동성연애? 이런거 꿈도 꾸지 마라...

    예수가 너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

    연합? 사랑으로? 사단과 함께 하겠다? 너와 예수가 관계가 성립되었다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게 기독교의 관계학이고, 이 관계가 전부다.

    간증이었다.

     

     

    진짜 기독교 정신: 악을 용납하는 자는, 이미 악과 연합한 자라.

     

    그러니 이 일반적 오해에 빠지지 말아라.

    종교는, 기독교는 포용해야 한다? 내가 말하리니, 가증한 가짜들이 그렇게 가르쳐 왔던거야.

    명심해라 시몬아! 그 선지자 이사야의 때에, 선지자 이사야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선지자들을 가리켜 예수는 백성을 지옥으로 끌고가는 "삯꾼"이라 했음이다.

    이사야가 다시 묻되, 그러면 저 삯꾼들을 따라가는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가 대답하되, "저들이 스스로 원해서 따라감이라" 하였음이라.

    어떤 예수도, 어떤 성경도 사단에게서 온 사랑을 증거하지 않는다.

     

    사람보지 말아라...

    사람을 본다면, 그 증거가, 넌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거야.

    제자들에게 예수가 뭐라고 가르쳤더냐.

    세상이 나를 미워함으로 너희도 미워할 것이고, 저들이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너희는 그 집에 발도 들여놓지 말고,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그 집을 떠나라... 하지 않았냐.

    어떤 예수도, 어떤 성경도, 거짓된 사랑을, 사단에게서 온 그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다.

    사단이 스스로 창조자를 흉내내어 떨어졌음을 모르냐.

    악과 연합하지 않는다는 너의 창조자보다, 네가 더 큰 사랑을 가졌다 하는것이, 네가 스스로 "창조자"라 거짓말 하는 것이다.

     

    이 관계가 성립이 되어야 돼.

    네가 예수와 연합하고자 한다면 말이야.

     

     

    마18: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위 성경구절은, 창조자의 피조물에겐, 누구에게나 저희를 위한 천사들이 있다는 증거고,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다.

    어째서 난 스스로 증거하기를 강론과 강론을 통해 인생들의 죄를 들춤이, 한 영혼 한 영혼을 쫓아다니며 저주를 내뿜는 것과 다르다 한 것이냐.

     

     

    설사 악인일 지라도, 그 악인과 예수와 1대 1의 관계가 있다.

    예수와 가룟이 1대 1의 관계 였던것처럼. 악인도 그 쓰임에 맞게 창조자가 쓴다는 성경을 읽어보지 못했냐.

    그가 악인일 지라도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넌 그저 예수에게 매달려 가면 돼...

    너희는 오직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했던 그 성경을 기억하냐?

    이 말이 미쁘다...

    이게 본질이다...

     

    예수를 원하면, 관계를 성립해라...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학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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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6 14:19

    주와 객은, 절대로 뒤바뀌어선 않는다.

     

    bible

     

    행15: 36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사도행전 15장은, 사실 매우, 중요한 성경의 증거다.

    당시에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었던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말로, 혀로,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말로, 혀로 할례와 모세의 율법에 가둬 괴롭게 하려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변론이 이어지는 증거가 사도행전 15장이다.

     

    게바가 말하길,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결국 구원은 율법이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줄 알았던 사도들은,

    입으로, 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율법에 가둬 괴롭게하고, 또한 그 율법을 전하는 자들 때문에 괴로워하던 자들에게,

    바나바와 바울, 유다, 실라를 보내, 그 괴로움에서 자유케 하게 하고,

    다만, 우상의 제물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증거하게 한다.

     

    그러던중,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와 함께 다시금 수리아,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굳게 하게 되었다.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는 순간이다...

     

    마가라 하는 요한이 한가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서 마가라 하는 요한이, 복음을 전하지 않은것도 아니요, 일을 하지, 않을것도 아니다...

    다만, 바나바와 바울과 떨어져 부여받았던 사명, 율법에 메여 괴로워하던 자들을 자유케 하라는 그 사명대로,

    한가지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기어 너의 생각은 어떠냐. 이게, 죄가 되냐.

    일을 안한것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지 않은것도 아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도 분명히 헌신적으로 교회를 다니며 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명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 그 마가라 하는 요한을, 바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잘라낸다! 왜?

    이게, 영의 세계라...

     

    "본질적인 관계는, 절대로 뒤바뀌어선 않는다"를 시작하며,

    사도행전 15장 36절 이하의 구절을 소개한 이유는, 바로 이 영의 세계를 증거하고 싶은 때문이다.

    바울은, 이 영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던 인물이다...

     

    근본적인 질서를 훼방하는 자, 근본적인 종으로써의 사명을 망각하는 자, 따라서,

    근본적인 관계를 망각한 자, 그자를 용납한다는 건, 곧 사단을 용납하겠다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먄악 바울이 한가지로 일하지 않은 "마가라 하는 요한"을 용납했다면,

    그후, 마가라 하는 요한은, 절대로, 혼자서 오지 않는다.

    한가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근본적인 질서를 훼방했기 때문이며,

    예수가 주, 내가 객이라는 근본적인 관계를,

    예수가 객, 내가 주로 뒤바꿔놓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를 용납하면, 반드시 사단이 그 "마가라 하는 요한"과 함께 온다.

    바울은 이 영의 세계, 영의 질서, 영의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다...

     

     

    남과 여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와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롬6: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위와같이 증거했다.

    그의 뜻대로 행해주면, 그의 뜻대로 따라주면,

    그가 너의 주인이며, 너는 그의 종이라...

     

    가령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A에게, 회사 동료(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A는, 그 회사 동료(여)가 위로가 필요하고 말동무가 필요하다며 집을 나서려고 한다.

    반면 B는, 회사 동료일 지라도 늦은밤 전화를 걸고, 늦은밤 그녀를 위로해 주려고 나가는게 좋지않다 말린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존재하겠다.

    부부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다른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성경이, 로마서 6장 16절과 같이 증거했으므로,

    어떤 이유에서든 그 회사 동료를 위로하기 위해서, 말동무가 되어주기 위해 집을 나선다면,

    적어도 그 순간엔, 내 연인보다, 내 아내보다 또는 내 남편보다 그 회사 동료(남 또는 여)가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한 것이 된다.

    이게, 열매다.

     

    연인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는 남자와 여자?

    남편 보다 소중한 남자가 있는 아내? 아내보다 소중한 여인이 있는 남편?

    내 갈비뼈 보다 소중하고, 내가 매달려 동행해야 할 남자 보다 소중한 남자가 있는 여자?

    이런 자들과, 결혼, 만남, 생각지도 말아라.

    이는 저주라.

     

    그런데도,

    세상의 사람들은,

    주권자를 모르고, 질서를 모르는 인생들은,

    여러 변명과 그럴싸한 말장난으로 그 가증한 행위를 선함으로 포장한다.

    내 갈비뼈가 먼저인지, 아니면 위로가 필요한 다른 여성이 먼저인지,

    자신의 행위가 누가 먼저라고 증거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국가가 먼저인지 국민이 먼저인지, 등등등,

    말장난들을 한다.

     

     

    기만에 빠지지 말라.

     

    인생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다.

    내가 바라봐야 할 관계는 예수와 나 사이의 관계인데, 때때로 오만가지 관계에 관심을 드러내곤 한다.

    자신의 관심사 혹은 묻 영혼을 향한 그 관심이,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인지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게, 사람이다...

     

    바울이 "마가라 하는 요한"이란 자를 저주한 게 아니다.

    바울이 "마가라 하는 요한"이 쓰러지길 기도한 게 아니다. 다만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한가지로 일하지 않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나머지는 예수와 요한 사이의 관계야.

     

    네가 누구관데 주를 대신할 수 있으며, 주를 흉내낼수 있겠나.

    우리가 어떤 영혼들을 걱정하면, 그 영혼들을 책임질 수 있나.

    그 영혼들이, 내가 또는 네가 아니면, 예수를 만나지 못하냐.

     

    이 글을 읽을 기어들 중에서 가령 강아지를 키운다 가정해보자.

    너도 피조물이고, 너의 강아지도 한낯 피조물이다. 너는, 너의 강아지를 위해 피를 흘릴수 있냐.

    피조물도 피조물을 위해 피도 흘리지 못하는데,

    창조자가 그 피조물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롬5: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 예수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마치 자신의 사랑이 엄청나서 영혼들을 책임지고 싶어하는 냥,

    그 기만, 그런 기만에 빠지지 말아라.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마가라 하는 요한이, 예수 앞에 온전히 서면, 그만이다.

    마가라 하는 요한이, 예수 앞에 온전히 서고, 예수와의 1대 1의 관계속에 있다면, 예수가 요한과도 동행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를 내가 또는 네가, 용납한다 아니다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는 사랑이 아니며, 도리어 창조를 흉내내고 스스로 창조자가 되고 싶어하는,

    그 영혼의 구원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끊임없는 육의 속삭임이며, 육의 저주라.

     

     

    원죄를 기억하기 바란다.

     

     

    너의 뜻이었다 아니었다란 변명은, 중요한 게 아니다.

    하와는 왜 하와고, 아담은 왜 아담이냐.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들의 뜻이었든 아니든,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뜻대로, 사단의 바램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 행위, 이 열매가 중요해.

     

    이 누구의 뜻대로 행위하는가의 문제는, 너의 주인이 누구냐를 결정하는 문제며,

    로마서 6장 16절은 이를 증거한 것이다.

    누구의 뜻? 누구의 뜻을 따라 행위 하느냐가,

    너의 주인이 누구냐를 증거하는 열매다.

     

    만약 이 글을 읽을 기어들이 굳이, 신경써야 할 한가지가 있다면,

    다만, 예수에게 그들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 한가지다.

    그 영혼을, 우리가 또는 네가, 책임질 수 있는게 아니다.

    다만, 창조자에게 의탁할 뿐이야...

    그 나머지는, 너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적 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