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너의 영혼을 깨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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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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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1 14:39

    영혼-소

     

     

    • 복음이란? 그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 하나로, 그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 구원이란? 그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며, 그와 동행하는 것.
    • 믿음이란? 그가 주권자라는, 그가 모든걸 주관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
    • 기독교란? 그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다. 따라서 관계가 성립 되어야 함.

     

     

    알고있니.

    어떤 이들이 초대교회로의 회귀(回歸)를 논하며,

    성경을 근거로 여러 추측들을 제시하고, 학문적, 역사적으로 접근해 보지만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초대교회를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려 한다면 어느 한부분, 예를들면 사도행전 2장이 아니라,

    고린도전후서가, 데살로니가전후서가, 디모데전후서가, 그리고 더 낳아가 로마서가, 골로새서가 모두,

    초대교회의 모습을 증거하고 있음이라.

     

    다르게 표현하면, 신약성경 전체가 초대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고,

    그 신약성경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지켰고, 그가 사흘만에 부활에 승천했으니,

    이제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와 연합하여, 그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 복음이다.

    따라서 초대교회라는 그 단어를 운운하지 말고, 이 복음을 회복하면 된다.

     

    복음이 복음되기까지,

    이 복음이 회복되지 않는데, 초대교회를 본따 흉내내면 뭐할꺼고, 초초대교회를 흉내내면 뭐할까.

    본질을 비켜가거나, 본질을 피해가면, 육신의 몸으로, 육신의 머리로, 제아무리 흉내를 내본들,

    그 속에 본질은 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질을 발견해야 하고, 그 본질을 발견하고자 해야함이라.

     

    교회가,

    만약 처음부터,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더라면,

    만약 처음부터, 기독교가 그의 얼굴을 구하라 증거했다면,

    만약 처음부터, 기독교가 그를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고자 애썼다면,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삶이 어렵지 않았으리라.

     

     

    히5: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보라.

     

    예배는 그를 위한, 그를 향한 것이다.

    그 예배의 주인이 목사도, 성경도, 교회도, 나도, 너도, 지체도 아니다.

    너는 그 예배를 드리며, 예수가 강대상 중앙에 앉아있음을 인지하며 예배를 드리냐.

     

     

    너는 정말 그를 인정하는 삶을 살고있니.

    네가 버스정류장을 걸어갈때, 그가 앞서 그 정류장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네가 그 버스에 오를때, 너보다 먼저 그 버스에 오르는 예수를 생각하는 삶을 살고있니.

    네가, 그에게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그의 존재와 그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삶이란다.

    이게 질서고, 이렇게 시작해야 돼.

     

    너는 그와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니. 정말 그러냐.

    너는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고있니. 정말 그러하냐.

    너는 그가, 주권자란 사실과 너의 미래에, 너보다 먼저가서 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삶을 살고있냐.

    예배? 기도? 관계? 매달림? 그보다 훨씬 중요한게, 그의 존재와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함이라.

    이게 질서고, 이렇게 시작하는 거란다.

     

    그의 존재도 인지하지 못하는 네가,

    누구에게 예배를 드릴거며, 누구에게 기도를 한다는 말이냐.

    그의 존재도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지 못하는 네가,

    누구에게 매달리고, 누구와 동행을 하겠다는 말이냐.

     

    그래서 그의 얼굴을 구해야 돼.

    어디서건 언제건, 네가 버스정류장에 서있을 지라도,

    네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할때에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도,

    지체와의 교제를 하고있는 그 순간에도, 너를 지켜보고 있는 그를 바라볼 수 있어야 돼.

    이게, 너의 영혼을 깨우는 행위고, 중심이야.

     

    네가 사업장에서 땀흘리고 있을 때에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매 순간순간마다,

    어디서건 언제건, 그가 먼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그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어야 돼.

    이렇게 출발하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너의 예배보다, 복음보다, 기도보다, 매달려 동행하려 함보다,

    그의 존재 자체가 훨씬 중요해.

    그의 존재를, 그리고 주권자로써의 그의 주권을 인정해 드려야 돼.

    이게 가장 중요해.

    이렇게 시작해야만 돼.

     

     

    그와의 동행이 구원이라.

     

    어떤 자들이 훼방하려는 말을 할 지라도,

    누가 어떤 가증한 자들이 다른 여러말로 복음을 변질시킬 지라도,

    구원은, 곧 그와의 동행이야.

    다시 말하지만,

     

    • 복음이란? 그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 하나로, 그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 구원이란? 그에게 매달려, 그의 얼굴을 구하며, 그와 동행하는 것.
    • 믿음이란? 그가 주권자라는, 그가 모든걸 주관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
    • 기독교란? 그와, 나와의, 1대 1의 관계다. 따라서 관계가 성립 되어야 함.

     

    모든 성경의 증거는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이에서 벗어나는 모든 거짓된 복음, 설교, 증언은, 그 모두가 가짜라.

     

    문제는 그와 동행을 하려면,

    그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해서, 그의 얼굴을 구하며, 그에게 매달려 있기를 힘써야 돼.

    문제는, 그를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지 못하면,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삶도 살 수 없고, 그에게 매달려 동행하려는 삶도 결단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하여,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다시 그에게 매달려 동행하려는 삶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끝끝내, 구원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기어 너가, 믿든 안믿든, 구원은 없다.

    구원은 그와의 영원한 동행이기 때문이라.

     

    착각하지 말아라.

    네가 드리는 그 예배가 동행이 아니란다.

    어떤 이는 부모에 의해서 날때부터, 어떤 이는 친구의 인도함으로, 또 어떤 이는 교제를 위해서,

    어떤 이는 막연함으로, 어떤 이는 신이 존재할 것 만 같아서, 어떤 이는 선배 때문에, 어떤 이는 이성친구때문에,

    저마다의 이유로 교회를 나가고,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한다마는,

    그 자리에, 예수가 먼저와 앉아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사단도 와 앉아있다는 사실을 모르냐.

    그 예배당에 너만 있는게 아니란 말이다.

    사단도, 귀신들도 와 앉아있단다.

    그들이 예수를 알아도 너보다 훨씬 잘아라.

    네가 내세울수 있는게 도대체 뭐냐.

    예배가, 교제가, 간구가, 구원이 아니란다.

    이는 너의 육신이 너 자신을 속이는 속임수에 불과해.

     

     

    문제는 이런것!

     

    문제는 이런거야.

    그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하여,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삶으로,

    그리고 그에게 매달려 그가 가는곳으로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더 멀리, 더 깊게, 그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말아.

    이게 문제라.

     

    여러 사람을 찾아다녀 보지만, 영혼의 갈증은 풀어지지 않고,

    누군가 너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물으면, 입버릇처럼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대답 하지만,

    돌아서면, 네가 홀로 그자리에 남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너를 발견하리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교제라는 단어에 네 육신이 너를 속이며,

    그들과 함께,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가 오면 천국에 갈 것 같지만,

    두려움에, 진실을 마주할까봐, 그 진실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너 자신을 모르냐.

     

    설교를 하는 그 목사에게 찾아가 질문을 해 보아라.

    설교때와는 다르게 두리뭉실하게 대답하는 그를 발견하리라.

    이유를 아냐. 예수를 모르기 때문이야. 신학교에서 배운 학문으로, 자신의 경험으로 설교는 할 수 있지만,

    예수는 몰라서... 그래서 자신이 책임지고 싶지 않은 까닭이라.

     

    예수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해서,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는 삶으로,

    그리고 그에게 매달려 그와 영원히 동행하려는 그 삶이 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너에게, 답을 줄 수 없단다...

    이게 문제라...

     

    예수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해서,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는 삶으로,

    그리고 그에게 매달려 그와 영원히 동행하려는 그 삶이 되지 않으면...

    네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네가 아무리 구원의 확신있다 너 자신을 속여도,

    그에게서 점점더 멀어질 뿐이라.

    이게 문제라...

     

     

    예수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해서,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는 삶으로,

    그리고 그에게 매달려 그와 영원히 동행하려는 그 삶이 되지 않으면...

    더더욱 사람을 의지하게 되고,

    더더욱 사람의 말에 의지하게 되며,

    더더욱 분별의 능력이 사라지고, 영혼은 소멸되며,

    더더욱 미궁속으로 빠지게 돼.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예수와의 동행이 아니라도 어떻게 되겠지는 없다.

    예수의 존재와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삶과 그에게 매달리려는 삶이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 궁리를 해 보아도,

    중간은 없고, 아예 없으며,

    더더욱 예수가 아닌 사람을 섬기게 되며,

    그 사람을 의지하게 되고,

    분별력을 잃으며,

    영혼이 소멸될 뿐이야.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이단들이 생겨나고, 이단들의 올무에 빠져들며,

    이단이라 비판하고 정죄하지만, 그 이단들과 똑같은 설교를 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들보를 보지 못하는게 사람이라.

    예수의 존재와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그의 얼굴을 구하는 삶과 그에게 매달리려는 삶이,

    아닌 근거라.

    이들은 모두,

    예수와 동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너의 영혼을 깨울수 있는 방법!

    예수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에서 출발해서,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는 삶으로,

    그리고 그에게 매달려 그와 영원히 동행하려는 그 삶을 사는 방법, 그 삶을 살려는 의지,

    이게, 너의 영혼을 깨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제각각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설교를 하고, 권면을 한다 한 들,

    그들이 너를, 구원치 못하리라...

    구원은, 주권자의 주권이고,

    그 주권자와의 동행이 아니면,

    받을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

     

    그 주권자와 너와의 관계는,

    오로지 1대 1의 관계야.

     

     

    그를, 그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돼...

    그리고 그의 얼굴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는 삶을 살아야 돼...

    그래야, 그에게 매달려 영원한 동행을 할 수 있는거야...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한걸음씩 걸어가...

    한걸음씩만 걸어가...

    그를 인정하는 삶도, 그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삶도,

    기도도, 예배도, 교제도, 그의 얼굴을 구하는 것도,

    그에게 매달려 있는 것도,

    이 모든게 동행이고,

    이 모든게 훈련이야...

     

    그 누구도 날 때부터 장성한 자의 믿음과 장성한 자의 분량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

    예수가, 너를, 정금과 같이 연단하는줄 모르냐...

    훈련이 없으면, 그의 간섭이 없으면,

    괴로움이나 기쁨이나 안타까움이나 즐거움이나,

    그저 한때야...

    다 무너져...

     

    한걸음씩만 가...

    버스정류장에서 멍하니 예수의 얼굴을 구하고, 그를 찾던 니가,

    사업장에 도착하고, 세상으로 눈동자가 향할 지라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다시금 그에게 매달려, 오히려 세상이 너무 좋다고 솔직히 고백해.

    하지만 그 세상과 당신을 바꿀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면 돼.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러면 네가 아니라 그가,

    너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삶으로, 세상으로,

    그가 너를 바꾸고, 그가 너를 연단하고, 그가 그 강한팔로 널 꼭 감싸안아...

     

    우리는 한낯 피조물이라...

    너의 연약함 때문에, 그가 널 버리지 않아...

    네가 세상의 중심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할 지라도,

    너의 영혼 중심에서 그의 존재를 인정해 드리고, 그를 찾고, 그의 얼굴을 구하는 너를,

    그런 너의 연약함 때문에, 예수가 버리지 않아...

     

    문제는...

    너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는 거야...

    이 글을 읽을 기어들이, 자신의 영혼을 깨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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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j
    ktj
    Coins: 24,370
    2020-06-22 09:14

    예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시기에 예수님은 모든 존재를 지켜보고 계시죠....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할때....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의 얼굴의 구하려 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볼때.... 온전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겠죠..

    온전한 관계가 성립되면 온전한 동행이 이루어지고 온전한 기도도 이루어지겠죠..

    그래서 기도는 내 마음의 중심(영)이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애쓰는 것 바라보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

    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관계도 동행도 기도도 맥은 내 마음의 중심(영)이 어디로 향하는냐 ...

    그것이 내 영을 깨우는 것이고 얼굴을 구하는 것이며 관계를 맺는 것이며 동행하는  것이겠죠..

    반대로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을 향하면 얼굴을 구하지 않아도 얼굴이 구해질 것이고 그분이 누구인지 몰라도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이렇게 생각하기에  기도는 내 마음이 예수님에게 온전히 향하지 않기에 온전히 향하게 해달라는 것...나를 제대로 부인하게 해달라는 것...우상을 섬기지 않게 해달라는 것...영을 깨워달라는 것...관계를 맺게 해달는 것...성령이 임하게 해달라는 것...온전한 얼굴을 비추어 달라는 것.. 이 간구들은 같은 맥락 다른 표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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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netkr
    Coins: 40,495
    2020-06-22 12:12

    ktj님은.,

    지금처럼 하면 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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