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중심 – 맡은 자의 구할 건 오로지 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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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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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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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4: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지난 한 주는,

    크고작은, 싸움의 현장을 많이 목격한 한 주였다. 싸움...

    듣는이에 따라선 별 일 아닐수도 있다.

     

    우선, 내가 사는 동네에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싸움이 있었다.

    원래 이 동네에 여호와의 증인 사람들이 매 주 집집마다 방문을 한다.

    나는 그저, 아닙니다... 하고 문을 닫던가 아니면 문을 열지 않은채 아닙니다... 할 뿐이다.

    그런데 2층에 사시는 집주인 선생님은 조금 귀찮으셨나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리고 화요일날, 동네 교회의 목사, 집사(?) 들의 노크가 있었다.

    난 그저, 아닙니다... 하고 문을 닫았다. 한 30분쯤 흘렀나. 동네분들이 왜 쓸데없이 자꾸 노크를 하느냐고 난리다.

    동네 교회에서 나온 분들은 매우 난처해 보였다.

    실상 귀찮케 하는 존재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는데,

    된통 욕을 먹은건 교회라...

     

    내 블로그에도 별로 상종하게 되지 않는 댓글들은 종종 달리는 편이지만,

    또.,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에서의 댓글 논쟁, 그리고 댓글에 댓글을 달며, 꼬리에 꼬리를 물리며 욕으로 끝나는 처세...

     

    언젠가, 둘 씩 짝지어 돌아다니며 사람의 팔을 잡아끄는 신천지인들과,

    길거리 한복판에서 싸우는 아저씨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그냥 아닌거면 그뿐이다. 다만 그를 용납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아니면 그냥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을 설득하려는 자세야 말로, 미련함이 아니냐.

    그래서, 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아라란 글을 남겼었다...

     

     

     

    기독교인의 중심은 달라야한다.

     

    이 글을 읽는 기어들중,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너희의 충성은 누구를 위한 충성이고, 누구를 향한 충성이냐.

    예수가 아니냐. 그러면? 그러면 사단 곧 어두움을 선택한 그들도, 어두움에 충성됨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이게 상식이다.

     

    오히려 문제는, 사단 곧 어두움을 선택한 그들의 사단을 향한 충성심에 비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자랑하는 이들의 충성심은 늘 변질, 배반, 배신, 자기 합리화의 충성심인게 문제라.

     

    그래서 남을 설득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변론을 삼가해라 하는 것이고,

    그래서 4.15 총선에 관한 부정선거의혹, 조작선거의혹은, 그 나름의 사실관계, 그리고 기억해야 할 역사,

    그리고 시대를 분별하기 위한 하나의 거울로 삼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고전1: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기억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아담과 하와과 저질렀던 그 원죄를 쉼없이 되풀이하는 습관이 있다.

     

    성경의 증거를 통해서, 마음을 열자의 마음을 그가 열고, 높이 들 자를 그가 높이 들고, 낯추고자 하는 자를 그가 낯추고, 입을 열게 할 자를 그가 열게하고, 입을 다물게 할 자의 입을 그가 막을줄 입으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곧 영의 사람이 아니란 증거다.

     

    또 성경이 증거하기를 원수 갚는 일 조차 그에게 속한 것이라 증거했음에도, 내가, 해야한다 생각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롬12: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출애굽기, 레위기 운운하지 말아라.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 율법의 마침이 될 줄을 경이 미리알고,

    그의 몸을 향한, 그의 마음을 향해, 그의 거룩함을 더럽히지 못하게 했던 것이라.

    또 어떤이는 "피를 보수하는 자"에 관하여 변론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을 지라도,

    기록된 바라.

     

    롬13: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러므로 "피를 보수하는 자"는 곧 권세들이며, 이는 곧 국가와 국가를 나누신 창조자가,

    그 국가와 국가에 허락한 법치를 통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창조자의 질서를 주관하게 한 것이니,

    "국가"라는 이름의 권세들이 "피를 보수하는 자"임을, 내가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진실을 말할거면 진실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거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전파할거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전파해라.

    다시 말하지만 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아라.

    마음을 열자를 네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마음을 돌이킬 자를 네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돌이킴이라.

     

     

    육신의 눈, 육신의 정욕으로 판단치 말라.

     

    사단은 누구냐.

     

    너희들 생각엔 어떠하냐. 사단이 누구냐.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냐. 사단도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치 않겠나. 그러면 사단일 지라도 그도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인데,

    그 창조자가 사단을 사랑하지 않겠나.

    그러나 심판은, 오로지 그의 공의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 육신의 정욕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말자.

    네가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종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다.

    사단의 종들, 사단을 선택한 어두움의 세력을 향해 "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 생각할 일이 아니야.

    네가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종이듯, 사단의 종들도 사단에게 충성됨이 마땅한 것이다.

     

    충성(忠誠)됨은 진리와 비진리, 복음과 비복음,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우와 좌를 떠나서 그저 충성(忠誠)됨이라.

    오히려 자신의 선택을 배반하고 후안무치한 자세로, 남탓만 하는 자세로 일관하는 그를, 창조자가 가증히 여기리라.

    그러므로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에 속해 행해지리라마는,

    각 사람의 선택에 충성(忠誠)되게 행한 그 충성심(忠誠心)으로 심판받지 않으리라.

     

    계3: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인생이 되지 말아라.

    다시 말하지만, 복음을 전하려거든 복음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거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전파할거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전파해라.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말하며 악을 용납하고,

    입으로는 복음을 말하며 창조자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의 자리에 서지 말아라.

    중요한 건, 누구가 아니라, 나 또는 네가,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종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다.

    중요한 건, 누가 아니라, 묻 영혼들이 아니라, 나 또는 네가, 그리스도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만 중요해.

     

    우리가 한낯 묻 영혼들을 위해 존재하는 인생이냐.

    그리스도인이 묻 영혼들을 위해 존재하는 자녀들이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한다. 묻 영혼이 아니야.

     

     

    열매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 나머지는, 예수의 몫이고 예수가 하는 일이야.

    성령이, 너와 내가 없다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랴.

    동일한 성령이, 너와 내가 아니면 진리를 전하지 못하냐.

     

    앞서가는 죄악을 범해서는 안된다. 이는 가증한 자라.

    앞서가려는 자야말로, 아담과 하와가 쓰러졌듯 사단에 꾀임에 동일한 죄악을 범하려는 자다.

     

     

    변론을, 삼가해라.

     

     

    생각해봐...

    인생들이란, 쉼없이 그의 존재를 잊는다...

     

    복음을 내가 전하랴.

    우리는 그저 그에게 매달려 동행할 뿐이야.

    누군가 복음을 전하는 그 현장에 서있었을 지라도, 이는 그리스도에게 매달려 그와 동행했을 뿐이다.

     

    그 복음은 인생들이 아니어도 성령이 전해.

    그 복음은 사람이 전한게 아니라 성령이 한 일이야.

    이 한가지 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인생들을 보며 답답하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들을 향해 마음이 먹먹하냐.

    그러면 그 인생들을, 그 인생들의 창조자인 그리스도 보다, 너희가 더 사랑할 수 있냐.

     

    너의 글에 달린 댓글이 너로 하여금 성나게 했냐. 돼지에게, 진주를 줄 생각을 하지 마!

    길을 걷는데 너의 팔을 잡아끄는 이단들의 행위가 너로 하여금 분나게 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겉옷의 먼지를 툭! 툭! 털고 네 갈 길 감견 그만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것 같이, 세상에 속한 그들도 세상에 충성됨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된다.

    이뿐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사단과 어두움의 영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한없이 끝없이 화나게 하고, 분나게 해...

    그 화, 그 분, 그 분쟁은 곧 두려움으로 너를 인도할 것이고, 두려움은 너로 하여금 너의 영혼을 소멸케 할 테니까 말이다...

     

    기억해둬.

    그리스도인의 충성됨은,

    그가 주권자란 사실을, 그의 주권하에 있다는 한가지 진실을 인정해 드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에, 그의 전신갑주를 입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