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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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3기어를 2016년 끝자락에 오픈했고,
첫 글을 2017년 1월에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네이버 이메일을 통해서 처음 질문을 받았던게,
2018년 1월 초였다...
처음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얼굴을 구하는걸 힘들어할까.
어떤 이는, 우상숭배라고 자기 교회 목사가 말했다고 까지 했었다...
나도 목사들이 그러는줄 잘 알지만,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우상숭배란, 근본적으로 그런게 아니다.
우상숭배란, 근본적으로 내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내 자랑을 위해,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내 유익을 위해, 내 가슴에 예수 곧 창조자를 대신(代身)해 붙여잡는 자기자신의 신, 곧 자아(自我)다.
따라서 이 우상숭배는, 하와가 뱀에게 쓰러져 얻은 그 원조, 곧 그 열매이며,
따라서 이 우상숭배는, 그 열매가 확연이 들어난다.
예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그가 창조자임을 내 영이, 내 가슴이 인정하는 행위다.
내 육신이 아니라, 내 영이, 내 가슴이...
그러면 교회라는 곳에선 왜? 주(예수)의 얼굴을 구하지 못하게 가로 막아왔을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전해주던 그 때로부터 예수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짊어지던 그 순간, 그리고 약속한 성령을 준 그 이후로도, 이 모든 창조자의 구원사역은, 그의 얼굴을 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자기 종들을 통해 “너희는 다만, 주의 얼굴을 구하라” 증거한 것이다…
롬8: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7장이, 왜 예수는 성령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왜 우리는, 성령이 없으면 안되는지 적나라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배? 십일조? 헌신? 봉사? 헌금을 하면서도 나는 이만큼의 헌금을 하는데 저사람은 왜 저만큼 밖엔 헌금을 하지 못할까 생각하며 남을 판단하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며, 나는 이렇게 거룩하게 옷을 갖춰입고 예배를 드리는데, 저사람은 왜 꾸겨진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릴까 하며 남을 판단하는 자기 육신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육신안에 선한것이 하나도 없다는 한가지 진실을 바울은 깨닭았다는 거다.
이 율법에 속해 있으면, 행위가 자랑이 된다.
율법을 부여잡는 자는, 자랑할께 행위 밖 엔 없고,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증거 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9: 6)” 했는데,
그 동일한 성경 구절을 읽는게, 습관에 지나지 않게 되는 거야.
습관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건, 성령이 그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게 율법이고, 이게 유전이라.
요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이미 예수와 합한거다?
이 증거가 거짓말하는 독사의 자식들의 유전인 이유!
이 성경이, 이 성경을 읽음이, 이 성경을 들고있는 그 행위가 습관이기 때문이다.
어떤 성경도, 성경을 읽으면 그와 합한 자라 증거하지 않았으며,
어떤 성경도 그 성경을 들고있으면 그와 연합한 자라 증거하지 않는다.
롬3: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누가 뭐래도 성경은 반드시 유대인에 의해 쓰여지게 되어있다. 이는 창세로부터 창조자가 정한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러 이 땅에 왔을때, 신약은 없었고, 말씀은 그들의 손에 들려져 있었던 모세오경과 구약 뿐이었다.
그러면 말씀을 맡은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못 알아봤다는 거냐?
그러면 이제, 요한복음 1장 1절의 증거는 신약성경을 말한 것이라 거짓말 할테냐?
말씀은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것이 곧 구원이며 그와 합한 거라면,
어떻게 같은 말씀을 읽으며 이단들이 출몰하고,
왜 동일한 성경을 읽으며 해석이 분분하고,
왜 동일한 성경을 읽으며 누구는 유대인의 회복을 깨닫지 못하나.
왜 동일한 성경을 읽으며 누구는 666은 상징이라 거짓말하고,
왜 동일한 성경을 읽으며 누군가는 666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나.
말씀은 곧 하나님이란 이 말씀을 가지고, 누군가는 뭇 영혼들을 지옥으로 질질 끓고가는 도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예수와 역사하는 성령 앞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에 말씀을 읽는 성도들은 이미 예수가 그 안에 있다 거짓말 하는 그자들이,
자신들의 유전을 만들어 예수의 얼굴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독사의 자식이라.
예수를 경험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없으니 예수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예수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자신의 의를 내세움이라.
신학교를 나오고 성경을 공부했으나 자신의 자랑과 정욕을 위한 행위라.
그러므로 율법과 유전을 깨뜨리지 못한게 유대인에게만 속한 죄악이 아니다.
예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이런거야.
그러므로 너희 주의 얼굴을 구해야 돼.
그의 얼굴을 구할때, 그가 자신을 보이신다고 그 성경이 증거하였음이라.
그러면 왜 그의 얼굴을 구해야 하는건데? 그와 동행하기 위함이지.
지식을 달라 함도 아니며, 기적을 배풀어 달라 함도 아니다.
지식을 원하고 기적을 원한다는 건, 이미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라.
왜?
고전1: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성경은 왜 읽는건데? 그를 알기 위한 거야. 내 자랑이 아니라.
그와 동행하려는 이유는 뭔데? 그의 마음을 알기 원하기 때문이야.
내가 원하는 걸 달라고 동행하는게 아니다.
생각을 해보자.
그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그를 인지하고 그를 인정하는 거야.
그가 창조자임을 인지해야 돼. 그가 주권자임을 인정해야 돼.
그래야만 그의 얼굴을 구할수 있는 거야.
오늘 버스정류장에 걸어가며, 너보다 먼저, 그 버스정류장에서 널 기다리고 있는 예수를 떠올려봐.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너보다 먼저 그 버스에 타 너를 보고있을 예수를 떠올려봐.
커피숍엘 들어가면서, 그 커피숍 안에 먼저 와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예수를 한번쯤 떠올려봐.
운동을 하려고 운동장으로 향하며, 그 운동장에 먼저가, 너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예수야.
기도를 하기 위해 골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가, 그 골방에서, 기도하러 들어오는 너를 먼저 기다리고 있다는 진실을, 바라봐봐.
예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이런거야…
그러므로 기적을 원하고, 예수를 발견하려는 중심 이외의 지식을 원함은,
근본적으로 그가 창조자임을, 그가 주권자임을 부정하는 행위다.
왜냐하면, 그가 창조자임을, 그가 주권자임을 인정할때, 그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야.
예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그가 창조자임을 인지하는 행위다.
예수의 얼굴을 구한다는 건, 그가 주권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야.
입으로 말고, 누군가 질문을 했을때 타인에게 습관처럼 내뱉는 답변으로 말고,
가슴으로 그가 모든걸 주관하며 그가 이미, 너의 미래에 가 있는 창조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입으로 말고, 너의 가슴으로 그가 창조자임을, 그가 주권자임을, 이처럼 인정해야 돼.
무엇을 더 원하는데?
이미 창세기가 창조자를 증거했으며, 아브라함을 택하사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고,
예수는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고, 그 십자가의 열매가, 약속한 성령을 보내준 결과다.
그 약속을 믿는 모든자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증인이라 하지 않았나.
무엇을 더 원하나…
그러므로 지식을 원하고, 기적을 원한다는 건,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거야.
이미 수많은 기적과 이적이, 그리고 지식이 너를 감싸고 있는줄 모르냐.
어떻게 예수를 알았는데… 십자가는 뭔데… 이미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냐.
그를 아는 지식이 너희를 감싸고 있는줄 몰라…
빌3: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
네가, 예수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가, 너를 위해 존재하는지?
내가 예수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면, 그러면 고민할께 없는거야.
고민이 아니라, 그를 발견한, 기쁨만 존재해. 이게 믿음의 증거야.
그를 발견했다면, 그를 알고 싶을거 아니야…
그를 알고 싶다면, 그를 보고 싶을거 아니야…
멍하니 창가에 서서, 너의 주가, 어디에 계실까. 어디에 서서 날 보고 계실까. 그의 얼굴을 찾는 것!
이게, 그의 얼굴을 구하는 거야…
눈을 감고, 너의 입을 열기전에, 너를 먼저 기다리고 있는 예수를 떠올리라 하는 것,
그가 실로, 네가 기도하기 위해 그의 앞에 앉기도 전에, 그가 먼저 그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야.
이 한가지 진실을 인정 하라는 거야.
그를 인정하는 그 마음의 중심(中心)이, 바로 신뢰고, 바로 믿음이야.
그러니 의심하지 마…
기적을 원하고, 이적을 원한다는 건, 이미 그의 존재를, 그가 주권자임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야.
계3: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그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
다만 그가 창조자임을, 그가 너의 진짜 하나님임을, 그가 주권자란 사실을 인정하라는 거야.
그래야만 자신과 세상 사이를 저울질하는 너에게, 그의 눈물을 보여줘.
그래야만 육신의 나약함으로 오늘도 세상을 향하는 너에게, 그의 심정을 알게 해줘.
그래야만 너희가 성경을 눈으로 읽었으되, 너희의 영혼을 성령이 깨우고 간섭해.
이를 위해, 그의 얼굴을 구하는 거야.
이게 전부다...
기적이란 없다! 예수를 아는 지식 말고의 지식은 무익해.
이는 곳 기적을 원하는, 그래서 이미 이 세상 가까이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유대인들의 유전이야.
이는 곳,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생겼던, 이미 창조자의 권능 가운데 살면서도, 한낯 피조물의 머리로 그 창조자를 계산해 보고 싶었던 헬라인의 유전이라.
그 창조자, 너의 진짜 하나님, 예수의 강한 팔이, 이미 너를 애워싸고 있는줄 모르냐.
어떤 기적을 더 원하는데.
그저 한걸음 한걸음을, 그를 인정하며 걸어가는 거야…
그리고 그가 자신을 증거한 성경을 통해서 그를 더욱 발견하며 동행하는 거야…
그를 아는 것 이외엔, 구할게 없다.
이게, 그의 얼굴을 구하는 거야. 이게, 그와 동행하는 거야.
무엇을 원하는게 아니라, 그를,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성경이 바울을 통해 이와같이 증거 한거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스 3장 12절.
바람이 불어도,
폭풍우가 몰아 쳐도,
그가 주권자임을, 그가 너의 진짜 하나님임을,
그가 어디에 서서 너를 보고있는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거야...
하늘속에서, 구름속에서, 너를 보고있는, 그의 얼굴을 그저 멍하니 찾는 거야...
그렇게 그의 존재를, 그가 창조자임을, 그가 주권자임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할 때,
어느날, 너도 모르게, 이미, 한 사람의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너를 보게 돼.
이게, 그와 너와의 1대 1의 관계야.
이게, 그와의 동행이고,
이게, 기독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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