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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꿈.


 

제1화. 살자(自殺).




눈이 많이 내린 시골 풍경의 농촌. 날이 춥고 길이 꽁꽁 얼어서인지 인적이 없다. 오래된 기와장지붕에 쌓여있는 눈을 뚫고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을 뿐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골 마을은 어느새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재운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이 언덕 너머 작은 농촌마을의 한 원룸에서 살고있다. 재운의 집 창가엔 커튼이 없다.벽이 없는 넓은 원룸. 현관문을 가로막고 있는 중문이 보이고 다른 문이라곤 화장실 문 밖에 보이질 않는다.가구라곤 벽 한켠을 채우고 있는 책상, 의자, 소형 냉장고, 그리고 맞은편 벽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소파가 전부고 소파 옆으로 붙박이 장이 보인다. 지나가 소파에 앉아있다. 히터를 켜지 않았는지 그녀는 점퍼로 하반신을 덮고있고, 고개를 푹 숙인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이따금식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현관문을 흔드는 소리에 지나가 현관쪽을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봐서 지나는 지금 재운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그녀의 표정이 차가운 겨울 바람 만큼이나 쓸쓸해 보인다.


재운이 집을 향해 언덕을 오르고 있다. 재운의 집 앞에도 버스가 다니지많 추운 겨울이 되고 눈이 오면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질 않아 큰 길까지 30여분 남짓한 이 언덕을 재운은 자주 넘어 다녀야만 한다. 재운은 언덕길을 오르며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 기라도 하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곤 길 가상 자리에 기대어 서서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곤 매우 자주 등 뒤를 돌아보며 차가 오는지 또는 누군가가 오는지를 살핀다. 그는 매우 예민하고 조심스럽다. 꽁꽁 얼어붙은 길을 걷는 그의 발걸음은 너머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럽지만, 연신 혽잣말을 하는 재운의 입은 매우 거칠고 화가 난 사람처럼 흥분되어 있다. 재운은 연거푸 누군가를 향해 침을 뱉고, 어의가 없다는 듯 헛기침을 연발하고, 허탈한 코웃음을 치는가 하면 누군가를 향해 몹쓸 욕을 내뿜는다. 혼자서 이 언덕을 오르며 말이다.


“어디보자 이 개새끼야… 어디보자 이 개새끼야. 니 뜻대로 되는지 어디한번 보자… 퉤. 퉤."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재운은 어느새 언덕을 너머 마을에 다다랐다.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지나가 해가 저무는 창 밖을 보고있다. 띠띠띠.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재운이 돌아왔다는 것을 직감한 지나는 다시금 살며시 고개를 떨구며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잠시후 중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재운이 지나를 보고는 멈칫하며 놀란다. 지나는 고개를 떨군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재운을 힐끔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곤 다시 고개를 떨군다.


"어떻게 들어왔어?"


지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다. 재운도 더이상 묻지 않는다. 예상했던 일이 아니다. 지금, 이렇게 마주치면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뜻하지 않은 지나의 방문에 재운이 잠시 현관에 서있다가 메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는 붙박이 장문 앞으로 다가간다. 재운은, 행여나 지나가 작은 상처라도 받을까봐 매우 조심스럽다. 아니면 지나가 가버리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옷장으로가 장문을 열곤 점퍼를 벗어 거는 재운. 


“어디 갔다 와?"


지나의 음성이 살며시 떨렸다. 점퍼를 거는 재운의 손도 살며시 떨리고 있다. 재운이 긴 여운이 남을법한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 두 사람은 몹시 긴장하고 있다. 재운이 점퍼를 걸곤 옷장문을 닫고 소파 맞은편 책상 의자로 다가간다. 지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지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고개를 반쯤 숙이곤 생각에 잠겨있는 재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안한지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시골 마을 곳곳엔 가로등이 들어와 있다. 저만치 한 노인이 추운 겨울 바람을 뚫으며 휠체어를 끌고는 산책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농촌의 풍경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 까지 하다.


“저녁 먹었어?”


재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눈을 깜빡거리며 고민에 휩싸여있다. 오늘 말해야 할까? 약속을 잡아야 하나. 지나가 상처 받으면 어쩌나. 지나가 상처 받을텐데. 재운이 침을 꼴깍삼킨다. 재운이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자 지나가 고개를 들어 이런 재운을 살며시 바라본다. 재운은 몇일째 씻지도 않은듯 보인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고, 머리도 몇일째 감지 않았음이 영역하다  무엇보다 땀과 먼지에 쩌들어 있는듯 보이는 양말은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나는 이런 힘들어 보이고, 슬퍼보이는 재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져 다시 고개를 숙인다.


“왜 수신 차단했어?나 이제 안 볼 생각이었어?”

“친구 불러서 가… 눈와서 버스 안들어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도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는다. 자꾸만 멀어지고 자꾸만 어긋나고 자꾸만 오해가 깊어지는 이 상황이 슬프다. 벼랑끝에 내 몰린 사람들처럼, 자칫 이 시간이 서로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점점 깊어져 간다.


“이야기(얘기) 좀 할 수 없어?"


재운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고개를 들어 재운을 응시해 보지만 재운은 그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뿐이다. 지나가 다시 고개를 떨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지나는 재운의 대답을 기다리려는듯 고개를 들어 재운을 보다가 재운이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자 다시금 고개를 떨구기를 반복한다.


날이 저물어 방안이 캄캄하다. 재운과 지나의 실루엣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이지 않는 어두 컴컴한 밤이 되었는데도 누구 먼저 집안 불을 켜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날씨 만큼이나 집안 공기도 차갑다.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 지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채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뿐이다. 시간이 약인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다가올 시간을 알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재운의 마음은 점점 더 결심이 서고있다. 이 시간이, 이 만남이 지나와의 마지막 만남이란 사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입을 열거나 자신의 결심을 말할수도 없다. 어쩌면 지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임을 알고 있기에 지나가 더욱 걱정스럽기 까지 하다.


“안 될것 같은데…”


재운이 침을 꼴깍삼킨다. 한 마디를 내 뱉는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고개를 푹 숙인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지나의 손이 떨려온다. 지나도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지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저만치 책상앞 의자에 앉아서는 연신 길고 조심스러운, 긴 호흡을 하는 재운의 쉼호흡이 마치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결정한데로 행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나도 느끼고 있을까. 쉽지 않겠구나… 오해만 풀리면 될거라 믿었는데… 어쩌면 안되겠구나…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이제 지나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이 만남이 재운과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그녀역시 깊은 생각에 휩싸인다.


“다시 시작할 수 없어? 나 못믿어서? 왜…?”


야속하다. 야속하면서도 재운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 지나가 고개를 들어 재운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군다. 지나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인다. 지나는 더이상 고개를 들지 않는다.


“오빠가 그러면 뭐…”


지나가 마음을 상한듯 고개를 들어 재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눈물이 왈칵 나올까봐, 자존심이 상할까봐 이내 고개를 다시 떨군다. 자신의 마음을, 진심을 몰라주는 재운이 야속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안되겠다는 재운의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믿을수가 없다. 오빠가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란 말인가. 단 한번도 재운과 헤어질 것을 상상해 보지 않은 지나다. 그래서 두렵다.


"반천까지 괜히 찾아왔네… 근데,,, 오빠가 아는게 전부는 아니야… 후회 안할수 있어?


재운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지나는 고개를 떨군채 손을 떨며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컴컴한 집에 있다. 지나는 소파에 앉아 재운을 향해있고, 재운은 책상앞 의자에 앉아 현관문을 향해있다.


“누가 그러던데… 연애하면서 뻑하면 헤어지자고 하는 사람, 결혼해서도 똑같고, 사귀면서 힘들게 하는사람 결혼해서도 달라지지 않는데. 너같은 인간들, 지 남자 지 여자는 힘들게 하면서, 지 남자 지 여자한텐 오해나 만들면서 친구들 이랍시고 남들 앞에가선 그런 지 남자, 지 여자 손가락질하며 등신만들고, 엄한 사람들 앞에가선 쿨하게 쿨한척 다 들어주는”

“그런거 아니야.”


지나가 오해를 불식시키려는듯, 놀란듯 눈이 동그레져 재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지나는 재운에게 뭔가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한 것일까. 그런데 당당해야 할 재운이 몸을 떨고있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재운이 느껴진다. 입을 열고 말을 하는 내내 그의 목소리도 떨려왔다.


“그렇데…"


재운이 다시금 길고 조심스러운, 긴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미 결심이 서선 자신이 결심을 실행에 옮기려고 준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지나도 떨고있는 재운을 느끼고 있다. 진심이 아니라 믿고싶다. 자신에게 화가나서 이러는 거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나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몸을 떨고있는 재운을 물끄러미 보며 재운의 진심이 아니 었음을 확인하려 한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숙인다.


“오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니깐.”


재운이 떨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재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인지, 마치 재운의 결심은 아랑곳하지 않으려는 듯, 지나는 이게 끝이라는 결론은 머릿속에 없다는듯 재운에게 물어봤다.


“나 여러번 오빠한테 갔었어. 근데, 오빠가 불러도 못듣고… 나 보고도 인사도 안하고, 오빤 내가 반천까지 어떻게 알고 왔다고 생각해?”


지나가 고개를 들어 재운을 보며 재운의 대답을 기다린다. 재운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이내 다시 고개를 떨군다. 재운은 여전히 몸을 떨며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행동하는듯, 아니면 두 마음이 충돌하는듯 지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란 아쉬움과 두려움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나 믿을수 있는 방법이 없어?”


재운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자 고개를 푹 숙이곤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지나가 다시금 물었다.


“어떻게?”


집 안이 고요하다. 창 문 너머로 새 찬 겨울바람이 들려올 뿐이다. 어두 컴컴한 집안을 오직 지나가 손에 든 스마트폰의 불빛이 비춰주고 있다. 여전히 지나는 소파에 앉은채 몸은 재운을 향해있고, 재운은 책상앞 의자에 앉은채 몸은 현관을 향해 있다.


“난 전부 진심이었어. 내가 한 일이라곤 너 일하는 가게에 가서 너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데이트 신청도 여러번 하고, 집에 바래다 줄까 물어도 보고 이게 전부야… 난 다 진심이었어. 그때마다 넌 맨 날 거짓말만 하잖아… 넌 맨 날 니 친구들 핑계만 댔었잖아… 5년이나 지나서 이제와서 뭘… 이제와서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너랑 나랑 무슨 특별한 사이라도 되는듯 생각할 수 있는거냐. 너랑 나랑 무슨 특별한 사이였냐. 난 손님이었고 넌 종업원이었어. 이제와서 뭘… 우습잖아… 니가 반천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진 몰라도 최소한 넌 내가 다 진심이었다는거 알아서 찾아온거 아니냐. 이제와서 니가 찾아와 줬으니까 난 기뻐해야 한다는거야. 너도 진심을 보여봐. 입으로 말고, 쉬운 말로 말고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봐. 내가 늘 너 생각해서 행동한 것처럼, 내가 늘 너 입장 생각해서 행동한 것처럼… 내가 늘 너 원하는데로 해준것처럼 너도 행동으로 보여봐.”


재운의 목소리는 떨고있다. 재운의 몸도 떨고있다. 재운은 이미 이게 지나와의 마지막 만남임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숨을 고르는 재운의 호흡소리가 커졌다.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을것처럼 보인다. 지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그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며 재운의 말을 듣고있을 뿐이다. 지나가 침을 꼴깍삼킨다.


“어떻게?”


마치 목이 메어 오는지, 목이 쉬었는지, 거칠고 가느다란 음성으로 지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운이 한참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잠시후,


“죽어줄래?”


재운도 목이 메이듯, 거칠고 가느다란 음성으로 대답했다. 지나의 눈이 동그레졌다. 재운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더욱 떨린다.


“나보고 죽으라고…?”


재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할 수 있으면 죽어줄래… 나 위해서 죽어줄래? 그러면 내가 너도 나처럼 진심이었구나 믿을께… 사는 내내, 너도 진심이었구나 미안해하면서 죽어서 다시 너 만날날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다가 나도 금방 따라갈께…”



지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녀는 입술도 닫지 못한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부르르 떨고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재운도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리고 있다. 몸을 떨면서 말이다. 두 사람이 불꺼진 집안에 그렇게 앉아서 울고있다...


-잼-
jamnetkr jamnetkr · 2018-03-08 06:05 · 조회 82 · 인큐베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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