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코드] 바울을 통해 전한 복음 “약속”.

  

[바이블코드] 바울을 통해 전한 복음 “약속”…   


바울(Paul)은 참… 

어려서의 나는… 많은 부분 바울을 동경하지 않았었나 싶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한 인물을 뽑으라면, 여전히, 주저없이 바울이다. 

아마도 성경 전체에서 가장 ‘멋진’ 인물 한 사람을 꼽아라 한다면 바울이 아닐까 싶다. 

그가 다만, 예수의 종이었거나 사도였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이란 인물이 특별한 이유는, 그를 통해 전한 그 복음 때문에, 

바울의 사후에도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티칸(Vatican)의 입장에서 바울은 없어져야 할 ‘적폐’이리라. 왜? 그들은 정면으로 성경을 부수었고, 부수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 로마 카톨릭이란,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구원자가 바티칸임.
  •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 믿는 믿음이 아님.
  • 교회가 죄를 용서한다. 예수(창조자)가 아님.
  •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참된 교회는 로마 카톨릭이다.
  • 세례를 통해 구원을 얻고,
  • 교황은 창조자의 대리인이며, 사실상 교황은 예수회란 바티칸 지하조직의 얼굴마담이 아니었냐. 내가 알기론 예수회 맴버가 직접 교황으로 자처해 나온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 또, 결정적으로, 창조자 이외의 또 다른 구원자 또는 중재자가 된 마리아가 있고. 동시에 바티칸에서 마리아는 기도의 응답자다. 그러니 바티칸의 교리의 정신은, 기독교도 아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사실상 “달의 여신이 된 세미라미스“를 중심으로 한 바벨신앙과 정확히 일치한다.
  • 그래서 이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이들이 드리는 미사(Mass)는 제사의식이다. 누구를 위한 제사냐? 죽은 영혼들을 위한 제사다.
 
바울은 왜 이들에게 없어져야 할 ‘적폐’일까. 바울을 통해 전한 그 복음이 이들이 사단의 회임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물론, 바티칸 또는 카톨릭에서 예배를 드린 경험은 없다. 

오늘 작성하는 포스트의 주제가 바티칸도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 정조준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난 난, 신앙을 어머니에게 물려 받았고, 마리아란 동상을 세워 우상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카톨릭을 기독교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의 영향을 받은게 사실이다.  

도대체? 저들이 만들어 놓은 공동번역이 어떻길래? 97년에 처음 읽어보았고, 신명기를 끝으로 버렸다. 왜? 이들이, 십계명의 정신을 훼손시켰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바티칸과 로마 카톨릭을 창조자를 섬기는 자들이 아님을 확신하는 이유다. 

바티칸의 역사와 바티칸의 비밀에 관해서는 후에 한 번 다두도록 하자. 우선 본질먼저. 

그 전에,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하지만 이정도는 알고 있어도 될듯 싶다. 가짜는 반드시 ‘‘을 짓는다. 왜? 가짜는 자신이 가짜임이 밝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당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면 자신의 정체를 숨길수 있다고 믿는게 가짜다… 

그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무리를 짓고 당을 만들게 한단다… 가짜들 특유의 두려움이다… 

반면, 앞 서 증거한 바와같이 “참고: [바이블코드] 성경을 이렇게 읽어라.” 성경 또는 기독교를 한마디, 한 단어로 표현하면 ‘관계’다. 어떤 관계? 1대 1의 관계다. 예수와 나의 관계, 예수와 너의 관계… 

1대 2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1대 집합(또는 교회, 또는 무리, 또는 당)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의 부름을 받은 종들은, 사망의 골자기를 홀로 넘나드는 것이다. 교회가 구원을 해 준다느니, 높은 건물을 세운다느니… 노노… 그들이 가짜인줄 알아라…   


또, 이 글을 읽고 바티칸을 섬기며 카톨릭 성당으로 제사를 드리러 다니는 이들이, 내게 분개(憤慨)할 이유도 없다. 왜? 바티칸을 비판했을 지라도 사사로이 그 안의 개개인, 어떤 한 영혼을 비판한 것이 아니며, 한 개인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당신이 옳다 여기는 신앙을 간직하면 된다. 나도 그러하다. 또 나와 당신 사이일 지라도 판단자가 하나이며 그가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통해 전한 복음 ‘약속’.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물론 나도 않다. 바울의 복음에 관하여, 그가 전한 복음은 ‘교회론’이라느니, ‘구원론’이라느니, 또는 ‘성령론’, ‘예배론’ 등등 많은 주장과 이론들이 즐비하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는 주장이다. 

또는, 내가 본 성경을 통해 ‘약속의 복음’이라 생각하는 이 생각과 교회론, 성령론, 예배론 등등의 주장이 아예 다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음의 세가지 이유로, 나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약속‘일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1. 행2:1~4를 통해 약속한 성령이 온 이후로, 로마서에서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일관되게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가 약속을 받기 위함이다. 약속을 받지 않으면 교회도 예배도 구원도 없다. 반대로 약속을 받은 자는 율법에 얽매일수 없다는 것이다.
  3. 바울의 복음이 ‘약속’이 아니라면, 예수의 죽음을 복음의 기준으로 삼을수 없다.
 

바울의 복음서 중 가장 중요한 말: 롬8: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바울은 율법을 행하면서 동시에 죄를 범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음을 증거하며(롬7: 21~23) 로마서를 통해 왜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지 마침표를 찍는다. 

율법을 행하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면서, 동시에 넌 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느냐고 남을 판단하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보다 기도를 오래하지 못하는 지체를 판단하고 비웃고, 선행을 배풀면서 선행을 배풀지 못하는 지체들 앞에서 자기자신을 높이는 자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게 ‘육’이고, 이게 ‘율법’이라는 것이다.  


롬17: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러면 창조자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직접(direct) 건네준, 그 창조자의 율법이 선하지 않아서 유대인이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이냐. 그렇지 않아…  

율법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율법을 행해야 하는 사람의,, 그 사람의 속에 선한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함으로 의에 이를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자는 아브라함에게 너 안돼. 너희가 할 수 없어. 내가 직접 갈께… 약속을 준 것이고, 

약속을 맺으면서도 연약함을 알고 홀로 횃불이 되어 쪼개진 짐승의 사채 사이를 돌파(창15: 17)했다. 아브라함은 한 일이 없다. 그저 구경만 했을 뿐. 왜? 할 수 없으니까. 참고: [바이블코드] 성경을 이렇게 읽어라.   

내 안에 선한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걸, 그가 내 안에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약속‘을 맺은 것이다.  

그 약속의 ‘열매‘가, ‘성령‘이란 예수의 영이다. 너는 할 수 없지만, 약속으로 준 성령이 네 안에서 할 수 있게 한대. 

이게 바울이 증거한 복음(약속) 전부다…    


그는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시종일관 율법타파를 증거한다.  

  • 롬1~10장을 통해 율법을 깨뜨리라고 한 것이고,
  • 고린도전서의 포문을 다음과 같이 열면서 “고전1: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동시에 약속으로 준 성령 이외엔 너희가 창조자를 알 수도, 그의 원함을 느낄수도 없다고 증거한다. “고전2: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그래서 로마서를 통해 먼저, 육과 육의 행위, 곧 율법으로는 그를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한 것이고(롬8: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시종일관 아브라함을 예로들며 율법이 약속을 폐하지 못한다 강론한 것이다.
  

심지어 연이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선 율법을 전하는 이들을 사단이라 증거하기도 한다.  


고후11: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누군가, 이 성령을 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스스로 죽음으로 약속한 ‘성령‘을 주었다는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누구냐? 

고후 11: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들이 사단에 속한 자들임을 분명하게 했다. 누군데? 

고후11: 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이로보건대,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던 이들이, 율법을 전하며 성령을 훼방하던 유대인들이었음을 확신하노라… 

이 뿐이랴. 연이은 갈라디아서의 포문을 다음과 같이 연다. 

  

바울의 복음은 약속이다. 이 약속은 주겠다 한 성령을 준 것이다. 성령과의 연합이 아니면 그를 기쁘게도 그를 알 수도 없다는 것. 이 약속이  바울이 증거한 복음이다…

 
갈1: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급기야,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한다‘… 왜?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에서 출발한 ‘율법을 깨뜨려라‘한, 바울을 통해 증거된 복음 전체의 압축판이다.  

  1. 그는, 로마서에서 출발해 증거한 복음을 갈라디아서를 통해 제차 증거하며 ‘믿음 = 성령을 받음“. 갈3: 2.
  2. 로마서에서 출발해 율법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갈라디아서를 통해 제차 증거하며 ‘성령을 받음 = 의‘, 곧 창조자를 기쁘게 함. 갈3: 6, 7.
  3. 로마서에서 출발해 율법의 저주를 속량한 예수의 은혜를 갈라디아서를 통해 제차 증거하며 ‘주겠다 한 성령의 약속 = 복음‘이라 한다. 갈3: 8.
  4. 어째서 저주인가? 율법을 전하고 율법 아래 메이고자 함은, ‘성령을 주겠다 약속한 그 약속을 폐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저주 아래로 영혼들을 끄집어 들이는 행위라! 이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했다. “갈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5. 또 그는, 율법을 더했음은, ‘약속을 받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증거한다. 갈3: 24, 25.
  6. 처음 강론도 아니다. 로마서 5장 전체에서 이를 증거한다. “롬5: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약속한 성령을 주었음이, 그 은혜가 큰 은혜인줄 알게 하려고 율법을 더했음이다.
  

이후 갈라디아서 4장 이후도 몽학선생을 제차 초등학문으로 비유하며 율법을 깨뜨려라 강론하고 있고, 

다시금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율법을 더하기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먼저라고 증거한다.


나 또한, 유대인의 비밀을 모르지 않아…


어떤 목사, 어떤 교회들이… 이 유대인의 비밀을 안 후, 이제 약속을 폐하고 율법을 전하는 이들이 있더라… 종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을 안 읽냐? 

율법을 전하는 너희를 향해 성경은 맹렬하게 ‘저주를 받아라” 증거했다. 왜? 너희가 약속을 폐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비밀을 알게 해 준 이가 성령일텐데, 너희가 성령을 폐하고 율법을 전할수 있는거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거든, 멍하니 앉아 창조자의 얼굴만 바라봐. 그러면 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라 하고 유대인의 비밀을 알려줬더니, 그 유대인들을 조용히 성전으로 데려와 율법을 전하는 너는 누구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야. 어리석어도 그렇게 어리석냐…   


성경은, 비유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고, 비유로 바라볼 지라도, 난 성경을 비유로 본 적도 비유로 해석한 적도 없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의 히스토리다. 창조자의 히스토리… 

아직 내 눈 앞에서 성경 전체가 이루어 진 것이 아닐지라도(이루어지면 난 죽어야지), 스가랴의 어떤 말씀은 계시록과 더불어 이루어 지겠지. 

반드시 문자 그대로 이루어 질, 창조자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다… 

그 성경을, 그 중에서도 바울을 통해 증거한 신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결론은, 

약속 = 성령 = 복음” 

이다… 


신약성경 전체가 이 복음, 약속한 성령을 주었으니 약속을 받아라 증거하고 있다. 

냉정하게 이 약속을 곧 “복음“이라 했다는 거야. 성경이.    


바울은 증거하기를 “은혜가 더욱 큰 은혜가 되게 하려고 약속한 성령을 주기전, 율법을 더한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확신하는데, 율법을 더해서, 율법이 가입하게 하지 않았다면, 이제 약속을 받아 육신을 타파하고 성령과 연합해라 설명할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육신을 어떻게 타파해야 되는건데? 

유일한 방법, 창조자의 영이, 곧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밖엔 없다… 

이 방법이 아니면, 창조자를 기쁘게 할 수도 없고, 구원? 이런거 꿈도 꾸지마라. 

   

어째서 바울이 전한 복음이 모든 사단의 회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예수의 죽음으로 준 선물이다. 자신이 죽어줌으로 자신의 영을 은혜로 주겠다고, 창세전에, 그냥 그렇게, 정했다고 증거하였다.  


엡1: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세전부터,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어줌으로, 그 열매로 성령을 주기로 정한 것이다… 그냥 그렇게, 창조자가 정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약속한 성령을, 약속한데로 주었다. 이미 주었다. 어떻게 신천지 이만희가 보혜사 성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성령이 실질적으로 운행하고 역사하는 창조자의 영이다.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겼지만, 실질적으로 그 빛을 손 수 만든이가 바로 성령이란 뜻이다. 

그 성령이 할 짓이 없어서 정치인들과 모의를 일삼을까.    


복음이 곧 ‘약속’이라면, 약속한 성령을 주었음은, 곧 예수가 스스로 죽어 주었음도 함께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끊임없이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딤전2: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8: 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9: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12: 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모두 바울을 통해 증거된 복음이다… 중보자는 인생들이 그리스도라 부르는 “예수” 하나다… 

어떻게 마리아가 중보자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어떻게 교회(카톨릭)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거냐. 어떻게 너희가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거냐. 신천지와 바티칸이 무엇이 다르냐. 

명백하게, 이 믿음 곧 그를 믿는 믿음 하나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성령을 받게 한다(갈3: 14)고 하였다. 믿는 믿음으로. 그와 너와의 1대 1의 관계다. 누구 막을수 있다는 거냐. 

너희가 한 낯 피조물로 어떻게 죄를 사해주고 구원자가 되랴. 이 사람아…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바울을 통해 증거 되었기에… 

물론, 율법과 육신을 깨뜨려라 그리고 약속을 받아라 한 복음 이외에도, 그는 많은 비밀을 풀어 놓는다… 

예를들면, 그 성령과 연합한 열매를, 예를들면, 남과 여의 큰 비밀을, 예를들면, 회복을, 그리고 예를들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그를 통해 증거하였다.  

하지만 이 복음, 곧 주겠다 한 성령을 준 이 약속이 신약성경의 주제고, 성경 전체의 정신이다. 

감히 확신한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기어들아… 너희는 오해하지 말고, 또 분별을 해라… 

예컨대, 율법을 전하는 너희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했던 바울이… 예컨대, 동성애자들의 받아야 할 합당한 죄의 값(롬1: 26, 27)을 증거한 바울이… 

그 개개인을 쫓아 다니며, 너 저주, 너 지옥, 너 형벌… 이랬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자칫 바울 스스로 더욱 악해진다…   


강론자가 강론을 펼침과 목회자가 설교를 하는것과 인생들을 쫓아다니며 저주를 쏟아내는 건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내가 바티칸을 비판하고 바티칸을 저주할 수 있다. 왜? 저주를 받을만한 합당한 증거가 내게 있기 때문에. 

하지만 바티칸 안에서 예배에 참여하는 그 한 영혼, 영혼들에 관해서는 내가 판단하지 않으련다. 왜? 모두 창조자와 1대 1의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알 수 없는 거야… 

어떤 신부는 난 절대 마리에 앞에 절하지 않아! 하는 신부들이 있을줄 우리는 모른다. 창조자많이 알아. 

때론 자신이 발을 잘못 들인줄 알면서도, 그 안에서 창조자를 섬기는 이들이 있을테지만,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그래서 개개인을 비판하는 것과, 개개인에게 저주를 발설함이, 어떤 집단, 어떤 사단의 무리를 비판하는 것과는 다른 거임. 또 그 비판이 본질 안에서의 비판이 되어야 함. 

꼭 기억해라. 자칫, 네가 더욱 악해져… 

이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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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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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am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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